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영양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두툼한 뱃살은 나태의 상징이지만 1970년대 즈음만 하더라도 푸짐한 살들의 모습은 부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나 생활 수준이 상징하고, 이와 함께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이 퍼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군살은 어떤 식으로든 제거할 대상이 되었으며, 살이 찐 모습은 자기 관리 실패의 전형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러한 시대상과 인식의 변화에 방송 미디어들은 점차 프로그램으로써 대웅하기 시작했다. 살에 대한 인식이 달랐던 이전이라고 해서 딱히 미디어가 대안적으로 비만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권 감수성이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던 시절이었기에, 해외와 비슷하게 한국 역시도 살을 비롯해 외모를 활용한 코미디는 심심하면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오히려 1990년대 MBC를 풍미한 이휘재와 김한석의 ‘롱다리와 숏다리’ 콤비 코미디처럼 외모에 대한 민감한 인식을 반영하는 흐름이 지속되었고, 이전부터 TV를 통해 방송되었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나 비슷한 시기 개국한 SBS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슈퍼모델 선발대회’, KBS의 ‘슈퍼 탤런트 선발대회’ 같은 유사 외모 경연대회는 더더욱 이러한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주류적 인식을 가속화시켰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미디어의 신체에 대한 인식이 매우 극명하게 두드러진 시기였다. 2000년대 초 ‘건강보감’ 코너를 통해 음식 소재와 건강 소재를 모두 접목한 버라이어티로 인기를 끌어모으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2006년 ‘차승원의 헬스클럽’을 통해 다이어트 열풍을 재점화시켰고, 뒤이어 2007년 KBS ‘개그콘서트’는 실제 매주매주 코너에 등장하는 남성 코미디언들의 감량과 벌크업 상황을 보여주는 ‘헬스보이’ 코너를 런칭하며 그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이후 2011년 KBS ‘개그콘서트’는 ‘헬스보이’의 후속 코너이자 여성 버전으로 ‘헬스걸’을 런칭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에 다른 방송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1년 SBS ‘일요일이 좋다’는 한국 최초의 다이어트 리얼 버라이어티를 선언한 ‘다이어트 서바이벌 빅토리’를 런칭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몇 차례 존재했던 다이어트 서바이벌을 벤치마킹한 이 프로그램은 다이어트에 절실한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매회 감량 목표를 정해 이를 지키지 못하면 가차없이 탈락시켰다. 비록 프로그램 자체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어느덧 한국의 미디어가 비만의 문제 역시도 치열한 경쟁의 대상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배우 극명한 모습이었다.

렛미인 홍보 포스터
렛미인 홍보 포스터

하지만 진정한 극단은 따로 있었다. 바로 CJ ENM의 케이블채널 스토리온(현, tvN STORY)에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개 시즌에 걸쳐 방송된 ‘Let 미인’이다. 이전까지의 동종 프로그램이 다이어트를 통한 비만 탈출에 초점을 맞췄다면, ‘Let 미인’은 여기서 몇 단계 더 나아가 지방 흡입 수술을 비롯해 ‘얼굴과 몸매에 자신 없는 이들을 위한 전신 성형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Let 미인’은 첫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논란에 시달린 예능이었지만, 동시에 무려 5년간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사회와 미디어가 함께 손잡고 문제적 인식을 강화하고, 다수의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감상하며 더욱 인식을 두텁게 하는 기묘한 순환이 반복되었다.

신체 이미지 강화하던 미디어 움직임 급선회

하지만 끝을 모르던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미디어의 움직임은 2016년부터 본격화된 페미니즘 리부트를 만나며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쉽게 외모를 소재로 코미디 소재로 삼거나, 외모에 대한 심리나 절박함을 프로그램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비록 그 시기 반영된 ‘프로듀스 101’을 비롯한 수많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판에 박힌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계속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2020년 코미디TV ‘오늘부터 운동뚱’이나 2021년 SBS ‘골 때리는 그녀들’, 2022년 JTBC ‘마녀체력 농구부’ 등의 프로그램은 운동이 그저 아름다운 몸매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루하루 몸에 활력과 생기를 만들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낳는 것에 기여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TV에서만 벌어진 움직임이 아니라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유기 작가의 웹툰 ‘여성전용헬스장 진달래짐’ 같은 작품처럼, 사회 전방위로 운동과 신체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것과 맞물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 30일부터 KBS2에서 방송 중인 다이어트 예능 ‘빼고파’는 2022년 현재 운동은 물론 ‘다이어트’를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음을 엿보게 해주고 있다. 얼핏 보기에 ‘빼고파’는 이전의 다이어트 소재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이어트에 대해 고민하는 방송인이나 일반인을 한 자리에 모아 살을 빼기 시작하고, 다양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신체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컨셉은 앞서 언급한 SBS ‘다이어트 서바이벌 빅토리’나 가장 최근에 방송된 다이어트 예능인 2020년 JTBC ‘위대한 배태랑’과도 비슷하기 떄문이다.

▲KBS '빼고파' 홈페이지.
▲KBS '빼고파' 홈페이지.

이전의 다이어트 프로그램과는 같은 길 가지않는 '빼고파'

하지만 ‘빼고파’는 이전의 다이어트 프로그램과는 결코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는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매 촬영일마다 꼼꼼하게 몸무게를 기록하고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통제했던 다이어트 예능과 달리, ‘빼고파’는 진행자인 코미디언 김신영의 입을 통해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첫 화에서부터 선언한다.

