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소수자 차별은 사회에 공기처럼 퍼져 있어요.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어떤 부분은 잘못된 것인지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는 거죠.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또 얼마나 광범위할까요?”

백세희 변호사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 등 문화예술 전문 변호사다. 그는 지난 6월 미디어 속 소수자를 다룬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을 냈다. 그가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5일 백 변호사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틀에 갇혀 ‘납작’하고, 보이지 않아 ‘투명’하다

“소수자 관련 글을 쓸 것이라 상상도 못하던 시절에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봤어요. 주인공 김우진이 매일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 123명의 우진이 등장하는 영화죠. 유럽 언어를 쓰는 백인, 일본 여성 등 무작위로 변하는 우진을 보면서 계속 기다렸어요. 휠체어를 탄 우진, 수어를 사용하는 우진도 나오겠구나. 하지만 우진은 비장애인으로만 변해요. 장애인은 무작위에서 배제됐다는 듯이. 그때 처음 배신감을 느꼈어요.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죠.”

▲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백세희 변호사를 만났다.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백세희 변호사를 만났다. 사진=박재령 기자

책은 7개의 파트로 나뉜다. 서울중심주의, 아이·노인혐오, 인종차별, 젠더, 장애인, 비정규직, 성소수자 등이다. 미디어 속 소수자 차별이 얼마나 보편화돼 있는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백 변호사는 책에 주류 인간 ‘아무개’씨를 등장시켜 주류의 시선이 얼마나 무심한지, 미디어가 얼마나 주류 입맛에 맞게 움직이는지 세세하게 지적한다. 백 변호사는 미디어가 소수자를 언제나 ‘납작’하고 ‘투명’하게 바라본다고 말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는 ‘납작’해요. 트랜스젠더를 전형적인 틀, 야한 옷, 과도한 치장 등 납작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죠. 모든 트랜스젠더가 그런 것이 아닌데 단순한 단일 집단으로 그려버렸습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고) ‘투명’하죠. 그것이 미디어가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이에요.”

백 변호사는 가장 심각한 미디어의 주류 편향으로 ‘서울중심주의’를 꼽았다. 지역 차별과 혐오가 공기처럼 퍼져 있지만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투리를 ‘고쳤다’고 표현하고 상경을 성공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대체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나 세련된 전문직 인물은 서울말, ‘어수룩한’ 주변인물은 사투리를 쓴다. 지방을 ‘힐링’하는 곳으로 묘사하는 서울의 시선은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불쾌하게 느껴진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갈무리
▲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갈무리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당연하다는 듯 서울의 시선으로 지방을 바라봐요. 지방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죠. 모두가 다 전원주택에서 한가롭게 사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에 살면서 서울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지방을 격렬한 삶을 피하는 ‘도피처’로만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데도, 이러한 주류의 시선이 지방소멸을 부추긴다고 생각합니다.”

귀엽기만 한 우영우, ‘패턴화’된 주류의 시선

미디어가 획일화된 방식으로 소수자를 소비하는 이유로 백 변호사는 ‘패턴화’와 ‘상업주의’를 들었다. 편리하고, 돈이 벌린다는 뜻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결국 사고 과정을 압축해서 ‘패턴화’하는 식으로 진화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편리하니까요. 미디어가 가진 주류의 시선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선정적으로, 과하게 꾸미고 싶어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이미 패턴화돼 우리에게 편한 거죠. 이 편리한 것이 또 상업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주류 시선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대중의 거부감이 없으니까요.”

이를 기사화하는 언론도 동일한 방식으로 소수자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관련 기사들은 트랜스젠더 유이를 ‘각선미’, ‘도도한 손끝’, ‘영락없는 트랜스젠더’ 등의 단어로 묘사했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에 대해서도 언론의 주류 편향이 두드러졌다는 게 백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 시위를 거론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의 대표 토론 프로그램에서 장애 문제가 이슈로 등장한 적이 없었어요. 정치문제 같은 주류 이슈가 9개 나오면 1개 정도는 소수자 문제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시위 관련해서도 언론들이 제목을 얼마나 야박하게 뽑았나요. 제목만 보면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장애인 혐오가 생길 수밖에 없도록 묘사가 돼 있어요. 왜 시위가 일어나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죠.”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해외에서는 미디어 속 소수자 인권, 인종별 다양성을 고려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가 열풍이다. 한국에서도 미디어 속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지난 6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성공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우영우’를 중심인물로 등장시켜 ‘미디어가 변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백 변호사는 “‘우영우’ 역시 주류가 편한 방식으로 장애인을 소비했다”고 말한다.

“우영우는 너무 귀여워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해도 소리를 잠깐 지르고 혼자 괴로워하는 정도죠. 실제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는 장애인들을 보고도 우리가 우영우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영우 드라마로 ‘자폐 장애인들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댓글을 보면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죠. 실제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단순 ‘판타지’라고 생각할테니까요.”

소수자 입장도 생각해야…상식은 결국 변화한다

일각에선 PC주의에 ‘과도함’을 붙이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백 변호사는 이를 두고 “상식은 결국 변화한다”고 말했다. “마블 디즈니 등의 ‘PC’ 고려가 개연성을 해친다고 지적할 수는 있다고 봐요.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개연성 자체가 또 기성 주류의 시선이 아닌지는 점검해야 합니다. 2000년대까지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대와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기 마련이에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상식도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백 변호사는 주류 편향을 벗어난 대표적 사례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트랜스 리브스 온 스크린’을 꼽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트랜스젠더 작가, 배우, 영화감독 등이 등장해 할리우드가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묘사해왔는지 통렬하게 비판한다. 대체로 할리우드가 트랜스젠더를 희화화하고 역겨운 존재로 묘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트랜스 리브스 온 스크린’ 포스터.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트랜스 리브스 온 스크린’ 포스터.

“개인이 받는 상처, 침해 정도가 가장 심한 문제는 미디어의 성소수자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는 성소수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잖아요. 그 상황에서 미디어가 자신을 역겨운 존재로만 묘사하고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 성찰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거에요. 특히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10대의 경우가 더 심하겠죠. 그래서 누군가가 연기하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실제 트랜스젠더가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가 컸습니다. 재미도 있었고요.”

사회의 시선은 변화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대법원이 동성 군인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의 기존 해석을 폐기했다.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여도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 하에 이뤄졌다면 처벌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동성 군인간 성행위는 군형법에 따라 반드시 처벌받았지만 이번 판결은 그 적용 범위를 축소해 해석했다. 백 변호사는 이 판결이 ‘진일보’한 판결이라며 느리지만 사회 변화는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디어에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으로 돈 벌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너무 상업적으로만 풀지 말고, 어휘같은 것도 소수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죠. 특히 정말 왜곡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피해를 입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이니까요. 가장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성소수자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잖아요. 좋든 싫든 같이 사는 사람들, 주변에 늘 있는 이웃이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봐요. 미디어도 그렇게 변화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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