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기시다. 3월16일 도쿄에서 이야기 나누고 저녁밥 먹기로 했다. 윤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전범기업에 내놓고 면죄부를 준 직후다. 경제를 위해서라고 부르대지만 민생도 아니거니와 납작 엎드린 자세다.

▲ 지난해 11월13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13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구나 3·1절에 사뭇 당당히 저지른 굴욕은 매국노 의식과 맞닿아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언죽번죽 주장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이 뼈대인 식민사관에 뼛속까지 물든 윤똑똑이 아닌가. 윤석열이 기시다에 아예 침략의 면죄부를 선물한 꼴이다. 이쯤이면 문창극이 땅을 칠 일이다. 박근혜가 총리로 지명했지만 식민사관이 담긴 언행이 드러나 내내 버티다가 물러났다. 총리와 달리 윤석열은 대통령이어서 ‘무사’하다. 외려 기시다 만나러 부부 동반 도쿄행이다.

역사에 도무지 성찰이 없기는 일본총리도 도긴개긴이다. 기시다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며 자못 여유롭다. 그가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부치 이후 아베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역사 왜곡을 무시로 저질렀다. ‘군함도’ 전시관을 찾아 “강제동원은 이유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눈 부라렸다. 이어 스가는 ‘종군위안부’에서 ‘종군’을 지우는 각의 결정을 내렸다. 기시다가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대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언구럭부린 까닭이다.

윤석열의 망언에 비판여론이 일자 정진석을 비롯해 국힘당 우쭐대기들이 나섰다. 일제에 한껏 부닐던 조선일보와 함께 먹머구리 끓듯 결단을 칭송한다. 식민사관에 찌든 그들은 역사를 정치모리배 중심으로 보고 있다. 조선 왕조는 물론 썩어문드러졌다. 하지만 민중도 그랬을까. 전혀 아니다.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의 길을 열 수 있었다. 바로 동학혁명이다. 그 깨어있는 민중을 대량학살한 자들이 일본군이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 인류학 표본교실에서 남도의 동학혁명군 유골이 방치된 채 발견됐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학살에 가담한 일본인 일기가 나왔다. 우금티 전장만이 아니었다. 동학 민중들을 샅샅이 뒤져 학살했다. 체포해 죽인 방법도 적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즉각 총살했다. 착검한 총으로 돌격하듯 찔러 죽였다. 개머리판과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불에 태워 죽였다. 실제로 일본 병사들은 “모두 죽여라”고 명령 받았다. 앞으로 나라를 강탈할 때 가장 큰 방해가 될 ‘깨어있는 민중’을 이참에 모두 죽이겠다는 의도로 저지른 극악한 범죄, 반인륜적 제노사이드다.

▲ 동학농민군 백산봉기 기록화. 사진=독립기념관 홈페이지
▲ 동학농민군 백산봉기 기록화. 사진=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그렇게 학살된 민중은 30만 명에 이른다. 동학만이 아니다. 그 뒤에도 민중은 줄기차게 싸웠다. 박은식은 의병 피살자 10만 명에 무고한 민중들의 학살은 통계조차 없다고 기록했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의병을 사로잡으면 포로로 대우하지 않았다. 곧장 살해했다. 의병이 나온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애먼 민중들을 집과 함께 불태웠다. 그럼에도 민중의 항전은 1945년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숱한 학살이 뒤따랐다.

올해도 내 강의실에는 일본인 유학생이 10여명 들어온다. 나는 그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일본제국과 오늘의 일본은 다르다고, 다만 일본 지배세력은 독일과 달리 지금도 성찰이라곤 없어 한일 관계에 먹구름이 짙다고 일러왔다. 두 나라 민중이 소통과 사귐으로 미래를 열어간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있는 그대로 역사 교육이다.

윤석열과 기시다는 “안보협력 강화와 한미일 연합훈련 확대”를 협의한단다. 도긴개긴 둘에게 들을 귀 있을까싶지만 춘향전을 인용해 쓴다. 둘의 저녁식탁에 기름진 음식은 동학과 의병의 살, 술은 생때같은 민중의 피임을 단 한순간만이라도 떠올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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