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심상치가 않다. 개봉 이전 10년 넘는 공백 끝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란의 신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 : 물의 길’과 동명의 유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윤제균의 JK필름과 CJ ENM이 합작한 ‘영웅’이 다투던 극장가에 또 다른 거센 물결이 일어났다. 계속 1위를 ‘아바타 : 물의 길’이 차지하는 가운데 ‘영웅’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거센 대결을 벌이고 있는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 1월 11일 현재로서는 ‘영웅’이 2위를 차지할 때가 더 많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의 관객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이다.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일정한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중 371만 관객을 모으며 가장 크게 흥행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 코로나-19로 신음하던 전세계 극장가에 촉촉한 단비가 된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의 215만명 흥행은 이미 형성된 팬층이 없었더라면 결코 거두기 어려웠을 흥행이다. 한국에서 꾸준히 ‘짱구는 못말려’나 ‘도라에몽’,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는 이유기도 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게다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한국의 1990년대를 정면으로 관통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인 ‘슬램덩크’가 작품이 공식적으로 완결된지 25년을 훌쩍 넘겨 발표한 신작이다.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기 직전이지만 1990년대 초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만화잡지의 인기가 형성될 무렵 한편에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을 내세운 서울문화사(현, 서울미디어코믹스)의 ‘아이큐 점프’가 있었다면, 반대편에는 ‘슬램덩크’를 내세운 도서출판 대원(현, 대원씨아이)의 ‘소년 챔프’(현, 코믹 챔프)가 있었다. 사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는 본래 일본에서는 같은 ‘슈에이샤’의 출판사의 같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동료’였지만 한국에서는 운명의 장난으로 만화 잡지의 붐과 함께 한 세기의 라이벌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대학교 농구부와 실업 농구팀이 함께 승부를 겨루던 ‘농구대잔치’가 허재, 서장훈, 우지원, 현주엽 등의 인기 스타의 출몰로 연일 화제가 되어 있었다. ‘슬램덩크’는 1994년 MBC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함께 농구를 실감 나게 다룬 작품으로 함께 화제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판이 처음에는 1994년 도서출판 대원의 형제회사 ‘챔프영상’에서 비디오판을 통해 출시되고, 이후 1998년에는 SBS를 통해 재더빙을 통해 방영되며 다시금 인기를 모았다. 농구대잔치를 통해 증명된 농구에 대한 뜨거운 팬심을 바탕으로 1997년 정식으로 농구 프로리그인 KBL이 출범한 상황이었다. 당시 KBL에 프로팀을 스스로 창단할 정도로 농구에 큰 관심을 기울이던 SBS가 한 층 더 농구에 대한 열기를 끌어 올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제대로 적중해 ‘슬램덩크’는 만화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흥행하고, KBL 역시 함께 시너지를 받아 한때나마 프로야구나 축구 K-리그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SBS판 오프닝으로 쓰인 박상민의 ‘너에게로 가는 길’이 아직도 뜨거운 사랑은 받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그 인기가 현재까지도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슬램덩크’가 마무리된 이후 2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흘렀다. 분명 한국, 일본 양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작품답게 ‘슬램덩크’는 아직도 콜렉터들을 위한 새로운 판본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새로운 작품도 인기를 받을 수 있을까.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슬램덩크’ 이후에도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다케시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시대극 ‘배가본드’, ‘슬램덩크’보다 더욱 어둡지만 현실적인 분위기로 비장애인과 장애인 농구를 그리는 ‘리얼’로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6년간 ‘슬램덩크’를 꾸준히 주간으로 연재하며 힘이 들었던 탓인지 두 작품의 연재는 상당히 불규칙적으로 느긋하게 연재를 이어나가고 있다. 여전히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결코 적지 않지만, 폭발적인 힘으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불안요소들도 적지 않았다. 