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성평등문화추진단) 사업을 연일 비판하고 나서면서 ‘한국영화 성평등 지수 측정’ 프로젝트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달리 제작진 및 출연자(등장인물) 비중을 성평등 척도로 삼는 건 국내외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버터나이프 크루와 같은 사업에 혈세가 3년 동안 들어갔다는 것이 개탄할 일”이라며 “버터나이프 크루의 어떤 사업은 한국영화에 성평등 지수를 매겼다. 여성 감독, 여성 작가, 여성 캐릭터 등 여성 비중이 높아야 성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런 사업을 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느냐”고 반발했다. 제작진과 등장인물 등의 성별 비중을 기준으로 콘텐츠 성평등 여부를 판단하는 것과, 이 같은 사업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합뉴스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합뉴스

앞서 지난 7월4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 사업을 가리켜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며 “지원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고 비판한 직후 사업이 폐지돼 논란이 됐다. 반발이 이어지자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업의 부적절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13일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그러나 권성동 원내대표의 주장과 달리 콘텐츠 제작진과 등장인물의 ‘성비’를 하나의 척도로 삼아 성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건 국내외에서 보편화된 방식이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자사 콘텐츠 영화∙시리즈 306건(2018년~2019년)을 분석한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콘텐츠 등장인물 뿐 아니라 제작진까지 젠더, 인종∙민족, 인종∙민족과 젠더 교차성, 특정 인종∙민족 편중, LGBTQ, 장애인 등 기준으로 비율을 분석했다. 여성 주연배우는 영화 48.4%, 시리즈 54.5%로 미국 여성 인구 대비 많은 비율로 등장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 이를 두고 ‘다양성 증진’ 사례로 자평했다.

반면 넷플릭스는 카메라 뒤의 성별은 여전히 특정 그룹에 편중됐다고 지적했다. 영화 제작진 가운데 남성은 감독 76.9%, 작가 74.8%, 프로듀서 71% 등으로 특정 성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 콘텐츠 제작 종사자 가운데 여성 비율. 윗줄은 넷플릭스, 아래는 관련 업계 평균이다. 출처=넷플릭스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Series & Films)
▲ 콘텐츠 제작 종사자 가운데 여성 비율. 윗줄은 넷플릭스, 아래는 관련 업계 평균이다. 출처=넷플릭스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Series & Films)

권성동 원내대표의 말과 달리 세금이나 공적 기금을 들여 이 같은 사업을 실시한 전례는 많다.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에선 ‘한국영화산업 성평등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를 통해 10년간 개봉한 흥행순위 50위 영화 468편을 분석한 결과 여성 주연 영화 비율은 24.4%에 그쳤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년간 개봉한 한국영화 1433편 중 여성 제작자 비율은 11.2%, 프로듀서는 18.4%, 감독은 9.7%, 각본은 17.4%, 촬영은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발표했다. 

TV 콘텐츠의 경우 ‘출연자(등장인물) 성비’와 관련한 조사나 연구는 더 활발하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관련 조사를 실시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디어 다양성 조사’를 통해 드라마 등 TV프로그램의 출연자 및 등장인물 현황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실제 인구분포보다 여성과 노년층, 노동계층, 장애인이 적게 나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9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실태조사’ 결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출연자가 여성출연자의 1.7배에 달했고, 프로그램을 이끄는 진행자와 고정출연자 수는 남성이 여성의 두 배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한국방송학회에 의뢰해 방송 프로그램별 출연자의 성비를 비교하는 방식의 미디어의 성차별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해외에서도 이 같은 방식의 사업은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에 게재된 ‘성 주류화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평등 영화정책’(김선아)에 따르면 스웨덴, 영국, 호주 등에서 영화 부문에서 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선보였다. 논문에 따르면 호주의 연방 영화 및 TV 자금 지원 기관인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는 제작지원을 받은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3년 간 주인공,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 4개의 주요 역할에서 여성의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스웨덴의 경우 2015년까지 공적기금이 투입된 제작 지원의 경우 감독, 작가, 프로듀서의 성비가 50:50이 돼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즉, 권성동 원내대표 주장과 달리 제작진과 출연자(등장인물) 성비 분석은 콘텐츠의 성평등을 측정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등장인물과 제작진의 성비를 분석하는 것이 콘텐츠 성평등 여부를 측정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인 건 아니다.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성적 대상화가 이뤄진 작품일 수 있고 감독의 성별과 무관하게 성차별 콘텐츠가 나올 수도 있다. 다만 경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다양성 보고서를 통해 “카메라 뒤에서의 여성 참여는 더 많은 여성이 화면에서 역할을 이끌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남성이 캐스팅 결정권을 쥐는 것이 여성인 경우에 비해 젠더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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