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어찌될까. 보라. 자신이 영업사원이란다. 대한민국 대통령 말이다. 그것도 외국 대기업 회장들 앞에서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그는 호텔에 마련한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 “우리 글로벌 기업인 여러분을 한 번 뵙고 점심이라도 한 번 모시는 것이 대한민국 영업사원으로서 도의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크게 부각했다. 어느 언론은 “대통령 취임 후 ‘세일즈 외교’ ‘모든 순방은 경제 중심으로’ 등 정상외교를 통한 경제 산업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썼다. 전두환의 ‘굳은 의지’를 칭송하던 1980년대가 스쳐간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월19일 2023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특별연설을 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이 1월19일 2023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특별연설을 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그가 “한국 대통령으로서 인사드리고 얼굴도 알려드려야 여러분이 한국을 방문할 때 제 사무실을 편하게 찾아오실 수 있지 않겠나”라 했는데도 그랬다. 외국기업인들에게 대통령집무실을 편하게 찾아오라?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언론의 부추김에 우쭐한 그는 서울로 돌아와 국무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다시 자임하며 국무위원 모두 영업사원 각오를 가지라고 에헴 했다. 이어 “외국기업 CEO들”이 방문할 때 “사업상의 애로사항을 많이 경청”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부 장관까지 외국기업인의 애로를 들어주라는 말이다. 실제로 노동을 콕 집어 ‘글로벌스탠다드’를 거듭 강조했다.

언론이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 때는 ‘일본 주식회사’ 용어를 천박한 듯 꼬집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업사원 대통령’과 함께 내놓고 ‘한국 주식회사’를 외쳐댄다. 나라 품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경제를 위해서라고 하자. 하지만 대체 누구의 경제란 말인가. 외국기업인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편하게 들락거리면, 고용부장관이 그들 애로사항을 경청하면, 민생이 나아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민생은 되레 악화되고 부익부빈익빈은 깊어간다. 스위스 호텔에서 국민 혈세로 점심을 사며 자기 집무실에 편하게 오라는 한국 대통령을 그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신뢰가 기본인 영업을 ‘말로만 영업사원’이 너무 쉽게 떠벌인 것은 아닐까. 자세를 한껏 낮춘 듯 행세하는 ‘날리면 대통령’의 언행에 저마다 내심 웃지 않았을까.

글로벌스탠다드를 부르대는 영업사원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글로벌 표준인가. 그가 최소한의 균형조차 저버리고 한껏 쏠려있는 미국을 보자. 바이든은 규제개혁을 불러대는 윤석열과 달리 반독점 규제에 앞장서고 있다. 법무장관 갈런드는 1월24일 구글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선택적인 정파적 수사에 골몰하면서도 노상 자부심 넘치는 한동훈과 참 대조적이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월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월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조중동 신방복합체와 경제지들은 앵무새처럼 ‘노동개혁’을 복창한다. 어느 경제지는 고용부장관 이정식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들먹이자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0년 11월 USR을 국제표준(ISO26000)으로 선포했다”며 노동운동을 비판했다.

기막힌 일이다. 국제표준화기구가 글로벌스탠다드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 기구가 선포한 ISO26000이 중점 둔 대상은 노조가 아니다. 기업이다. ISO26000의 7개 핵심 주제는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소비자, 공정경쟁, 지역사회 참여발전이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이 수평적 운영과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권 조항이 들어있다. 노동조건을 국제노동기준에 따르는지 확인은 물론 사회적 대화의 적극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그 글로벌스탠다드인 국제표준화기구의 기준을 우리 언론은 편향적으로 보도해왔고, 그도 모자라 ‘영업사원 정권’의 노동 개악을 뒷받침하는 논리로까지 악용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참모와 장차관들까지 조중동 신방복합체, 특히 조선일보의 구린 논리를 맹종하며 케케묵은 낙수효과를 맹신할 때, 영업사원 윤석열이 자신의 무지와 만용으로 앞으로도 4년 넘게 대한민국 최고의사결정권을 휘두를 때, 어찌될까. 나라꼴은, 민생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