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뉴스 하나를 보았다. 지난 8월 2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영된 중국과 관련된 뉴스 꼭지였다. (참고 기사 : MBC 뉴스데스크: ‘한국’을 숨겨라… 한국 웹툰의 중국 영화 성공기) 뉴스는 지난 7월 중국에서 개봉하여 흥행 중인 영화 ‘두싱웨추’(独行月球, 독행월구, 한국어로 해석하면 ‘달을 홀로 다니다’라는 뜻이 된다)라는 작품을 다루고 있다. 기사는 해당 작품이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연재된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의 SF 웹툰 ‘문유’를 원작으로 하고 있음에도 “포스터 어디에도 한국 만화가 원작이라고 표시된 부분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2016년 성주 사드 기지 배치 사태 이후 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지 콘텐츠 업계가 ‘한한령’(한류 제한령, 금지령)의 여파가 계속 되고 있음을 다루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한한령의 영향력 이상으로, 해당 뉴스가 다루고 있는 한한령 지속의 ‘근거’가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았다는 인상이었다. ‘영화 포스터에 제대로 원작이 표기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토대로 해당 국가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특정 국가를 꺼린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사실은 한국 영화 역시 이 문제에서 오랜 시간 자유롭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8월2일 MBC '한국'을 숨겨라‥한국 웹툰의 중국 영화 성공기 보도 갈무리. 
▲8월2일 MBC '한국'을 숨겨라‥한국 웹툰의 중국 영화 성공기 보도 갈무리. 

한국 영화는 영화 관람객이나 평론가, 업계인 등 사이에서 원작에 대한 표기가 매우 인색하다 못해, 적극적으로 숨기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등 인기 배우가 한꺼번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동시에 제한된 무대 내에서 연극적으로 ‘스마트폰’을 놓고 벌어지는 희노애락을 그린 2018년 영화 ‘완벽한 타인’은 사실 2016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Perfetti sconosciuti’(뜻은 한국 개봉제인 ‘완벽한 타인’과 같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영화 포스터는 물론 기자나 평론가들에게 전달되는 보도자료에도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 오로지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오는 스탭롤에만 해당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창작된 다른 한국 영화 상당수도 큰 차이는 없다. 2013년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조의석·김병서 연출, 설경구-정우성-한효주 주연의 ‘감시자들’은 사실 2007년에 공개된 유내해 연출의 홍콩 영화 ‘천공의 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감시자들’에 원작의 주연 배우였던 임달화가 특별 출연할 정도로 원작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표했지만, 영화는 스탭롤을 제외하면 이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강한 센세이션을 끈 이누도 잇신 연출 2004년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국 리메이크인 김종관 연출의 2020년 영화 ‘조제’ 등 이미 한국에서 원작이 너무나도 유명하게 알려진 작품조차도 스탭롤을 제외하면 제대로 원작에 대한 안내가 없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보았을, 또는 보았더라도 스탭롤이 올라가자마자 극장을 나왔을 관객들에게는 단순히 이 작품이 원작 없이 창작된 작품으로 오해하기 무척 쉽다. 물론 음악에서 작곡 이상으로 ‘편곡’이 중요하듯, 영화 역시 원작 이상으로 적절한 ‘각색’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을 만들기 위한 핵심 인물을 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어떠한 이들의 참여가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크레딧 표기는 주요하다. 알기 쉽게 크레딧을 표기하지 않거나, 설사 표기하더라도 정말 보기 힘든 영역에만 꼭꼭 숨겨 공개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표기로 볼 수 있을까.

▲같은 이탈리아 영화 ‘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과 일본 영화 ‘어른의 사정 :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더니’의 포스터 하단. 아무런 원작 정보가 없는 한국 포스터와 달리 일본 포스터에는 원작 정보가 충실히 기재되어 있다.
▲같은 이탈리아 영화 ‘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과 일본 영화 ‘어른의 사정 :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더니’의 포스터 하단. 아무런 원작 정보가 없는 한국 포스터와 달리 일본 포스터에는 원작 정보가 충실히 기재되어 있다.

