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슈퍼마켓의 올리브오일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절도를 막기 위해서다. 최근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가장 많이 훔치는 게 올리브오일이다. 올리브 농장에서도 절도 행각이 벌어져 단속에 나섰다. 세계에서 올리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인데, 자물쇠를 채워서까지 올리브 절도를 막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올리브 가격이 4년 동안 3배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과수원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근래 들어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가문 지역이 됐다. 초콜릿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최근 2년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바, 빌리 홀리데이를 과연 누가 죽였는가? 지독했던 생의 고통이었을까? 술이었을까? 아니면 헤로인이었을까? 최근 영화 (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2021)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44살의 이른 나이에 그녀를 죽음의 낭떠러지에서 떠민 게 연방마약국(FBN)이었다고 주장한다.이 작품은 영국 작가 요한 하리의 마약과 약물 연구서인 (Chasing the Scream: The First and Last Days of the War on
“지금 팔레스타인에는 올리브 시즌이 왔습니다. 항상 일년 중 가장 행복한 시기였는데 올해는 가장 슬픈 시기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며칠 전, 트위터에서 가자 소식을 보다가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쓴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녀의 말처럼, 가자와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10월과 11월은 가장 빛나는 계절이다. 풍요의 올리브 수확철. 그렇기에 매년 10월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올리브 열매를 딴다. 또한 미처 다 수확하지 못한 이웃에게 손을 빌려주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의 오랜 상호부조
쇠똥구리는 인간을 제외하고 은하수를 보며 길을 찾는 유일한 비인간 존재이다. 은하수뿐 아니라 달과 태양을 보고도 길을 찾는다. 시력은 안 좋지만 먼 빛은 정확하게 판별하는데,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은하수를 기준점 삼아 자신의 출발 위치를 두뇌에 기록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멀리 와도 소똥 경단을 자기 집까지 직선으로 굴릴 수 있다.은하수를 보며 집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존재, 그 쇠똥구리를 직접 본 호사를 누렸다. 유년 시절, 이슬에 찬 신작로 위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지구를 든 아틀라스처럼 소똥 경단을 굴리며 분
‘한국 대기업 때문에 한 나라의 정부가 전복됐다’는 이야기가 사실일까?“한국의 대기업 대우는 4년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농업 용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의 절반을 그야말로 웃음이 나올 만큼 적은 돈을 주고 99년 동안 임차하려 했습니다. 한국으로 수출할 옥수수와 팜유를 재배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를 위해 대우는 지방 관료들부터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뇌물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거래에 관한 정보가 드러나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를 무너뜨리고 말았죠.”국내에 번역된 라는 책에 등장하는 단
미국 학교에는 1만4000명에서 2만 명 정도의 학교 경찰관이 상주한다. ‘학교 자원 담당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 이후 학교 내 경찰 배치가 본격화됐는데, 이 과정에 1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일종의 학교 보안관이다. 총기, 마약, 싸움, 성폭력 등을 단속하고 징벌한다. 사회의 사법화를 넘어 ‘학교의 경찰화’가 구축된 것이다. 표면적으로 학교 내 강력 범죄가 줄어든 듯 보이지만, 되려 범죄 규모와 처벌이 증가했다. 침 뱉기, 작은 다툼, 휴대폰 사용, 복장 문제 등 예전엔 교사들에 의
지난 금요일(24일), 영국에선 프라이드 퍼레이드 50주년을 기념하며 ‘영국 성소수자 어워드(British LGBT Awards)’가 성대하게 열렸다. 성소수자 인권과 프라이드(Pride)의 가치를 알린 인사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행사. 배우 엠마 왓슨 등 유명 인사들이 후보에 올랐고, 정장 차림의 스타들이 시상식 포토 월에서 한껏 유명세를 과시했다.그런데 어워드가 열리던 그 시각, 시상식 건물 앞에 일단의 성소수자들과 기후활동가들이 보이콧 시위를 벌였다. ‘무지개 자본주의가 아니라 해방’, ‘화석연료 속에 프라이드는 없다’ 등의 플
“우리에게 가족의 보호는 국가 안보 문제입니다. 이 나라에서 성소수자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30년 집권 연장의 기로에 서 있는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대선 연설의 일부분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최근 몇 년 사이 ‘동성애 반대’를 핵심 정치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표현을 규제해왔다.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것이다. 작년 6월에는 성소수자 퍼레이드를 진행하려던 활동가 370명을 구속했다.심지어 지난 9월 이스탄불에서는 성소수자 증오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이 ‘가족 보호는 국가 안
흔히 네덜란드를 ‘세계 자전거의 수도’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진심으로 자전거를 즐겨 탄다. 교통 수단 중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36% 남짓되고, 평균적으로 1인당 자전거를 1대 이상 가지고 있는 나라. 명실상부 자전거의 왕국이다.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1971년에 네덜란드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3,300명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그 중 어린아이가 500명 이상이었다. 1960년대 네덜란드는 온통 자동차의 매혹에 빠져 있었다. 1960년 52만대에서 1971년 275만대로 급증했다. 도로는 자동차와 매연으로 혼잡해졌
