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골 노모의 목소리에 근심이 짙다. 내년 노인일자리에서 탈락할까봐 조마조마. 정부에서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발표한 탓이다. 올해 팔십줄에 접어든 당신이 먼저 탈락될 거라며 몹시 초조한 기색. 노인들이 서로 나이를 세며 내년에는 못 보겠네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가장 섭섭한 게 뭐냐면. 되게 심심할 것 같아서 말야.”

이번 추석 때 엄마가 큰이모와 나눈 통화 내용도 그랬다. 군산에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큰이모도 일자리가 사라질까봐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화로 속사정을 털어놓는 두 노인네의 흐린 목소리를 듣자니 속이 시끄럽다. 전국에서 이렇게 느닷없이 불안에 잠식당한 노인들이 족히 수만은 될 터다.

한 달에 30시간, 하루 3시간, 월 27만 원. 이른바 공공형 노인일자리. 저소득층 노인들의 생계비 보전을 위해 시행된 직접 일자리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환경 미화나 시설물 점검 같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 노모의 경우, 조끼를 입고 시골 동네와 공원 등지를 돌며 청소를 하거나 잡풀을 제거하고 있다.

2020년 통계청의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 인구의 73.9%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노인일자리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소득과 자산 기준 선발이어서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태반이다. 또 참여자의 90%가 70대 이상이고, 이중 2/3이 여성이다. 거기에 대부분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말하자면 공익형 일자리 상당수가 ‘가난한 여성 노인들’의 생존 일터인 셈이다.

한편 노인일자리는 신체적 활력, 치매 예방, 우울증 감소과 같은 복지 시스템으로도 기능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병원 이용 횟수가 줄고, 우울증도 32.3%에서 7.3%로 대폭 감소한다. 사회적 노동과 공공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탓이다. 또 유대감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긍정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 시골 노모가 걱정하는 ‘심심함’은 바로 그 유대감의 상실에 따른 두려움의 표현이다. 공공의 돌봄 시스템이 거의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독거 노인들에게 유일하게 일상의 인삿말을 건네는 건 오직 TV 드라마뿐이다. 엄마는 노인일자리로 꽤 많은 말벗을 만났다. 운동도 같이 다니고, 텃밭 채소도 나눈다. 소박한 청소 노동이지만 마을과 공원을 돌보고 있다는 자긍심에 새로 사귄 말벗과의 친목까지, 전에 보지 못한 활력이 돌았다. 판데믹 기간 노인일자리 사업이 중지됐을 때도 적적함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이제 일자리에서 쫓겨나 외로움의 모퉁이에 유폐될 처지가 됐다.

▲ 대한은퇴자협회 회원들이 9월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등에 반대하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한은퇴자협회 회원들이 9월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등에 반대하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의결된 2023년 정부 예산안. 직접 일자리 예산 902억 원이 도려내졌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6만1천 개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대신 민간 기업들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시장형 일자리 3만8천개 를 늘이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변명은 ‘건전재정’과 ‘민간 중심 일자리 창출’.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엔 가난한 노인네들 일자리를 날려 공공지출을 줄이고 민간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죽지도 않고 돌아온 신자유주의의 그 지겨운 돌림 노래다. 공공형 일자리에서 쫓겨난 나이든 여성 노인들이 시장형 일자리에 옮겨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대책도 없이 방출되는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철지난 신자유주의 기조는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긴축을 강요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시장에 포함되지 않는 돌봄 노동과 공적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그저 돈 낭비와 도덕적 해이로 단죄한다. 노인일자리의 경우, 외려 더 나은 노동의 퀄리티와 임금 조건, 공동체의 돌봄과 공공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으로 조타수를 돌리는 것이 사회의 번영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지임에도, 이 중요한 가치를 효율성과 시장의 이름으로 일거에 퇴출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공공 지출은 줄이고 시장 확대 명목으로 기업과 부자들의 이익을 보증하는 불평등의 전위부대를 자처한다. 부동산 부유세를 삭감하고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를 감면하는 것으로 향후 5년간 대기업과 고위 자산가들에게 수십 조 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물론, ‘돌봄과 교육을 민간 주도로 고도화’한다며 사회보장 시스템 자체를 민영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닥치는 대로 규제를 풀어 마지막 남은 공공성마저 시장의 먹잇감으로 던져놓으려는 것이다.

고소득층에 감세 혜택을 주면 민간 기업들이 ‘역동적으로 혁신 성장’을 하게 돼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미 전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끝없이 심화시킨 양치기 거짓말로 지탄 받고 폐기처분되고 있는 저 낡고 한심한 공염불이 바로 현 정부의 사상적 기초다. 판데믹과 물가 위기를 경유하며 다른 나라들은 떼돈을 번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자며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욕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대통령 뒤로 슬그머니 귀환한 올드보이들은 나라 곳간을 활짝 열고 부자들만의 잔치를 여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대통령실은 청와대 영빈관 신축을 위해 900억 원의 예산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시민들 비판으로 금세 취소됐지만, 제 편리와 잇속 챙기는 데만 얼마나 골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환장의 에피소드. 그 잘난 건물 하나 꾸미겠다고 요청한 900억 원은 공익형 노인일자리 6만1천 개가 삭제된 비용과 같다. 6만1천의 그 가난한 노인들의 노동력과 웃음, 바로 삶의 무게 말이다.

“이 나라는 부자들에게는 사회주의를, 가난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개인주의를 적용한다.”

마르틴 루터 킹의 저 유명한 격언이야말로 신자유주의를 숭앙하는 현 정부의 영혼의 구령일 것이다. 가난하고 늙은 여자들한텐 혹독하게 긴축을 강요하는 대신 부자들에겐 아낌없이 베풀고 나눠주는 그들만의 정겨운 사회주의, 기업들만을 위한 호혜의 정부. 부자들의 사회주의자 윤석열이 그렇게 엄마를 내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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