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나 그런 이를 마주쳤을 터다. 그런데 조금 알면 더 용감하다. 줄줄이 나타난 무리를 보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한일합방은 누구의 잘못이냐하는, 예스냐 노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면서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한 것”이란다. 그는 문헌학 박사다. 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정진석은 “제발 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잔다. 그는 기자 출신이다. 중앙일보 “두 원로의 기억 속 일제” 칼럼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박정희 비서실장 김정렴을 내세운 뒤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일생 어린이”로 남는단다. 정말이지 참 용감하다. 일제에 강제동원 당한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받아 협상해야 할 상황에서 우리 잘못임을 ‘고백’한다? 그래놓고 통 크다며 에헴 하는 작태들이야말로 ‘식민지 콤플렉스’ 아닌가.

그 표본은 아무래도 대통령 윤석열이다. 도무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 3‧1절 기념식에서 식민사관에 찌든 사고를 스스로 폭로하며 자부심 가득했다. 비판 여론도 쇠귀에 경 읽기다. 우리의 최대 독립운동 기념일에 허튼 소리를 한 뒤 일본 총리 기시다와 만난다고 으스댔다. 기시다와 최소한 건들건들 논의하지 않기를 바라며 지난 칼럼에서 그가 회담에 진지하기를 촉구했다(윤석열과 기시다의 저녁밥).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하지만 우려한 대로다. 도쿄까지 날아가선 폭탄주 마시고 빈손으로 왔다. 3‧1절 망발과 함께 내놓은 ‘강제동원 면죄부’에 여론이 악화되자 기시다와 만나면 마치 상응하는 조처가 있으리라 내비쳤다. 하지만 기시다는 윤석열처럼 순진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인내하며 쓰고 있다. 외교에서 ‘순진’은 멍청이라는 뜻임을 일제의 침략사에서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빈손도 아니다. 다 내주고도 기시다에게 되레 종군위안부 합의 이행이나 방사능수산물 수입 따위의 ‘뺨’을 맞았다. 일본 언론은 독도까지 언급됐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되레 당당하다. 심지어 국민에게 훈계한다. 언구럭이 이명박, 박근혜 뺨칠 정도다. 귀국한 뒤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사과했다고 되뇌었다. 그 인식의 문제점은 지난 칼럼에서 썼기에 줄인다. 그는 곧이어 중국을 들먹였다. 노골적인 편향외교를 하면서 중국 사례를 든 것도 뜬금없거니와 맥락도 틀렸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1972년 일본과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에서 중일 양국 인민의 우호를 위해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했다”면서 “중국인 30여만 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을 잊어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한다”고 부르댔다. 기막히다. 국민 대다수를 어리보기로 본 발상 아닌가. 아니, 우리 민중이 언제 일본을 당당하게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굴욕외교 비판을 듣고서도 도쿄에 날아가 빈손으로 온 자신에게 속닥일 말 아닌가.

중국은 난징학살을 겪었지만 35년에 걸친 식민지 수탈을 당하지 않았다. 난징학살은 일제의 강점 이전에 동학민중과 의병 수십만 명 대학살과 견줘야 옳다. 더구나 중국은 일제에 부닐던 자들을 말끔히 청산했다. 한국은 어떤가. 친일세력이 견고한 기득권층을 이루며 자자손손 호의호식하고 있다. 일제의 국토 강점은 민족 분단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남북대화는 사실상 포기한 채 평양을 적으로 단정 짓고 일본과 군사협력에 기 쓰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격동하는 국제정치판에서 한낱 장기판의 졸이 된 형세다. 겨레의 앞날에 두꺼운 먹장구름이다.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에 앞서 양국 국가를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에 앞서 양국 국가를 듣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조금 알아 더 용감한 대통령 문제는 굴욕 외교와 안보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시간 논란에서 보듯이 이른바 ‘노동개혁’엔 철학이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를 읽고 ‘정규직 노동조합 탄압’을 행한다. 민생 우선을 읽고 대기업 우선을 행한다. 경제를 노상 내세우지만 대중국수출이 크게 줄며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쪼끔 아는 지식으로 국민을 훈계하는 저 용감무쌍함에 시름만 깊어가도 과연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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