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한국 영화계는 큰 고난에 시달려야 했다. 2020년 초 갑작스럽게 퍼지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의 모든 활동에 큰 제약과 상처를 가져왔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야외 상영이나 집에서 VOD나 블루레이 같은 2차 매체로 영화를 보지 않는 이상, 보편적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은 결국 영화관에서 불특정 다수와 함께 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영화관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실내 공간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비록 지난 2년간 영화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확진자의 비율은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도 높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얼어 붙은 사회의 분위기가 영화 관람을 비롯한 많은 외부 활동을 제약시키는 상황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쉽게 택하기 어려운 행동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영화관이 지난 2년간 제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설사 간신히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더라도, 관객이 들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익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관객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상업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 것은 물론, 매표 수익에 버금갈 정도로 극장의 주요 수익 수단이었던 매점 영업에 각종 제약이 걸린 것도 컸다. 코로나 이전부터 영화관의 큰 경쟁 상대로 여겨졌던 OTT 서비스가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집에 장기간 머물게 된 상황을 노리며 세를 불린 것은 극장 개봉 기회를 잡지 못한 영화 제작, 배급 관계자에게는 한 줄기 동아줄이 되었지만, 영화관을 비롯해 오프라인 매출의 비중이 큰 영화인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었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각종 지원 사업으로 영화관을 비롯해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익을 보조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지만, 코로나가 전파되는 상황 자체의 한계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국은 비슷한 경제 규모를 지닌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개인이나 자영업자, 개인에 대한 공적 지원에 무척이나 인색한 자세를 보이며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늘리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

2022년이 되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주된 유행이 오미크론 변이로 대체되고,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 속도는 빠르지만 중증화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들려오자 전세계 많은 이들이 경제 활동의 재개를 기대했다. 한국 영화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약 없이 개봉일을 미루던 영화들이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소식과 방역 시스템의 변화에 기대를 가지고 개봉을 확정짓기 시작했다. 완전히 코로나 이전의 영화 흥행 상황으로는 돌아올 수 없어도, 최소한 지난 2년 보단 나은 상황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코로나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규제가 완화된 뒤에 개봉한 ‘범죄도시 2’가 코로나 유행 이후 개봉한 영화로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소식은 영화계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8월 초 현재, 한국 영화계의 현 상황은 본격적으로 영화관과 극장 개봉이 재가동하기 시작하던 봄과 비교하면 다른 추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죄도시 2’에 이은 흥행 성공 작품은 여러 편 등장했다. 5월에 개봉한 마블 프랜차이즈 계열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588만 관객을 불러 모았으며, 무려 36년 만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은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 매버릭’은 6월 개봉한 이래 꾸준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놓치지 않으며 8월 4일 현재 725만 관객을 기록한 상황이다. 지난 7월에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미니언즈 2’ 역시 8월 4일 기준 179만 관객이 관람하며 선전했다.

▲범죄도시2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범죄도시2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그러나 이 흥행 작품들은 정석적인 텐트폴, 또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정되고 있다. CJ를 비롯한 대형 투자배급사가 제작에 관여한 만큼 완전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아니지만, 감독이나 소재 특유의 매력을 선보이는 영화들은 흥행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정된 흥행,  ‘헤어질 결심’의 저조한 흥행

