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다양성 구현을 위해 합리적 평가가 가능한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공영방송 조직, 콘텐츠 측면에서의 비율적 개선은 중요하지만 다양성 구현을 위한 수단이 목표처럼 여겨져선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국내 공영방송 다양성과 관련해선 조직 내부의 성비 불균형이 주된 사례로 다뤄지고 있다. 박재훈 MBC 미래정책실 신사업전략파트장은 22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열린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포럼(한국언론학회·방송문화진흥회 주최 포럼)에서 MBC 보도국의 직급별 성비 현황을 설명했다.

박재훈 파트장에 따르면 MBC 전체의 국장급(23명) 중 여성은 5명(21.7%), 부국장(15명) 중 여성은 4명(26.7%)으로 20%대로 나타났다. 부장급 중 여성은 94명 중 11명, 11.7%에 그쳤다. MBC 보도국을 기준으로는 전체 기자 180여명 중 남성 127명(70.5%), 여성 57(31.6%)명으로 여성 비중이 31% 수준이다. 보도국의 보직자 22명 중 여성은 4명, 18.2%에 불과하다. 해외 특파원의 경우 최근 10년차 이하 젊은 기자 대상의 단기 특파원 도입에 따라 여성 비율이 40%대로 올랐다.

▲22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한국언론학회·방송문화진흥회 주최로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한국언론학회·방송문화진흥회 주최로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박 파트장은 “저는 50대 이성애자 남성이다. 다양성이 구현되지 못하는 측면에서 어떻게 보면 여러 반사이익을 누려왔을지도 모르는 제 자신이 얼마나 절실하고 진정성 있게 (다양성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 뒤 “공영방송은 A부터 Z까지 다양성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닌가. 다양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시장경제에 따라가기만 한다면 공영방송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다양성은 공영방송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MBC는 4월 프로그램제작가이드라인 일반준칙에 ‘차별 금지 및 소수자 보호’ 조항을 넣어 젠더, 장애, 어린이청소년과 노년층 등 차별을 금지하고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도·시사교양·스포츠·디지털 등 4개 부문에는 콘텐츠 다양성 데스크를 뒀다. 앞서 KBS도 중장기 계획으로 ‘소수자 포용과 다양성 확대’를 포함시키는 한편 제작가이드라인에 ‘소수자 차별 방지’를 적시했다. 장애인, 노인, 여성, 북한주민 및 북한이탈주민, 이주민과 외국인, 성소수자, 다양한 가족형태 등을 차별방지 대상으로 명시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일차적으로 여성 언론인의 비중을 일정 수준(예컨대 30%) 이상 유지하고, 고위급 보직인사에도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공영방송 뉴스룸은 남녀구성비 이외에도 언론인의 출신지역 및 출신대학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매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조직 운용과 같은 다양성 확보 노력이 콘텐츠 다양성으로 이어져야 하나는 점이다. 유수정 KBS공영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실제 변화가 이뤄진 사례를 적극 발굴하고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행자와 패널 구성에 여성 출연진을 다수 배치하는 KBS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 지난 선거 방송에 있어 시민사회의 성비 불균형 문제를 수용한 KBS 선거방송 등은 긍정적 사례로 꼽힌다.

▲22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한국언론학회·방송문화진흥회 주최로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한국언론학회·방송문화진흥회 주최로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다만 사회적 바람직함이나 도덕적 담론 차원에서 공영방송 콘텐츠의 다양성을 역설하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란 지적도 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예컨대 공영방송 조직 성비 개선 등이 “보여주는 알리바이”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핵심 난점은 다양성이라는 담론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라며 “도덕적으로만 설득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례를 통해서 더 많은 선택을 가져다주고 경험을 가져다주는 실리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것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KBS는 보편성을 강화하고, MBC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등 ‘공영방송 시스템 안에서의 다양성 보장’을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성에 매몰된 공영방송 평가 담론의 한계도 극복 대상으로 거론했다. 정 교수는 “‘TBS 사태’나 KBS, MBC에 대해 보여주는 압박을 보시라. 약간의 편향이나 논란으로 모든 걸 없애버린다. 프로그램 하나로 채널을 없애는 마당에, 이게 우리나라 엘리트 담론의 수준”이라며 “공영방송을 평가할 때 다양성의 중요한 기준은 ‘적어도 너희가 그걸 잘 하면 우리는 다른 것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 이 부분으로 우리의 담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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