작품이 처음 발표된 지난 2021년 말, 일본 기준 2022년 12월에 신작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발표하겠다는 소식은 많은 팬들을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 분명 2D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였던 일본도 서서히 3D 애니메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2D의 형태가 익숙한 기존의 ‘슬램덩크’ 팬들에게 3D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과연 높은 퀄리티는 물론 오랜 시간 신작을 기다려온 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개봉을 약 한 달 앞두고 해프닝이 있었다. 이전 TV 애니메이션에서 기용했던 성우들을 모두 교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전의 목소리가 익숙하던 올드 팬 일부에서는 이 작품을 보지 않겠다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한국 역시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역할을 맡은 강수진을 제외하면 모든 성우들이 교체되었다. 게다가 한국은 비록 단역에 불과하지만, 배우 고창석이 더빙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리며 ‘비전문 성우’의 연기가 과연 괜찮을지 일말의 의심을 품게 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측면으로 회자될 작품

이렇게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가운데 일본에서는 작년 12월, 한국에선 최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높은 흥행 성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였다. 한국보다 약 한 달 정도 빨리 개봉한 일본에서는 개봉 6주 연속 1위를 달리며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슬램덩크’의 인기는 건재함을 보였다. 현재 일본에서는 1월 9일까지 관객은 총 527만명, 흥행 수입은 약 76억 8500만엔(약 723억원)을 기록하는 상황이다. 한국 역시 개봉 일주일째를 맞이하는 1월 10일까지 관객은 50만명, 누적 매출액은 51억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중이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한일 양국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연말연초의 화제작이 되도록 만들 것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걱정했던 작품의 기술력이다. 작품은 분명 3D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2D의 평면과 유사해보인다. 이는 ‘셀 셰이딩’(Cel Shading)이라 부르는 기술로, 3D의 폴리곤 위에 2D로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도록 채색과 명암을 더해내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술은 이전부터 꾸준히 쓰여왔던 연출법이다. 특히 태생적으로 2D 애니메이션과 다른 질감이 될 수 밖에 없는 3D 애니메이션을 어떻게든 2D와 비슷하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서 계속 고안했던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셀 셰이딩은 글로 보기에는 쉬운 기술처럼 느껴져도 실제 구현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이다. 3차원으로 된 화면을 시점의 이동에 따라 고정된 2차원의 그림처럼 보이게 하고, 동시에 이를 프레임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연출과 컴퓨터 기술이 필요하다. 셀 셰이딩의 개념 자체는 발표된지 수십년이 넘게 지났지만, 실제 이를 그럴듯하게 구현하며 관객을 만족시킨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쉽지 않은 연출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해냈다. 그것도 무척이나 강한 역동적인 캐릭터의 움직임과 시선 이동, 화면 전환이 이뤄지는 스포츠 장르에서 말이다. 스틸샷으로 보면 작품은 도저히 3D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며, 실제 움직이는 장면으로 보아도 상당히 매끈한 2D 그래픽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셀 셰이딩을 매우 극한까지 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게다가 작품은 카메라의 원근에 맞춰, 장면의 집중도에 따라서 프레임의 속도를 가변적으로 조절하며 분명 3D인 작품을 2D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앞으로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측면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상징적 인물 아닌 '송태섭' 내세운 서사, 또 한번 증명한 인기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서사’와 ‘캐릭터’이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연출을 맡은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의도적으로 작품의 주인공을 ‘슬램덩크’의 상징격인 두 인물, ‘강백호’와 ‘서태웅’(루카와 카에데)도 아닌 이를 내세웠다. 심지어는 고릴라 같은 우락부락한 몸매의 농구부 주장 ‘채치수’(아카기 타케노리)도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나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같은 명대사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작중 별명 ‘불꽃남자’로도 유명한 ‘정대만’(미츠이 히사시)도 아니다. 바로 ‘송태섭’(미야기 료타)이다. 분명 강백호, 서태웅과 함께 작중에서 북산고 농구부를 이끄는 주축이지만, 상대적으로 극 내에서의 비중이나 현실에서의 인기도 마냥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슬램덩크’가 긴 공백을 끊고 돌아온 복귀작의 주인공격 인물로 송태섭을 내세운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첫 장면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곧바로 풀리기 시작한다. 