2016년 ‘아가씨’ 이후 박찬욱 감독이 간만에 내놓은 장편 영화 신작이자,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의 경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색, 계’ ‘만추’에 등장하며 201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화권 배우가 된 탕웨이의 주연작으로 이름을 모은 ‘헤어질 결심’의 저조한 흥행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완전히 관객들에게 외면받은 것은 아니다. 투자배급사인 CJ ENM은 해당 작품의 손익분기점이 120만명이라 밝혔다. 약 1300여개관에서 개봉한 작품은 개봉 19일차인 7월 17일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해 8월 4일 현재 172만 관객을 기록한 상황이다.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전 박찬욱의 장편 연출작에 비교하면 ‘헤어질 결심’의 흥행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물론 박찬욱의 작품이 2000년대 대형 투자배급사의 선택을 받아 이름을 알린 감독들 중에서는 작품의 성향이 매니악한 편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09년 ‘박쥐’(약 490개관 개봉, 221만 관객), 2013년 ‘스토커’(약 300개관 개봉, 37만 관객), 2016년 ‘아가씨’(약 1100개관 개봉, 확장판 포함 430만 관객)의 개봉관 대비 모객 상황에 비교하면 많은 상영관에서 개봉했음에도 오히려 관객의 방문은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헤어질 결심’에만 그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처럼 같은 CJ ENM이 투자배급하고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외국인 감독, 그것도 일본인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강동원-배두나-이지은(가수 아이유) 등 유명 스타들이 주연을 맡았으며 심지어는 한국 영화 최초로 한국 배우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남우주연상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의 ‘브로커’는 CJ ENM이 내건 손익분기점 150만명을 돌파하지 못했다. ‘헤어질 결심’의 상영관보다 더 많은 약 1500여개관에서 개봉을 했지만 관객 동원은 126만명에 그쳤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한 이래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까지 그간 개봉한 모든 작품에 흥행에 성공한 최동훈 감독의 SF 2부작 영화의 전편인 ‘외계+인 1부’는 약 1900여개관에서 개봉해 8월 4일 현재 145만 관객을, ‘부당거래’와 ‘신세계’에서 특유의 느와르를 선보이다 ‘마녀’로 이능력자 SF를 시도하며 주목을 받았던 박훈정의 ‘마녀 Part2’도 약 1500여개 극장에 걸렸으나 280만 관객에서 그치며 흥행을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물론 이들 작품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물론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었으니 흥행이 저조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박찬욱을 비롯해 최동훈, 박훈정 등이 완벽하게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준수한 흥행을 거두는 감독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흥행의 일면에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관여를 통해, 유명 배우의 캐스팅과 적극적인 홍보가 가능한 것은 물론 최소 500개관 이상의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다는 구조적인 용이함이 있었다. 하지만 2022년 8월 현재 한국 영화계가 처한 상황은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투자배급사의 힘으로 빠른 속도로 많은 관객을 모으는 기존의 영화 흥행 공식이 쉽게 먹히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강화된 ‘텐트폴 집중’ 현상

어떠한 상황이 이전과 다른 환경을 만드는 것인가. 영화 관련 커뮤니티나 SNS 등지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OTT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진 것, 코로나로 인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멀티플렉스 극장 다수가 영화 티켓 가격을 10000원대 중반대로 올린 것, 아직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관객들이 극장 방문을 꺼리거나 관객들이 흥미로워할 작품들의 제작에 차질이 발생한 것 등이 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은 비단 한국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영화 산업을 유의미하게 지니고 있는 국가 모두가 이러한 상황을 비슷하게 겪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독 두드러지게 영화의 흥행 격차가 생기고 있는 모습은 한국 영화계가 놓인 다른 요인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 2’나 ‘탑건 : 매버릭’을 비롯해, 8월 4일 현재 2014년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인 1761만 관객을 기록한 ‘명량’의 후속작이자 전작에 이어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의 해전을 그린 ‘한산 : 용의 출현’이 준수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관객이 호불호를 느낄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액션이나 내셔널리즘 등 이미 과거에 여러 차례 흥행 성공으로 증명된 요소를 삽입한 작품들이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준수한 흥행을 거두고 있다. 또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나 ‘미니언즈2’ 같이 꾸준한 팬층을 지닌 헐리우드 프랜차이즈에 속한 작품들이 좋은 흥행을 거둔다.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토르 : 러브 앤 썬더’ 같이 흥행이 저조한 사례도 있으나 이 작품은 작품 자체에 대한 혹평으로 인해 해외에서도 흥행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영화 감상 환경과 문화가 이전부터 존재하던 ‘텐트폴 집중’ 현상이 한층 더 강화되었음을 보이는 하나의 단초이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도 CJ, 롯데, 쇼박스(오리온 계열), NEW 등의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는 영화 개봉 초기에 최대한 대량의 상영관을 확보하여 조기에 영화 투자 수익을 환수하는 ‘와이드 릴리즈’ 전략을 이미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시장’이나 ‘연평해전’ 같이 평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하나 한국 관객들이 흥미로워 할 요소를 지닌 작품들이 대거 흥행했지만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나홍진 등 상대적으로 대중성은 낮아도 2000년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의 주목을 받아 꾸준히 신작을 만들 수 있던 감독들의 작품도 그 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2000년대 ‘CGV 인디영화관’으로 설립되어 ‘CGV 무비꼴라쥬’를 거쳐 2010년대 사업을 대폭 확장한 CJ CGV의 독립, 예술영화 전문 브랜드였던 ‘CGV 아트하우스’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노무현입니다’를 비롯해, 롯데시네마 ‘아르떼’, NEW ‘콘텐츠판다’ 등 대형 배급사들이 잠시나마 비주류 영화들을 아우르던 상황도 있었다.

