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 연기는 누가 해야 하나. 장애 관련 사건이 있으면 장애가 있는 기자가 이슈를 다뤄야 하는가. 미디어는 소수자를 누가, 어떻게 다루는지 논의해야 한다.”(밀리카 페시치 영국 미디어 다양성 연구소장)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는 사회뿐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소외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0년 발표한 미디어다양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메인뉴스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가운데 여성 비율은 27.4%, 뉴스에 출연하는 변호사·의사·교수 등 전문가 중 여성 비율은 22.5%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인구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5.1%지만 같은 기간 장애인이 뉴스 정보원으로 출연한 경우는 0.1%다. 미디어 다양성이 구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밀리카 페시치 소장은 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2022 저널리즘 주간’에서 미디어가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BBC 기자 출신인 페시치 소장은 언론인 교육 전문 국제기구 MDI(Media Diversity Institute)의 사무총장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2022 저널리즘 주간'. 사진=윤수현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2022 저널리즘 주간'. 사진=윤수현 기자.

페시치 소장은 미국 미디어에서 성 소수자가 출연하는 횟수가 증가했지만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고 했다. 페시치 소장에 따르면 미국 미디어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성 소수자 출연자는 12%로 지난해 대비 2.8%P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7%는 ‘뉴스미디어가 성 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고 지적했다.

페시치 소장은 “성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재현은 가족, 직장, 사회 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며 “또한 미디어에서 여성은 가정과 패션 중심으로 묘사되고, 성매매 종사자나 사건의 희생자로 비춰진다.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페시치 소장이 제시한 해결책은 ‘미디어 포용성 논의 확대’다. 미디어 기업과 에디터, 기자들이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하고 다양성·포용성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시치 소장은 “포용성이 왜 중요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입장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성 소수자에게 언론 기능과 구조를 이해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페시치 소장은 “성 소수자 연기는 누가 해야 하나. 장애 관련 사건이 있으면 장애가 있는 기자가 이슈를 다뤄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미디어는 소수자를 누가, 어떻게 다루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 성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 성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유수정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미디어의 여성·장애인·성 소수자 재현에 대해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KBS 개표방송 사례를 들었다. 유 연구원에 따르면, KBS는 20대 대선 개표방송 패널 성비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후 사내 토론회를 열었다. KBS 대선 개표방송 여성 패널 비율은 9.8%였다. KBS는 8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패널 비율을 35.9%로 높였다. 유 연구원은 “내외부 공론화와 관심이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물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이 공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2018년 창간 30년을 맞아 사내 시스템을 정비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에서 한겨레에 젠더팀·젠더데스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한겨레는 2019년 젠더데스크 직을 신설하고 이듬해 젠더팀을 만들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박다해 한겨레21 기자는 “‘젠더 이슈를 독립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기존 부서에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는가’라는 반론도 있었다”며 “하지만 한겨레가 젠더 이슈에 집중했는지 의문이 있었고, 데스크와 별도 팀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젠더데스크가 처음 한 시도는 여성 취재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사내에 공유하는 일이었다. 박 기자는 “여성 취재원을 의식적으로 발굴하지 않는 이상 기자는 익숙한, 매번 연락하던 사람들에게 전화하게 된다”며 “여성 취재원 데이터베이스는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자들도 ‘남성의 얼굴을 한 사회’에 익숙하므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왜?”가 없는 한국언론의 전장연 보도

한국 언론이 장애인에 대해 문제적 보도를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출근길 시위 보도가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다수 언론은 전장연 시위로 인해 시민의 불편함이 가중되고 있다는 기사를 작성했고, 전장연이 왜 출근길 시위에 나서게 됐는지 조명한 기사는 많지 않았다. 유수정 연구원은 “전장연을 시민 불편만 야기하는 부정적 존재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혐오와 차별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뉴스 '전장연' 검색 결과. 
▲네이버 뉴스 '전장연' 검색 결과. 

공마리아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교수는 “장애인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 자극적 단어를 사용한 헤드라인이 있다”며 “전장연이 이태원 참사 이후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농성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보도는 ‘전장연 시위 안 해, 소통 원활’이라는 식으로 나온다. 시위가 다시 시작되면 ‘전장연, 시위 또다시 시작’이라는 기사가 나온다”고 했다. 공 교수는 “언론이 헤드라인과 내용적 측면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대근 한국일보 기자는 “사회적 소수자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언론사 간부 구성”이라면서 “기사를 전송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자들, 독자가 기사를 볼 수 없게 할 수 있는 데스크들은 40·50대 남성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비해 여성 데스크 비율이 늘긴 했지만 성비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다양성을 구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슈가 있을 때 언론이 소수자와 이를 혐오하는 의견을 대등한 카운터파트로 여긴다”며 “언론사와 기자들이 갖고 있는 재량과 권한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 이를 통해 미디어 수용자와 소비자들이 다양성이 보장되는 언론 환경 위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