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도 너무 넘친다. TV 예능 태반이 온통 주지육림이다. 연예인과 전직 스포츠 선수들이 누가 더 게걸스럽게 먹는지, 누가 더 큰 위장을 가지고 있는지 갖은 식탐을 배틀한다. TV만 켜면 쩍 벌린 입의 몽타주들. 먹다가 토하고 또 먹고, 마치 폐망 직전 로마의 귀족들처럼 걸신 들린 듯 음식을 흡입한다.

그중 고기 먹방이 나오면 못내 채널을 돌린다. 토마호크가 어떻고, 마블링이 어떻고, 세상 모든 진리가 그 붉은 고기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품평하며 밤낮없이 입속에 구겨 넣는다. 기후-생태 위기 시대에 절제해야 될 소비 행동으로 요구되는 육식을 저렇게 거리낌없이 전시하고 소비하는 게 온당한 걸까.

의문이 하나 꽂힌다. 고기 먹방은 왜 모자이크를 안 할까. 담배 피우는 장면을 모자이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 모방을 염려해서다. 공중보건과 건강, 간접 피해 등 여러 사회적 비용을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면 소고기는 어떤가?

만약 당신이 소고기 500g를 섭취했다면, 대략 29kg의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계량된다. 이는 자동차로 113km를 주행하는 것과 같다. 2015년 식량농업기구(FAO)와 미국 환경보호국의 연구 결과다. 소고기를 먹는 건 이토록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과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다. 당연히 담배보다 더 해롭다.

▲축산업 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비교. 2010년 미국 환경보호국 홈페이지 갈무리
▲축산업 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비교. 2010년 미국 환경보호국 홈페이지 갈무리

이미 숱하게 반복된 이야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도 지난 세월 수차례 보고서로 곡절하게 권고해왔다. ‘육식을 줄이십시오. 채식 기반의 식단으로 전환하십시오. 그것이 인간이 지구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지혜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축산업 배출량 연구과 통계는 이해관계에 따라, 또 측정 방식에 따라 결과가 상이하게 각축하는 회색지대에 가깝다. 축산업계에 편향된 연구는 배출량을 줄이고, 채식운동진영은 다소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신뢰할 만한 데이터들이 존재한다. 식량농업기구 연구에 따르면, 현재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4.5% 남짓이다.

사료 생산(58%), 소화 과정(31%), 가공 및 운송(7%), 분뇨 저장(4%) 순이다. 목초와 사료용 곡물의 온실가스가 가장 크다. 60년대 이후 목초와 대두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끊임없이 불태웠다. 현재도 매일 전 세계에서 뉴욕 센트럴파크의 30배 크기의 열대우림이 속절없이 잘려나가는데, 목초와 대두 생산이 가장 큰 요인이다. 국내 사료의 상당수가 최대 농축식품 기업인 카길을 거쳐 남미로부터 온다.

▲화석 연료 관련 이미지. 사진=Unsplash
▲화석 연료 관련 이미지. 사진=Unsplash

반추동물은 소화 과정에서도 방귀와 트림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소가 단연 압도적이다. 1마리당 70~120kg의 메탄을 발생한다. 메탄은 20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보다 82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이에 온난화 위험을 알렸던 영국의 경제학자 스턴 경은 소고기 섭취를 아예 음주운전처럼 단속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통상 소고기 1kg당 60~70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자동차로 수백 km를 달리는 것과 같다. 소고기가 ‘식탁 위의 SUV’라는 별칭이 붙는 이유다. 항간에는 저탄소 분뇨 시설, 운송 거리 단축, 해조류 사료 개발로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소고기 섭취는 비단 온실가스 문제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영구동토를 제외하고 지구 표면의 3분의 1이 경작지다. 유엔(UN) 환경프로그램에 따르면, 축산업은 경작지의 78%를 차지한다. 전 세계 곡물의 절반 가량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동물 사료로 쓰인다. 미국 옥수수의 80% 가량이 사료로 가공된다. 10% 남짓은 바이오연료로 전환된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60% 가량을 이렇게 소와 자동차가 먹어치우는 동안, 세계 인구의 8분의 1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인다. 매년 9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10초에 어린아이 한 명씩 굶어 죽는다. 이 와중에도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에서는 음식의 상당수를 쓰레기로 버린다. 통상 전체 식품의 3분의 1이 그냥 낭비된다. 이 음식 쓰레기는 무려 온실가스의 6~8%를 차지한다.

▲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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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흥청망청, 다른 쪽에선 기근의 증가. 이것이 오늘날 불평등한 식품 시스템의 구조다. 단 4개의 초대형 농축산업 기업들이 전 세계 식품 생산-유통망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물가로 떼돈을 벌어들였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도 식량을 쟁여 놓는다. 가격 이득을 보기 위해서다.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이 굶고 있는 건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북반구 자본주의가 플랜테이션 식민지와 불평등 교역으로 자급자족의 식량 체계를 철저히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인구가 과잉이라고? 현재 세계 경작지의 생산량은 120억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다. 단지 식량의 절반 이상이 소와 자동차 속으로 갈려 들어가고, 식품 시스템이 소수의 독점기업과 투기 금융에 무자비하게 전유되어 있을 뿐이다. 소고기는 그렇게 불평등의 산물이다. 경작지의 78%를 차지하는데 칼로리는 고작 18%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영국이 버팔로를 학살하고 원주민을 내쫓은 북미 평원에 유럽 육종을 옮겨 놓으며 육식자본주의를 시작할 때 등장한 격언이 있다. ‘소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입을 쩍 벌리고 필사적으로 고기를 구겨넣는 먹방을 볼 때마다 그 슬픈 격언이 떠오른다.

▲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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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것은 그저 소고기가 아니다. 소고기 1kg에는 곡물 생산을 위한 화학비료와 살충제, 축산 시설 운영으로 인해 통상 화석연료 12kg이상이 들어간다. 사실 우리는 소고기로 형상화된 검은 석유와 천연가스, 가난한 이웃의 배고픔, 미래 세대의 삶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오늘날 육식의 과잉은 급박한 기후-생태 위기에도 제 이윤만 챙기느라 계속 연기를 내뿜는 화석연료 발전소의 굴뚝에 진배없다. 불평등의 쓰나미 속에서 운좋게 구명보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먹는 기름진 위선의 만찬과 같다.

2023년 엘리뇨의 귀환으로 역사상 처음 1.5도 상승을 웃도는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거라는 과학자들의 비탄이 쏟아지는 이즈음, 소고기 먹방의 윤리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육식의 절제와 채식 기반의 식단에 대해 ‘미국적인 것’을 붕괴시키는 좌파들의 공세라 몰아붙이는 미국의 저 아둔한 극우가 아니라면, 이제 함께 우리의 식품 시스템과 밥상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밥상,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두루 존중되는 밥상, 그저 먹기 위해 먹는 저 즉물적 소비로서의 비루한 밥상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함께 나누기에 풍요로운 밥상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냐에 따라 세계의 풍경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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