나라가 시나브로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건설노동인의 분신이 상징하듯 민생, 민주 위기가 날로 깊어간다. 미국과 일본에 찰싹 달라붙어 남북관계의 긴장은 높아가고 중국과 러시아 시장은 닫혀간다. 그럼에도 도무지 성찰이 없다. 오월항쟁 기념식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오월의 정신을 말하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언죽번죽 부르댔다.

생게망게하다. 지금 누가 민주주의 위기를 안팎에서 불러오고 있을까. 대통령이 나서서 반정부투쟁을 선동하는 걸까. 앞뒤를 살피면 그의 깜냥이 읽힌다. 오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실천을 명령”한단다. 나는 그의 ‘자유민주주의관’에 곰팡내가 퀴퀴하다며 독서 부족에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수준이 아니다. 권력을 쥔 자가 ‘투쟁’을 다짐한다. 그것도 민주 영령 앞에서다. 그의 ‘민주주의’가 수상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여당, 용춤 추는 언론인과 교수를 비롯한 먹물들은 찬사를 읊으며 ‘국정철학’ 운운한다. 철학이 한껏 조롱받는 꼴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그는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는 자’들로 누구를 되술래잡았을까. 야당과 노동조합, 시민단체를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4·19혁명 기념식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콕 집어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월민중항쟁 때 대학생이던 그가 80년대 내내 무엇을 했는지 까맣게 잊었을까. 오월을 들먹이며 “민주주의 위기에 투쟁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거나 “실천하는 용기”를 주문하는 모습은 남세스럽다. 대체 무슨 ‘용기’일까. 박근혜의 유체이탈은 저리가라다. 그는 대선 후보시절에 80년대 학생운동을 싸잡아 빨갛게 칠했다. 묻고 싶다. 학생운동이 없었다면 군부독재가 퇴각했을까? 6월대항쟁에 나선 이 땅의 민중들이 죄다 좌파인가? 말 나온 참에 분명히 짚자. 2023년 5월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말끝마다 부르대는 그를 비롯해 대통령실과 장차관, 신방복합체들, 그들과 손잡고 매문을 일삼는 교수들 가운데 자유민주주의가 군부독재에 질식당할 때 입 한번 벙긋한 자가 있는가. 내가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를 믿을 수 없는 이유다.

과거만이 아니다. 지금도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자라면 할 일이 있다. 누가 보아도 좌파가 아닌 영국의 정치학 교수 던리비와 드라이젝은 자유민주주의 주창자이지만 그 결함에 눈감고 있지 않다. 결핍의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꼽는다. 먼저 자본이나 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나타나는 자유민주주의 결핍이다. 민주주의 또는 다원주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기업 특권을 보호하고, 자본시장의 이해와 비위를 맞추는 결함도 있다. 미디어에 의한 선거 왜곡도 빠지지 않는다. ‘안보’를 내세우거나 이념적 편향과 법적 책략으로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결함도 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요구를 외면하는 정부 행태도 주요 결핍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5월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 그가 자유민주주의자라면 그 결함들 해소에 온 힘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물구나무선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지적한 결핍을 되레 확대한다. 민주노총을 탄압하며 자본의 비위를 맞춘다. 오월의 민주묘지에서 ‘AI’와 ‘산업적 성취’를 강조한다. 그가 ‘건폭’으로 매도한 건설노동인이 죽음으로 항의했음에도 성찰이라곤 전혀 없다. 부익부빈익빈은 커져간다. 병사 월급에서 간호사법까지 대선 공약들을 무시로 뒤집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외친다. 그의 신념은 1980년대 그랬듯이 지금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조중동 신방복합체, 특히 조선이 퍼트리는 낡은 인식 틀로 자신도 모르게 미국,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며 민생 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감히 ‘오월 정신’까지 언구럭 부린다. 그래서다. 정중히 경고한다. 대한민국, 우리의 나라를 더는 나락으로 몰아넣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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