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난 12월30일,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최신 시즌인 ‘쇼미더머니 11’이 결승전을 방영하며 마무리되었다. 시즌 11의 우승을 차지한 래퍼 ‘이영지’는 역대 쇼미더머니 시리즈 중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여성 래퍼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2019년 엠넷의 고등학생 연령대의 래퍼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래퍼’ 시즌 3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영지는 다시 3년 만에 엠넷에서 기획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엠넷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메인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에서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간 엠넷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3개 시즌에 걸쳐 방송한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나 2020년 방송한 ‘굿 걸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를 통해 여성 래퍼를 전면에 내세운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었지만, 부분적인호평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힙합계에서 소수에 위치한 여성 래퍼들의 싸움을 인위적으로 부추긴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나마 ‘굿 걸’이 ‘언프리티 랩스타’와 달리 중도 탈락자를 발생시키지 않는 컨셉으로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현재까지 후속 시즌 제작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 Mnet '쇼미더 머니' 시즌11 마지막 화.
▲ Mnet '쇼미더 머니' 시즌11 마지막 화.

최초 여성 래퍼의 우승, 한국 힙합의 변화 상징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이영지의 우승은 여성 래퍼가 작사나 랩 스킬 등에서 남성보다 밀린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당당히 우승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우승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2020년에 방송한 시즌 9에서 여성 래퍼 ‘미란이’가 험난한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해 최종 순위 8위를 기록한 이후 2년 만에 최종적으로 여성 래퍼가 우승을 기록한 것은 한국 힙합의 전반적, 또는 젠더적인 지형도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보이는 하나의 단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쇼미더머니 11은 호평 만큼이나 무수한 비판과 비난이 가득했던 시즌이었다. 물론 엠넷의 지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처럼 쇼미더머니 시리즈 역시 혹평에서 자유로운 시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매 시즌마다 프로그램 운영의 공정성, ‘악마’와 ‘천사’를 오가는 제작진의 자의적인 편집 여부가 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시즌 11의 논란은 프로그램이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특정 출연자를 놓고 왈가왈부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전 시즌의 논란과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었다.

그 시작을 본격적으로 끊은 것은 힙합을 비롯한 블랙 뮤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진 ‘리드머’의 편집장 강일권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래퍼 이영지의 출연을 지적한 것이었다. 강일권은 이영지가 ‘고등래퍼 3’에서 우승을 한 것을 비롯해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 ‘리드머’에서 주목해야 할 힙합/R&B 신예 10인에 선정할 정도로 큰 기대를 걸었지만 “고등래퍼 3로부터 3년이 지났음에도 발표한 거라곤 싱글 몇 장과 본인이 참여한 예능, 혹은 경연대회용 음악이다.” “음악에 대한 공허함과 아티스트로서의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방편이 탁월한 앨범을 만드는 것이 아닌 쇼미더머니 출연이란 사실에 뒷말이 씁쓸하다.”며 이영지가 음악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는 대신, 고등래퍼에 이어 재차 서바이벌 오디션에 출연한 것이 뮤지션의 행보로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냈다.

“한국 힙합 망했다” 격한 반응 부른 이영지에 대한 편파성 논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쇼미더머니 11의 제작진이 이영지를 편파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이퍼에서 탈락 후보로 선정되었지만 이전까지 없었던 탈락 후보 선정자에게도 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팀 사이퍼 미션에서 비트 선정 룰에 관한 문제, 결승전의 우승자 선정 방식이 현장투표와 문자투표의 합산에서 온라인투표와 문자투표의 합산으로 바뀐 것 등이 모두 화제의 출연자에게 어떻게든 우승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기획되거나 급조된 움직임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영지의 우승을 놓고 “한국 힙합이 이 순간 망했다”면서 상당히 극단적이고 격한 반응을 남기기도 했다.

▲ Mnet 쇼미더머니 11 마지막 무대.
▲ Mnet 쇼미더머니 11 마지막 무대.

분명 어떤 지적들은 석연치 않은 모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영지의 실력이 ‘고등래퍼 3’를 전후하여 이미 여러 차례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쇼미더머니를 놓고 벌어진 논란들은 최소한 제작진의 차원에서 자초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말이 맞다면 그 책임의 소재가 이영지에게 있을까.

오히려 매 시즌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방송될 때마다 온갖 무수한 논란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즌이 계속되고, 신인과 중견, 심지어는 이전 쇼미더머니에 출연을 한 것은 물론 우승자조차도 몇 번이고 출연을 결정하는 상황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어떤 출연자는 심사위원으로 프로그램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예명과 모습으로 출연해 일약 화제가 된 적도 있지 않은가.

쇼미더머니가 방송 초창기를 맞이하던 2010년대 중반에도 이미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앞서 언급했던 웹진 ‘리드머’는 쇼미더머니의 시즌 3가 막을 내린 2014년 10월 ‘쇼미더머니를 예능으로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칼럼을 통해 이 딜레마를 다룬 적이 있다.

