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만화가 천계영이 지난 2014년부터 다음 웹툰(현, 카카오웹툰)에 연재하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이 209화를 끝으로 완결되었다. 약 9년 간 진행된 연재에, 200화 가까운 연재의 기록은 웬만한 작품은 결코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연재 기간 동안 50억의 누적 조회수도 무척이나 놀라운 기록이자, 작품이 지닌 인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이다.

어디 그뿐인가. 연재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지난 5월에는 카카오TV에서 해당 작품을 오리지널 예능으로 제작하기로 결정된 소식은 10년 가까운 연재 기간 동안 ‘좋아하면 울리는’이 여러모로 드높은 인기를 받았음을 보이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출판만화의 전성기인 1990년대 ‘언플러그드 보이’나 ‘오디션’ 등의 작품으로 인기를 받았던 만화가가 웹툰의 시대가 된 2010년대에도 꾸준히 추억 속으로 잊히지 않고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또는 평소 만화나 웹툰 관련 뉴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연재 기록에는 단순히 숫자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연재가 끝날 즈음에는 격주간 연재로 전환되었지만 본래 이 작품이 주간 연재, 게다가 한동안은 한 주에 2번씩 연재를 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9년간 약 200화 연재라는 ‘좋아하면 울리는’의 기록은 상당히 큰 공백들이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이다.

▲천계영 '좋아하면 울리는' 만화.  
▲천계영 '좋아하면 울리는' 만화.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러 뉴스를 통해서 알려진 것과 같이 천계영 작가의 건강 상태가 문제였다. 2018년 3월 7일, 162화가 올라온 이후 천계영 작가는 ‘좋아하면 울리는’의 연재를 기약 없이 중단했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에 이유를 알 수 없어하자, 작가는 몇 차례의 연재 공지를 통해서 ‘건강 문제’를 휴재의 이유로 설명했다. 체내에 양성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고, 동시에 병원에서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 부위의 연골이 닳아서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종양과는 별개로, 손가락에 점차 이상이 발생하고 결국은 정상적으로 연재를 진행하는 것도 버거운 순간까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2018년 중에는 완결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함께 남기며 불안을 느끼는 팬들을 안심시키는 문구도 함께 남겼다.

그러나 ‘좋아하면 울리는’은 결국 2018년에 연재를 재개하지 못했다. ‘좋아하면 울리는’의 팬들을 비롯한 천계영의 오랜 독자들이 작품의 연재를 계속 기다리고 있던 지난 2019년 6월, 천계영 작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천계영 작가의 손가락 이상은 텍스트로 전하던 이야기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양성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에도 여러 가지 질병들이 연속해서 발생했으며, 결국 더 이상 손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고백했다.

건강 문제로 휴재했던 천계영 만화가, 음성 명령으로 작업

하지만 천계영 작가는 동시에 ‘좋아하는 울리면’의 연재를 영구히 중단하는 것도, 만화가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것도 아님을 말했다. 해당 라이브 방송에서 천계영 작가는 자신이 컴퓨터에 음성으로 명령하는 것에 따라, 프로그램에 캐릭터가 배치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었다. 아직 아날로그 원고 작업이 대세였던 시기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했던 천계영 작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캐릭터나 배경 작업도 일일이 손으로 그리지 않고 3D로 사전에 캐릭터 등을 모델링하고, 상황에 맞춰 배치하는 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지 오래였다. 비록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지만, 최대한 자신이 보유한 컴퓨터 활용 능력과 근래의 컴퓨터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조합하여 손으로 작업하는 것보다는 느릴지 몰라도 음성으로 만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이 방송을 통해 보인 것이다.

▲'좋아하면 울리는' 1편.
▲'좋아하면 울리는' 1편.