작품은 그간 작가가 미처 풀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사를 풀면서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이전에 알려졌던 정보대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개봉과 함께 팬북에 수록되는, 송태섭과 그가 좋아하는 농구부 매니저 ‘이한나’(아야코)의 과거 인연을 그린 ‘슬램덩크’의 스핀오프 단편 ‘피어스’에 기초한 정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는 이전까지 작가가 스스로 밝힌 바 없었던, 어쩌면 이 작품을 위해서 새롭게 만들어 내었을지도 모르는 송태섭이 북산고 농구부에서 활약하기 전의 이야기를 작품의 주된 서사로서 활용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에게 사실 형 ‘송준섭’(미야기 소타)와 여동생 ‘송아라’(미야기 안나)가 있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새로운 서사를 덧붙여 나간다. 삼남매 중에서 농구를 처음으로 좋아하고, 훨씬 농구로 두각을 드러냈던 것은 준섭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준섭은 친구들과 함께 바다 낚시를 나갔다 실종되고 말았다. 끝내 시체가 나오지는 않지만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몇 년 넘게 사라진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준섭의 영향을 받고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태섭은 형이 사실상 죽은 뒤에도 꾸준히 농구를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계속 남들의 비교에 시달린다. 태섭이 준섭의 동생이라는 것을 아닌 이들에게는 준섭보다는 못한 태섭의 농구 실력을 놓고 수군거리고, 어머니 역시도 태섭이 농구를 좋아하는 모습에도 준섭의 그림자를 느끼며 꺼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는 정통적인 성격의 스포츠 만화였던 ‘슬램덩크’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설정이다. 본래 건들거리는 불량배였지만 우연히 채치수의 여동생 ‘채소연’(아카기 하루코)를 좋아하게 되며 생각지도 못하게 농구부에 들어가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강백호,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천부적인 농구 감각을 드러낸 서태웅, 사립학교에 비해 스포츠 인재를 수급하기 어려운 공립학교에서 전국대회 제패를 노리는 채치수의 모습은 전형적인 스포츠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신인-천부적 천재-우직한 주장’의 캐릭터 유형에 해당한다. 채치수에 대한 열등감으로 농구부를 무단으로 불참하고 잠시 일탈하던 정대만의 캐릭터가 가장 엇나간 모습이지만, 이 역시 당대 유행하던 ‘비바! 블루스’와 같은 학원 액션물(학교폭력물)의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오히려 남들은 모르는 과거의 상흔에 영향을 받는 캐릭터라는 측면에서는 북산고 농구부의 감독 ‘안한수’(안자이 미츠요시)가 더 가깝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본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파적일수도 있는 캐릭터의 숨겨진 이야기를 넣은 것은 쉽게 감동을 자극하기 위한 얄팍한 수작일까. 하지만 차츰 작품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연출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음이 드러난다. 송태섭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도 모든 작품의 포커스를 송태섭에게만 맞추지는 않기 때문이다. 송태섭보다도 더욱 비중이 낮았던- 원조 ‘안경 선배’라 부를 수 있을 ‘권준호’(코구레 키미노부)를 비롯해 채치수, 심지어는 작중에서 북산고 농구부와 필사적으로 대결하는 라이벌 산왕공고의 캐릭터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는 초점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작의 두 주인공이었던 강백호와 서태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작품은 원작의 하이라이트이자, 이번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영상화되는 ‘산왕공고’전과 각 인물들의 산왕공고전 이전의 모습들을 플래시백으로 교차하는 투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주된 구성인물도, 전개도 분산되는 연출은 작품에 대한 집중력도 분산시킬 수 있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게다가 산왕공고전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된 ‘슬램덩크’의 백미를 장식하는 대목이다. 이 장면을 정석적으로 푸는 대신 꽤나 많은 변주를 가한 전개는 자칫하면 독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2시간을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품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형을 잃은 아픔에 쉽게 벗어나지 못하며 실력도 남들처럼 출중하지는 못한 송태섭을 비롯해 채치수나 권준호, 그 외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북산고의 대다수 구성원들, 심지어는 호적수가 없어보이는 작중 최강의 고교 농구팀 산왕공고 농구부도 모두 저마다의 불안감을 초점에 맞춘다. 자신의 실력과 농구에 대한 애정이 과연 충분한 수준인지, 그렇게도 바라던 전국대회를 제패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을지 모두가 자기 자신을 반신반의한다. 그러한 불안감에 잠시 방황하다가도, 결국 각자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맞부딛친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노력’이 모인 결과가 작중 최고의 무대였던 ‘북산고 대 산왕공고’ 시퀀스였음을 원작자는 자신이 스스로 감행한 재해석을 통해 넌지시 드러낸다.