프로그램이 차츰 진행됨에 따라 몸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전신 프로필 사진은 찍어도 구체적인 몸무게를 재지 않는다, 따라서 매 촬영일마다 주어지는 미션도 없다. 식사 시간이 아닐 때 군것질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길 때 반성의 의미로 운동량을 추가하기는 해도 엄격하게 벌칙을 매기거나 생존과 탈락을 가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식이요법도 역시 단순히 먹는 양을 줄이거나 닭가슴살 같은 고단백 식품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는 대신, 김신영이 레시피를 알려주는 현미밥, 묵은지와 멸치볶음, 계란이 들어간 ‘다이어트 김밥’ 같이 포만감은 채우면서도 칼로리는 크게 줄일 수 있는 음식들을 알아가며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식사의 길을 발견해나간다.

‘빼고파’가 결정적으로 이전의 프로그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부분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을 빼는지’를 함께 말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의 다이어트 소재의 예능에서도 비슷한 ‘사연 소개’는 항상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건강에 큰 무리가 와서, 누군가는 자신의 살찐 몸매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서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출연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강화하는 용도로 이 사연들이 활용되곤 했다. 어떤 의미로는 자극적이고 경쟁적이며 때로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나 신체 개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 이용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빼고파’는 이를 쉽게 도구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출연자들이 자신의 몸매와 살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진솔하게 들으며, 이들이 가지는 고민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다시 이러한 고민이 프로그램 출연자의 수준을 넘어 시청자 전반에 있음을 넌지시 비춰낸다, 특히 코미디언, 배우, 가수 등을 가리지 않고 쉽게 대중들의 신체 평가에 노출되고 때로는 악플에 시달리는 방송인들의 자기 고백은 한동안, 또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군살 없는 신체’에 대한 강박과 과도한 집착이 어떻게 개인을 상처입게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2000년대 아역 모델로 데뷔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지만 불공정 계약과 정신적인 불안함에 시달리며 한동안 잠정 은퇴 상태에 놓였다 가족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복귀한 배우 고은아는 마른 몸매에도 불구하고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살을 빼는 것이 유행이었던 풍조에서 지방 흡입 수술까지 받았었음을 고백한다. 연예계 활동하는 내내 강박적일 정도로 신체를 관리해야 했던 그는 오랜 시간 은퇴를 한 상태에서 유튜브에 살이 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비난의 악플을 받은 것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한다. 한동안 무명을 벗어나지 못하다 2017년 발표한 싱글 ‘롤린’(Rollin’)이 2021년 소위 ‘음원 역주행’을 맞이하며 은퇴 직전의 기로에서 다시 연예계 복귀에 성공한 아이돌 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유정 역시도 간만에 출연한 방송 무대 영상에 ‘왜 아이돌이 뱃살이 나왔냐며’ 무수한 악플에 시달린 것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함께 이야기한다.

▲KBS '빼고파' 화면 갈무리.
▲KBS '빼고파' 화면 갈무리.

고은아나 유정 외에도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한 연예인 다수는 ‘방송인’ 또는 ‘아이돌’ 이라는 이유로 사회 주류가 기대하는 몸매 유지에 계속 골몰했던 과거를 말한다. 진행자 김신영처럼 코미디언이거나, 배우 하재숙 같이 데뷔하는 순간부터 큰 몸집을 갖추고 있으면 대중들의 시선이 조금은 관대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매에 대한 비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이전 코미디언 이영자가 2000년대 초반 잠시 빠지고만 함정 같이, 김신영이 자신에게도 다이어트 효과 홍보를 대가로 다양한 다이어트 관련 업체로부터 거액의 모델료를 제시받았지만 모두 고심 끝에 거절했다는 것을 말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바라는 ‘정상적인 몸매’라는 하나의 고정된 틀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를 극명하게 보이는 순간이다.

고정관념에 맞서 다이어트를 말하면서도 대안적인 삶 모색

분명 비만은 사람의 몸을 둔하게 만드는 점이 있고, 건강한 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빼고파’에서 김신영이 “자신은 집안이 워낙 가난하다 보니 음식이 생길 때마다 강박적으로 먹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살이 찌고 싶지 않아도 각자가 놓인 환경 때문에 살이 찌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마치 미국이 이미 그러하고, 한국에서도 서서히 드러나는 저소득층이 신선한 야채 같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보다 패스트푸드 같은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음식(‘정크 푸드’)에 더 노출되기 쉬운 모습처럼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쉽게 비만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는 발화를 즐겨 구사한다.

이러한 고정 관념에 맞서 ‘빼고파’는 다이어트를 말하면서도, 사회가 강요하는 대로의 길이 아닌 대안적인 다이어트의 삶을 모색한다. 단시간에 극적으로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출연에 맞춰 함께 생활하며 차츰차츰 먹는 음식에 변화를 주고, 생활 습관을 바꿔나가며 ‘남들이 보기 좋은 몸매’가 아니라 ‘내가 살기 편한 신체의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 처음으로 단독 진행 프로그램을 맡게 된 김신영은 이러한 흐름을 코믹하면서도 남을 쉽게 무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시청자가 차츰 이 변화에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빼고파’의 제작진들 역시 자극적으로 ‘비포 앤 애프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이 신체는 물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적절한 리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과연 ‘빼고파’가 제공하는 합숙 생활을 전부 마친 출연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볼 시청자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리고 다시 이 프로그램으로 어떤 변화를 연쇄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동시에 ‘주접이 풍년’이나 ‘한 번쯤 멈출 수 밖에’ 같이 근래 대안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하며 신선함을 만드는 KBS의 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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