[관련 기사 : 리드머) ‘쇼미더머니’를 예능으로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현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플랫폼을 어느 정도 결정한 시즌이었던 시즌 3를 다룬 이 칼럼은 “그 어떤 시즌보다 막장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 어떤 시즌보다 흥행 면에서 성공적”이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먼저 전했다. “케이블 방송 프로 하나에 한국 힙합 씬 전체가 흔들거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적 측면이 심하게 왜곡”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하는 힙합퍼들이 전무하다”는 비판까지 담겨 있다. 이 때를 전후하여 래퍼 딥플로우 등이 쇼미더머니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표하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는 어떠한가. ‘리드머’가 지적했던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한국 힙합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다. 심지어 그 사이에 서바이벌 오디션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던 딥플로우 등의 래퍼가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비롯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변절자’라는 비난을 전방위로 받고, 다시 그로 인해 큰 상처를 토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그 비난에 동참하던 래퍼 일부가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출연하며, 한동안 이어졌던 딥플로우 등에 대한 비난이 수그러들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딥플로우 등에 대해 비난은 이번 시즌 11에서 이영지에 대한 비난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같은 방송사의 같은 힙합 서바이벌 오디션 시리즈에서, 그 시리즈와 직접적으로 얽힌 ‘래퍼 개인의 처신’이 문제라는 식으로 여론의 지형도가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리드머’의 지적대로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2023년 현재 가장 대중적인 힙합 방송 프로그램이자, 한국 힙합 씬에 매우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리드머’의 지적대로 이를 “힙합퍼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하는 식으로 풀 수 있었을까. 물론 쇼미더머니 2 출연 이후 해당 프로그램을 맹렬하게 비판한 뒤 단 한 번도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나오지 않는 힙합 듀오 ‘가리온’의 MC메타, 이외 그와 함께 쇼미더머니를 비롯한 문제적 힙합 문화를 비판하는 랩 ‘쇼미더힙합’에 동참한 최삼 등과 같이 정말 실천적인 행보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이들도 있다.

▲ Mnet 쇼미더머니 시즌11의 프로듀서들.
▲ Mnet 쇼미더머니 시즌11의 프로듀서들.

래퍼 개인이 '쇼미더 머니'와 거리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그러나 엄밀히 말하여 문제의 핵심은 ‘힙합’에만 머무는 것도, 프로그램과 관련된 뮤지션 개개인이 단독으로 책임지는 것에 달린 것도 아니다. MC메타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독야청청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오랜 시간 왜곡된 음악 향유의 구조를 바꾸는 것에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한국 힙합에서 형성된 강고한 위치를 마주보려면 CJ ENM 엠넷, 그리고 그 이외의 방송사가 2000년대 후반 이후 음악 산업과 맺은 상호적인 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급작스럽게 기존의 음악 시장을 유지하던 구조가 무너지고 2000년대 후반 이후 극적으로 다시 시장 전체의 크기를 기우며 기사회생하던 시기 전반의 상황을 들여다봐야만 한다. 무수한 유형과 장르의 가수들 중에서 ‘아이돌’이 강고한 팬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규모의 매출이 음악 산업의 유지에 매우 효율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카라’, ‘빅뱅’ 등의 연속적 성공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방송사들은 이들의 데뷔 이전 시기부터 이들의 모습을 사전에 미리 알려 친숙하게 만드는 무수한 프로그램, 데뷔 이후로도 무수한 음악 순위 방송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이들을 계속 미디어로 노출시키는 한편 방송사 자신에게도 큰 수익원이 되는 윈-윈 효과가 되었다.

한국 음악 산업의 축이 매우 급격하게 아이돌로 쏠리는 사이, CJ ENM 엠넷을 위시한 방송사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한 다른 장르에는 ‘오디션 서바이벌’로 하나의 탈출구를 ‘하사’했다. 발라드, 힙합, 록 같은 장르들은 장르 개별적으로는 아이돌이 낳는 수익보다는 적을지라도 경쟁 오디션이 되어 관중들의 이목을 모으고 만일 하나 한국 전체를 뒤흔들 스타를 만들 수도 있었다. 이미 이전에도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비롯해 표면적으로는 ‘아마추어의 재능 발표 무대’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인 가수의 데뷔 장소로 기능했던 ‘과거의 성공 사례’가 존재했다.

▲ Mnet '슈퍼스타 K3'.
▲ Mnet '슈퍼스타 K3'.