그렇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대한 원작에 해당 시퀀스에 관여된 이들을 어떻게든 스크린으로 불러들이며 이 산왕공고전이, 그리고 ‘슬램덩크’가 단지 강백호와 서태웅만이 낳은 결과물이 결코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주전 선수들부터 교체 선수들까지, 직접적인 선수가 아닌 감독과 매니저는 물론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우승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한 두 고등학교의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모든 이들이 있었기에 이 최고의 순간이 가능했음을 최대한 너르게 할애한 포커스를 통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포커스는 무척이나 넓어졌지만 초점의 선명함은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서사와 애니메이션의 출중한 기술력이 만나면서 원작과는 또 다른 흥미를 만들며 기운이 솟아오른다. 게다가 1990년대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J-POP 사운드와 또 다른 매력을 지닌 10-FEET 등이 참여한 일본 락의 파워풀한 사운드, 원년 멤버였던 성우 강수진을 비롯해 모든 성우들의 열연이 더욱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집중하도록 도운다. 심지어는 배우 고창석의 목소리 연기도 단역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드러내었다.

‘모두에게’ 포커스 맞춘 접근, 오랜 팬들과 더해져 시너지

이렇게 ‘모두에게’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는 접근이 이전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과 더해져 더큰 시너지를 낳은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슬램덩크’를 사랑한 팬에게는 이제야 살아움직이는 ‘산왕공고전’의 뜨거운 열기에 감동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슬램덩크’를 당시 보지 않았거나, 연재가 끝나고 한참 후에 태어난 팬들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작품은 가능한 은유적인 묘사 등을 동원하여 왜 이 캐릭터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이러한 심리를 가지는지를 원작에 대한 베이스가 없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작을 이미 너무 많이 봐 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원작을 여러 번 변주한 전개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모두’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품은, 최대한 ‘모든 관객’에게 만족스러울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그러한 질적인 성취에 힘입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한일 양국에서 흥행 순항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작품 외적으로 할 말도 적지는 않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 카에데’ 같은 원작의 일본식 이름보다 ‘강백호’, ‘서태웅’이 익숙할 정도로 로컬라이징의 역사에 큰 획을 그는 작품답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제법 많은 한국어 더빙 상영 비율을 유지 중이지만, 여전히 자막 상영이 더빙 상영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더빙 상영회차도 쉽게 성인 관객이 볼 수 없는 시간대인 경우가 잦아, 적절한 더빙 상영 시간대 배치를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식지 않고 있다.

작품이 ‘영웅’을 비롯해 같은 주에 개봉한 경쟁작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장화신은 고양이 : 끝내주는 모험’. 권상우 주연의 한국 영화 ‘스위치’에 밀리지 않고 흥행하는 또 하나의 요인인 ‘적지 않은 상영관/회차 배치’도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독립예술영화처럼 고정 관객층이 얇지는 않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래전부터 지닌 고정적인 팬층과 별개로 완전히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기에 보통은 한국에 개봉할 때는 상영관의 확보가 용이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첫날부터 800여개의 스크린, 2000여회의 상영횟수를 기록했다. ‘슬램덩크’가 기존 지녔던 인기를 고려해도 다른 한국 상업 영화, 대형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은 상영관/회차는 배급사인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가 여러모로 노력한 동시에 도박을 한 결과일 것이다. 만약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200-300여개관, 아니면 독립예술영화처럼 50여개관에서 상영했더라도 이렇게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분명 작품은 뛰어난 질적 성취, 원작이 이전부터 지녔던 꾸준한 인기와 합쳐져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작품을 이전부터 좋아했던 팬과 그렇지 않은 관객을 모두를 최대한 배려하고자 하는 연출도 눈여겨 볼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의 요인까지 함께 신경 써야 모두를 위하고자 노력한 작품은 진정으로 ‘모두를 생각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물론 오랜 공을 들여 영화관에 걸리는 작품들을 향한 존중이자, 지속적으로 다양한 작품이 꾸준히 생존하며 순환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리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