“대중교통은 공공재입니다. 공원, 도서관, 학교, 공교육만큼 필수적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대중교통 무상화는 우리가 경제적 평등, 인종적 형평성,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조치 중 하나입니다.”2022년 미국 보스턴 시장에 당선된 미셸 우의 최우선 정책은 대중교통 무상화였다. 보스턴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초의 유색인종, 최초의 어머니로 시장에 당선됐다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뒤로 하고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보스턴 외곽을 순환하는 세 개 노선의 버스 요금을 무료화하는 것으로 시정의 첫 씨앗
2021년 케냐의 노동자들은 9시간 교대 근무 환경 속에서 인터넷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추출한 수만 개의 조각난 텍스트들을 샅샅이 뒤져야 했다. 대부분이 아동 성적 학대, 수간, 살인, 자살, 고문, 자해, 근친상간 등의 폭력적인 내용들. 한 노동자는 개와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 대한 그래픽 묘사를 읽은 후 계속 환각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건 고문이었다”고 토로했다.이들은 케냐의 텍스트 라벨링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폭력적인 텍스트에 노출된 채 라벨링 작업을 하며 받는 임금은 고작 시간당 1.3달러에서 최
넘쳐도 너무 넘친다. TV 예능 태반이 온통 주지육림이다. 연예인과 전직 스포츠 선수들이 누가 더 게걸스럽게 먹는지, 누가 더 큰 위장을 가지고 있는지 갖은 식탐을 배틀한다. TV만 켜면 쩍 벌린 입의 몽타주들. 먹다가 토하고 또 먹고, 마치 폐망 직전 로마의 귀족들처럼 걸신 들린 듯 음식을 흡입한다.그중 고기 먹방이 나오면 못내 채널을 돌린다. 토마호크가 어떻고, 마블링이 어떻고, 세상 모든 진리가 그 붉은 고기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품평하며 밤낮없이 입속에 구겨 넣는다. 기후-생태 위기 시대에 절제해야 될 소비 행
군산에 사는 큰이모가 이번 폭설에 낙상사고를 당했다. 눈 쌓인 인도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서울 성북구의 30대 지인도 빙판길에 낙상사고를 겪었다. 이마가 찢어졌다. 우리 고향의 노모도 며칠 동안 눈속에 고립됐다. 시골이라 고귀하신 제설차 따위는 행차하지 않았다. 마냥 방치된 채 성탄절에 성당에 가질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저 도로는 눈을 치워주는데, 우리집 길은 왜 안 치워주는 거야?”작년 이맘 때도 우리 노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자동차 도로는 눈을 치워주고, 왜 사람 다니는 길은 그냥 놔두냐는 것이다. 노인들이 다니고 아
카타르 월드컵은 스캔들이다. 이미 카타르 개최에 표를 던진 22명의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집행위원 중 16명이 부패와 비윤리적 과실 혐의로 조사를 받았거나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터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추악한 부패 사건이었다.공교롭게 월드컵 개막 직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 ‘피파 언커버드’는 개최국 선정을 둘러싼 은밀한 커넥션과 피파의 부패를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그물망처럼 엮여진 부정부패의 사슬, 그리고 프랑스 등 몇몇 국가들이 천연가스와 오일 머니에 현혹돼 카타르에 표를 던졌다는 정황이 빼곡이 담겨 있다. 세계 최대
레스토랑의 시작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다, 이런 가설로 제작된 최근의 영화 한 편이 있다, ‘딜리셔스’(2022). 부유한 귀족의 요리사가 부당하게 쫓겨난 후 지역 역참에 행인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개설한 음식점이 최초의 레스토랑이라는 것이다. 앙시앵 레짐으로부터 신분의 자유뿐 아니라 왕과 귀족의 소유물이었던 맛있는 요리도 해방됐다는 전제가 영화의 배경이다.프렌치 레스토랑이 대체적으로 18세기 중후반에 생겼다는 사료들에 견줘 봤을 때 딱히 섣부른 가정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등장한 ‘평등의 빵’을 봐도 그렇다.
요즘 시골 노모의 목소리에 근심이 짙다. 내년 노인일자리에서 탈락할까봐 조마조마. 정부에서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발표한 탓이다. 올해 팔십줄에 접어든 당신이 먼저 탈락될 거라며 몹시 초조한 기색. 노인들이 서로 나이를 세며 내년에는 못 보겠네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돈도 돈이지만, 가장 섭섭한 게 뭐냐면. 되게 심심할 것 같아서 말야.”이번 추석 때 엄마가 큰이모와 나눈 통화 내용도 그랬다. 군산에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큰이모도 일자리가 사라질까봐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화로 속사정을 털어놓는 두 노인네의 흐린 목소리를
반지하에 산 지 25년. 그 사이 집주인이 세 번 바뀌었고, 어쩌다 보니 이 다세대주택의 지박령이 됐다.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된 건 좀체로 밀린 월세를 독촉하지 않는 집주인 덕이 크지만, 이 지역이 비교적 지대가 높아 침수 위험이 적은 탓도 있다. 침수 걱정에 폭우 쏟아지는 검은 밤을 서성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115년 만의 홍수, 머리가 쭈뼛거리는 비상사태였다.침수로 반지하에서 4명이 사망했다. 남 일이 아닌 것 같아 잔뜩 신산한데, 갑자기 사람들이 반지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모두 없애야 한
지구의 운송 수단 중 가장 불평등한 건 무엇일까? 바로 항공이다. 비행기만큼 불평등하고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수단이 없다. ‘지구 환경 변화’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2~4%만 국제선을 이용한다. 단 1%가 항공기의 이산화탄소 50%를 배출한다.“세계 인구의 80%가 아직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장 동력입니다.” 2017년 보잉사의 CEO 데니스 뮬렌버그는 경제방송사 cnbc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실토했다. 각종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세계 인구의 약 80%가 상업용 비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