▲ 영화 ‘한산: 용의출현’ 스틸컷.
▲ 영화 ‘한산: 용의출현’ 스틸컷.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 유행이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 호혜에 가까운 다양성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이유로 빠르게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유행 이전부터 사업 재검토 단계에 놓여 있었다지만 CJ가 CGV 아트하우스의 제작투자 및 배급 사업을 중단하고, CGV 아트하우스 명의의 상영관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은 그 상징이다. 특히 지난 7월 중순에는 CGV 아트하우스의 상징적인 상영관이었던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의 운영을 중단하는 것은 확실히 CJ가 CGV 아트하우스에서 손을 털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되었다.

영화 투자배급사가 영화관 사업을 겸업하며 와이드 릴리즈 전략으로 대량 상영관을 확보하는 모습은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에서도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한국은 자생적인 영화 문화의 토양이 단단하게 다지기 전 시장 자체가 급격하게 성장하며 영화 생태계의 종 다양성 역시 상당수가 이들 자본에 맡겨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허울로만 다양성을 말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배급, 투자작의 일정 비율을 확실한 상업 영화 이외에도 꾸준히 배정하는 해외 상업 영화 스튜디오와 달리, 지난 코로나 시기 한국 대형 영화 자본이 빠르게 비주류 영화에서 발을 빼는 모습은 표면적인 호의 관계조차 정착되지 못하였음을 매우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봉준호의 ‘기생충’이나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같이 해외 유수 영화제 수상으로 ‘한류’와 ‘국위 선양’에 이바지한다는 식으로 독과점 비판 속에서 자기 정당화가 가능했던 한국 대형 영화 자본의 ‘작가주의적 상업 영화’ 역시도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대형 영화 집중 경향’의 굴레에서 재생산의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자본 자신이 만들어 내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계해 놓았던 늪에 자기 자신이 빠진 셈이다.

분명 한국 영화는 약 25년 전 IMF 경제 위기에서 수많은 재벌 자본, 토착 영화 제작사들이 줄줄이 영화계에서 철수하는 상황 속에서도 위기를 빠르게 딛고서 외형적인 크기를 키우는 것에 성공했다. 칸-베를린-베니스 라는 소위 3대 국제 영화제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같이 한국 영화계가 그렇게 선망했던 해외 유수 영화 행사에서도 상을 받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가 현재 보이는 모습은 결국 구조와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화계의 극히 일부만이 현재의 구조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빠르게 불린 외형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인다.

게다가 근래 OTT 서비스 ‘쿠팡 플레이’에서 발생한 이주영 감독 연출의 시리즈 작품 ‘안나’에 대한 무단 편집 논란 등 권리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취약점이 많다는 사실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든 산업의 외형적인 크기를 유지하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계속 회피할 것인가. 단기적인 시장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단단하고 산업의 다양한 존재들을 고민하는 정책과 시스템을 고민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택하느냐에 따라 늪에 갇혀 있는 기간도, 늪의 깊이도 모두 달라질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