기사를 보고 나서 궁금해서 ‘원작이 있는 중국 영화’ 작품의 포스터는 과연 원작을 어떻게 기재하고 있는지 가능한 찾아보았다. 결과는 중국 영화의 원작 표기 상황은 한국과 비슷했다. 심지어는 CJ ENM이 직접 중국판 제작에 관여한 ‘수상한 그녀’의 중국 영화판 ‘20세여 다시 한 번’에도 작품의 원작에 대한 포스터 및 보도자료 상의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한한령이 본격적으로 발동되기 시작한 2014년에 제작, 공개된 영화인데도 말이다. 즉, 한한령의 실제 발동 상황과 별개로 최소한 ‘포스터에 원작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이것을 한한령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일단 원작 분석부터 어긋난 점이 있던 것이다.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를 해당 영화의 투자배급사 CJ ENM의 주도로 중국에서 리메이크 한 2014년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의 포스터. 원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를 해당 영화의 투자배급사 CJ ENM의 주도로 중국에서 리메이크 한 2014년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의 포스터. 원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만약 MBC의 기사대로 논리를 구성한다면, 더욱 이상한 우기기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감시자들’이나 2014년 중국 영화나 ‘침묵의 목격자’를 원작으로 한 정지우 연출, 최민식 주연의 2017년 영화 ‘침묵’ 같은 작품에서 한국은 ‘두싱웨추’보다 일찌감치 중화권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었음에도 포스터나 보도자료에 제대로 된 원작에 대한 기재가 없었으니 한국 영화계에는 혐중 정서가 가득했다는 딱지를 붙이는 일도 가능하게 될 수 있다.

물론 해당 영상 보도를 취재한 기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뉴스 보도는 아무리 길어도 5분은커녕 2-3분을 넘기 어렵고, 그 안에 뉴스는 소위 ‘이미지’가 될 요소를 만들어 하나의 리포트를 만들어야 한다. 설사 리포트를 공들여 만들어도 데스크의 판단에 따라 해당 보도는 뉴스 프로그램에 실리지 못하고 그대로 묻히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영화나 웹툰 등을 원작으로 제작된 중국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원작을 언급하기 어려운 국면을 말함에 있어 ‘포스터 상 언급 부재’는 이래저래 써먹기 좋았을 요소였으리라.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역의 작동 구조에 대한 이해가 얕은 상황에서 보이는 ‘이미지’에 너무 열을 내는 것은 결국 강렬한 이미지만 남기고, 실질적인 접근을 방해하기도 한다. 여전히 심심하면 계속 해당 뉴스의 캡처 영상이 돌고, 오죽하면 취재 기자가 스스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해당 기사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장문의 긴 해명을 남겨야 했던 2011년 ‘MBC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관련 기사 : MBC 뉴스데스크: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실제 폭력부른다”)

분명 해당 보도 이후 한참 지나서 2019년 영국 옥스퍼드대-카디프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는 게임 그 자체로는 폭력성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게임에 대한 폭력성을 초래할 수 있음을 말하는 등 게임에 어떤 맥락이 얽히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관련 기사 : GamesIndustry.biz: No link between violent video games and increased aggression in teens, study finds)

▲ 2011년 2월13일 MBC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실제 폭력부른다" 보도. 
▲ 2011년 2월13일 MBC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실제 폭력부른다" 보도.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온라인 게임이 게임 문화의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콘솔 게임이 대세인 해외 이상으로 커뮤니티의 폭력성과 혐오 문제와 연계되는 게임의 부정적 효과 문제를 도외시하긴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다 떠나서, PC방에서 즐겁게 게임을 즐기다 갑자기 기자가 스스로 전원차단기를 내려 모든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는 상황에서 대체 누가 아무런 욕설이나 군소리 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까. 적절한 이해 없이 이미지만 고민하는 것은 이렇게 이미 여러 차례 큰 불협화음을 만든 바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해 없는 이미지’는 계속 반복된다. 그나마 시사 등의 영역에서는 KBS ‘시사 직격’이나 ‘다큐 인사이트’ 같은 프로그램처럼 ‘집중 취재 프로그램’이 존재한다지만, 문화 영역은 이들 프로그램의 주 취재 대상으로 오르기 어렵다. 설사 방영이 되더라도 주로 ‘한류’ 등의 키워드에 얽혀 나갈 때가 많으며, 그러다 보니 더욱 내셔널리즘적인 경향의 문화 보도와 이미지만이 재생산되기 쉽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문화 영역의 이슈나 흐름을 진득하게 취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문화 영역의 생태계 양극화는 계속 폭발적으로 심화되고 있지만 어떤 뉴스에서는 한국 문화가 이렇게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 다시 어떤 뉴스에서는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어떤 국가에서는 한국 문화를 이렇게 무시한다는 보도만이 양산된다. 과연 그 보도는 얼마나 한국 문화의 건강한 뿌리 내리기와 생태계 종 다양성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미지’는 범람하지만, 그 이미지는 자극적인 이상으로 실제의 자양분이 되지 못한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것은 협소하게는 한국 미디어 환경의 문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사회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미디어 보도로도 이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 협소함을 고민하지 못한다면, 산업적인 외견은 커져도 생태계의 속은 점점 비어가는 문제만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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