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이라는 것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고 하던가. 대중가요에서 허구헌 날 이별을 말하고, 다시 수많은 드라마나 만화, 영화 등이 만남과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만나는 기쁨 이상으로 헤어지며 발생하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도 미리 작별을 준비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다행이겠지만, 결국 정확한 작별 일시를 고지하는 것조차도 쉬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헤어짐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역설적으로 그 준비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작별을 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순간이 되고 만다.

지난 5월 2일, 하나의 미디어가 헤어짐을 예고했다. 완벽하게 고정된 이별의 순간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 미디어는 곧 여름이 되면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를 남겼다. 비록 그 미디어가 매순간 항상 만족스러운 순간을 제공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년마다 번뜩이는 기획과 시의성, 재치있는 텍스트와 이미지, 또는 동영상의 연출이 어우러진 기획으로 사람들의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기획을 선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이름은 바로 2016년에 창간한 온라인 기반의 대안 미디어 ‘닷페이스’(dotface)이다.

▲닷페이스 로고. 사진출처=닷페이스 인스타그램.
▲닷페이스 로고. 사진출처=닷페이스 인스타그램.

‘닷페이스’가 탄생한 시기는 지금도 여러 백래쉬를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지만 이제는 쉽게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된 ‘페미니즘 리부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때이다. 그 시기의 직전은 이전부터 쓰이던 유행어인 ‘꼴페미’는 물론 ‘김치녀’ 등등을 비롯한 온갖 여성 비하 유행어가 판을 치던 상황이었다. 2015년 한국에서 거세게 퍼지던 유행병 ‘메르스’의 여성 감염자가 ‘이 시국’에 홍콩으로 놀러가면서 퍼트렸다고 ‘나라망신’이라고 거세게 비난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작 동시기 남성 감염자가 해외에서 감염 사실이 파악되었던 것에 대한 인지도 없었으며, 그리고 정말 이 여성 감염자가 여행 목적으로 출국하는 것인지에 대한 파악도 없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차곡차곡 쌓여가던 시기에서 여성에 가해지는 압박은 증폭되었다. 68 혁명이나 4.19, 5.18 같은 역사를 뒤엎은 사건들이 우연한 계기로 불거지는 것처럼, 일군의 여성들이 이러한 혐오가 득실거리던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의 주도권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와 함꼐 ‘김치녀’와 같은 혐오 단어를 뒤집은 ‘김치남’ 같은 표현은 바로 삭제되는 모습이 드러나며, 여성 혐오가 결코 심증의 단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덤으로 드러났다.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의 원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2016년에는 강남역 10번 출구 근방의 건물 화장실에 매복하던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한 번 타오른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쉽게 뒤집어 놓을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결정타가 되었다. 급진적으로, 보다 거세게 여성의 문제를 여성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같이 뭉칠 수 있는 거점을 필요로 했다. 한 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메갈리아’를 비롯해 ‘워마드’, 또는 기존에 존재하던 ‘여성시대’를 비롯한 커뮤니티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로서 지니는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점을 피력한 거점의 조성 작업이 있었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이제 여성의 이야기를 좀 더 널리 퍼트리고 알릴 ‘매체’를 기획하는 작업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들 연달아 등장했던 2016년 눈에 띄었던 닷페이스

닷페이스가 창간한 2016년은 새로운 매체의 시도가 연달아서 등장했던 시기이다. 그 해 ‘핀치’나 ‘미디어브릿지’를 비롯한 페미니즘을 전면으로 표방한 매체가 닷페이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전후해서 출범을 선언했다. 물론 페미니즘 전문 매체가 이전까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 매체 중에선 무척이나 오래된 축에서 속하는 ‘여성신문’을 비롯해, 2000년대 창간한 ‘일다’ 같은 미디어도 지금은 물론 이 당시에도 꾸준히 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리부트의 움직임과 관련된 소식을 전달하며 호응을 모았다. 그 바로 직전 해인 2015년에는 CBS가 여성을 비롯해 장애인, 청소년, 노동자, 이주민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담아내는 유튜브 채널인 ‘씨리얼’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도 했었다.

▲ 닷페이스가 데이트폭력 관련 뉴스를 전달하기위해 만든 콘텐츠.
▲ 닷페이스가 데이트폭력 관련 뉴스를 전달하기위해 만든 콘텐츠.