엠넷이 과감하게 CJ ENM 전체의 역량을 바쳐가며 만들어낸 ‘슈퍼스타 K’ 시리즈의 성공은 다른 방송국에게도 빠르게 자극을 주는 한편,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방송국의 음악 장르 편향성’도 ‘장르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명목 아래 해당 장르의 프로그램은 모두 ‘오디션 서바이벌’로 매조짓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시작은 한동안 엠넷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겠다’는 선언 아래 힙합 및 블랙 뮤직 전문 프로그램 시리즈 ‘엠넷 블랙’의 기획으로 처음 편성되었던 시리즈였던 것처럼 말이다. 비슷한 시기 2013년 엠넷은 ‘MUST 밴드의 시대’로 ‘록 서바이벌 오디션’을 편성했다. 이는 KBS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록밴드 서바이벌 오디션 ‘TOP 밴드’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것이자, 다시 역설적으로 본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이 라이브 음악프로그램이었던 ‘MUST’를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전환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서바이벌 오디션’이 메운 것이다.

이후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엠넷은 2015년에는 일렉트로닉 음악 DJ 써바이벌 ‘헤드라이너’를, 2020년에는 포크-어쿠스틱 서바이벌 ‘포커스 : Folk Us’를.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성별, 연령대별로 스트릿 댄스 크루의 대결을 표방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스트릿댄스 걸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를 편성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TV조선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보다 먼저 ‘트로트 엑스’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서바이벌을 하기도 했었다.

그에 맞서 JTBC는 2016년 ‘크로스오버 중창’ 서바이벌을 표방한 ‘팬텀싱어’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밴드 서바이벌인 ‘슈퍼밴드’, 2021년에는 국악 크로스오버 서바이벌을 내세운 ‘풍류대장 :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런칭했다. 여러 트로트 서바이벌로 채널의 인지도와 사세 모두를 끌어 올린 TV조선은 2021년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대형 서바이벌은 ‘내일은 국민가수’로 다시 주목을 끌었다. 심지어 JTBC의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MBN ‘로또싱어’, ‘아바타싱어’ 같이 실질적으로는 이름을 알리지 못한 가수들을 ‘다시 주목하자’는 오디션까지 등장했다. MBC ‘놀면 뭐하니’의 ‘MSG 워너비’, ‘WSG 워너비’ 시리즈도 큰 차원에서는 이러한 부류의 기획에 속한다.

▲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 종영간담회. 사진출처=Mnet
▲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 종영간담회. 사진출처=Mnet

오디션 시스템 참가 아니면 지속적 관심 만들어 내기 힘든 현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넘쳐나도 정작 해당 장르를 다양하게 다루는 음악 프로그램은 편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10년 넘게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이어온 엠넷은 무수한 파생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엠넷 블랙’ 시리즈를 사실상 폐지한 이후로는 힙합 음악 자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웹 콘텐츠는 단 하나도 만들지 않고 있다. 여성 래퍼들을 대상으로 한 ‘언프리티 랩스타’나 ‘굿 걸’,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원로가 된 래퍼들을 위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어도 이들이 발표하는 신작,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활동을 소개할 채널은 없다. 자신의 신곡을 증명하려면, 무슨 말을 듣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라도 일단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의 루틴이 되었다.

물론 힙합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쇼미더머니가 전부는 아니다. 힙합에서 시작해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유튜브 채널이 된 메이크어스의 ‘딩고 뮤직’, 그 이외에도 이전부터 힙합 커뮤니티로 기능했던 ‘힙합플레이야’나 ‘힙합LE’, 자유롭게 음악을 올릴 수 있는 ‘사운드클라우드’나 ‘밴드캠프’도 아직은 건재하다. 그러나 단숨에 음악을 올리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은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월등하며, 딩고 뮤직에 나와 그간의 플레이리스트를 말할 수 있는 가수들 다수도 쇼미디머니에 자신을 등장시킨 이들이 절대 다수이다. 후자의 커뮤니티나 플랫폼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조금씩 주목도의 비중이 줄고 있는 것은 누구나 조금씩 인식하고 있다.

음악 시장 자체는 커졌지만, 음악을 향유하는 일상적인 폭을 넓힌 것이 아니라 최대한 시장의 크기 전체를 넓힐 수 있는 방책을 찾아서 넓힌 방법은 음악 전체로는 물론 힙합을 비롯해 세부적인 음악을 즐기는 방식에도 모두 영향을 주고 있다. 래퍼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는 이미 문제를 풀릴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힙합 뿐만이 아니라 어느 영역이고 동일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민영 방송사, 미디어 기업의 흐름을 마냥 강제할 수 없더라도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KBS, MBC 등의 공영 방송사들도 비슷한 길을 똑같이 걸어간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문화, 미디어 정책이 저지른 하나의 실책과도 같다.

이미 늦어버린 마당이지만 어떻게 조금이라도 종 다양성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민간의 차원에서이든, 좀 더 확장한 민관 공동 협의의 차원에서든 생태계 유지에 대한 책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커진 사이 정작 내부는 무너진 생태계의 책임을 더 이상 한 명의 사람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도, 적확한 접근을 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정책의 차원으로, 공동의 논의라는 측면으로의 접근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류의 논란을 줄이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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