필자도 당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들었던 생각은 천계영 작가가 다시 만화가로 활동할 수 있다는 안도감, ‘좋아하면 울리는’이 무사히 완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는 감각보다는 몸의 기능이 심각하게 좋지 않아지는 상황에서도 작품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컴퓨터 기술을 통해 음성 인식을 거쳐 작품을 한 땀 한 땀 만드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만화를 그리는 행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만화가’라는 직업은 세간에는 잘 부각되지 않지만, 생각 이상으로 질병에 취약한 직업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작업을 하는 특성상 손은 물론 목, 허리 등의 관절도 함께 무리를 받기 쉽다. 동시에 ‘자리에 앉아있을 일이 많다’는 것은 다시 운동 부족을 불러온다. 직접적인 관절과 관련된 질환이 아닐지라도, 적절한 운동이 부족하며 발생하기 쉬운 다양한 질환에 노출되기도 쉽다. 한편으로 어시스턴트 등 이외에는 작업 과정에서 대인과의 만남이 부족하기 쉽게 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익숙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잘 맞을 수도 있어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심리적인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만화 작업과는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작품이 거두는 수익이나 인기 성적, 작품을 마무리 지은 뒤 후속작을 준비하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화가, 생각 이상으로 질병에 취약한 직업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작가들이 알게 모르게 여러 질환으로 만화계를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활동하며 ‘허공의 질주’, ‘틴 스피릿’ 등의 작품을 그린 만화가 김지은은 2011년 대장암으로,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나 ‘어색해도 괜찮아’ 등 코믹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의 고유한 스타일의 만화를 그렸던 만화가 권교정도 2011년 대장암에 걸렸음을 알리며 오랜 시간 동안 투병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은 해외의 작가들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당장 다크 판타지 장르에서 일가견을 이루고, 동시에 집요할 정도의 세부적인 그림 묘사로 주목을 받았던 ‘베르세르크’를 그린 일본의 미우라 켄타로 작가가 지난 2021년 5월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의 주변 인물 인터뷰에 의하면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가량 최대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고 하지만, 고인은 1985년부터 데뷔를 한 중견 작가이다. 10년 간 건강하게 살았다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건강의 피해는 결국 안타까운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유유백서’, ‘헌터 X 헌터’ 등의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일본의 만화가 토가시 요시히로 또한 마찬가지이다. 토가시 작가는 2000년대 이후 계속 장기 휴재가 반복되며 많은 팬들에게 원성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자신의 개인전을 앞두고 트위터로 공개한 친필 편지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드러났다. 계속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결국 2년 전부터는 의자에 앉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허리의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는 이야기였다. 화장실에서 변을 볼 때 허리를 숙일 수가 없어서 변을 볼 때마다 샤워를 해야 했다는 이야기,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해 반 정도 누워서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상상 이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토가시 요시히로가 공개한 친필 편지. 
▲토가시 요시히로가 공개한 친필 편지. 

천계영 작가는 일찌감치 작업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원고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다시 직접적인 선화 작업보다는 3D 모델링 작업을 택하는 등 ‘효율적 작업’을 계속 시도하던 작가였다. 이러한 효율은 같은 작품을 그릴 지라도 지나치게 체력을 소모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최소한의 공력으로 질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 차원에서의 노력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화계 특유의 작업 노동 환경은 끝내 신체에 큰 아픔을 남기고 말았다.

천계영 작가, 여성 웹툰 작가 전용 카페 겸 작업실 열어

천계영 작가는 작품을 마친 이후인 지난 5월, 서울시 마포구에 자신이 온갖 어려움을 겪은 끝에 마무리한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이름을 딴 여성 웹툰 작가 전용 카페 겸 작업실을 만들었다. 작업을 위해 집에 오랜 시간 있기 좋고, 다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 여러 속사정이 있어도 소통할 길이 많지 않은, 동시에 여전히 사회의 젠더 차별 문제로 같은 문제를 겪어도 더 소외되거나 차별받기 쉬운 여성 만화가들을 위한 작가의 조그마한 선물과도 같은 공간이다.

▲천계영 작가가 작품 완결 뒤에 여성 웹툰 작가 전용으로 만든 카페 겸 작업실 관련 사진. (사진 출처=한국만화가협회)
▲천계영 작가가 작품 완결 뒤에 여성 웹툰 작가 전용으로 만든 카페 겸 작업실 관련 사진. (사진 출처=한국만화가협회)

천계영 작가가 작품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공간을 연 것은 자신이 20년 넘게 보내온 만화가 생활에서 얻은 고민을 만화가들을 위한 공동의 공간을 통해 조금이라도 해소해보자는 생각이 만든 결과이리라. 하지만 이 공간이 생긴 목적 의식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이 공간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모색하고, 이를 위한 정책의 마련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만화가니까 질병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넘어, 근래 다수의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시행하는 건강검진 지원을 넘어 적정 작업량, 적정 작업 주기를 비롯한 ‘노동의 조건’을 공동으로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한계는 많지만 근래 시행되는 ‘예술인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보장의 적용을 함꼐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논의들이 꾸준하게 이뤄지고, 실제 정책이나 제도, 계약 등의 개선으로 실행될 때 비로소 이 공간이 태어난 의미를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장애인 문제나 빈곤 문제를 말함에 있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극복했다는 식의 서사’가 실제 장애인이나 빈곤인 당사자가 놓인 문제를 가린다는 비판처럼 이제는 만화가의 노동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한 개인의 안타까운 사건, 또는 훈훈한 미담을 넘어 근본적인 개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천계영 작가가, 그리고 ‘좋아하면 울리는’이 남긴 진정한 메시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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