하지만 닷페이스를 비롯해 2016년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 매체들과 종전의 매체들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사자성’과 ‘시의성’이 아니었을까. 여성신문은 분명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주의를 표방한 미디어이자,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미디어라는 면모가 있었지만 오래된 역사는 때로는 굳건한 믿음직한 이미지를 주는 이상으로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종이신문에 기본을 둔 매체 특성상 대기업 중심의 광고 수주 및 기획에서도 자유롭지 않고, 몇몇 전직 인사들이 보수정당을 통해 정계 진입을 시도하는 등의 역사도 해당 매체가 분명 시기적으로는 유용하지만 지금 당장 ‘페미니즘 리부트’를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마뜩치 않음 점을 주었으리라. 이후 창간된 ‘일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신문보다는 유연하고 폭 넓은 면모를 보였지만, 창간 이후 약 15년의 간극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닷페이스를 비롯하여 핀치 등의 신생 미디어들은 페미니즘을 말하면서도, 다시 자신들의 매체가 이전의 동종 미디어와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면서 다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기반 다지기의 방안을 모두 함께 모색해야 했다. 동시에 이미 미디어를 접근하는 통로가 SNS나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젊은 페미니즘 운동가나 관련된 생각을 지닌 이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더욱 활발하기 모으기 위해서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플랫폼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과제까지 부여되었다. 미디어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본디 쉬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시대적 흐름 위에서 생긴 미디어들은 결코 다른 신생 미디어와 같은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고, 이전과는 같은 길을 가지 않고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흐름을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적용해야 했다.

▲ 미성년 성 매수 문제를 공론화한 닷페이스. 사진=닷페이스 홈페이지
▲ 미성년 성 매수 문제를 공론화한 닷페이스. 사진=닷페이스 홈페이지

새로운 시도들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도 해결책 모색하려

물론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2017년 ‘미디어브릿지’가 업데이트가 무기한 중단되며 그대로 사라진 이래, 지난 2020년에는 투자 유치 난항,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핀치’가 운영을 종료했다. 일반적인 웹진에 가까웠던 ‘미디어브릿지’와 달리, ‘핀치’는 지속적인 운영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월 정액제를 도입하거나 일반적인 기사 컨텐츠 외에도 에세이 경향으로 자기 자신과 여성의 신체, 삶을 말하던 만화가 란탄의 ‘화의 방향’, 레진코믹스 초창기에 ‘먹는 존재’로 빠르게 화제의 작가가 되었던 만화가 들개이빨의 ‘족하’를 비롯한 만화를 연재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 곳이었다. 여러 생존과 콘텐츠 확보를 위해 노력했던 ‘핀치’의 운영 중단은 서서히 거세지던 백래시의 흐름과 맞물려 많은 불안감을 낳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닷페이스’는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미디어의 길을 걸으면서도, 가늘고 길게라도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모색해왔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표방했던 이들 몇몇이 쉽게 빠져든 생물학적 여성 이외 트랜스 여성 등을 쉽게 배제했던 ‘TERF’와 같은 함정에 빠지는 대신, 트렌스젠더를 비롯하여 다양한 성소수자, LGBT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노력했다. 직접적인 젠더 이슈 외에도 매체가 주로 집중하던 대상인 청년이 놓이기 쉬운 삶과 노동의 불안정성에도 초점을 내비추었다. 이러한 기획을 글,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물론 미디어 자체가 일종의 ‘삶과 함께 하는 플랫폼’으로 영속할 수 있는 움직임까지 등장했다. 아마도 오랜 시간 회자될,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모든 행사의 개최가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비슷한 처지에 놓인 2020년 퀴어문화축제를 온라인 캠페인으로 협력한 닷페이스의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는 온라인 시위-집회 캠페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움직임이었다.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 관련 영상.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 관련 영상.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닷페이스 역시 갑작스럽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닷페이스가 작별을 하는 사유는 ‘핀치’ 등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재정’ 문제이다. 지속적인 재생산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리 공을 들여 질 좋고 시기적으로도 유의미한 콘텐츠를 만들어도, 그에 상응하는 선순환의 구조는 구축하기 어려웠다. 그 안에서 의지로 가득한 마음도 서서히 무뎌지고, 지칠 수 밖에는 없었으리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국내외의 다른 대안언론들도 자금 차원에서는 물론 구성원의 사기 유지의 차원에서 지속 가능성을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쉽게 사라지고 말았던 것처럼, 닷페이스 역시 안타깝지만 그런 길을 가고 말았다.

닷페이스가 남긴 유산

그러나 그 가는 길이 마냥 쓸쓸한 것은 아니다. 닷페이스를 비롯한 2016년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페미니즘 경향 대안 매체의 등장은 2019년 창간한 페미니즘 연구 매거진 ‘FwD’의 창간을, 2020년에는 페미니즘 경향인 동시에 독립-단편 영화에 집중하며 근래에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하나의 흐름이 된 ‘온라인 영화제’ 추진에도 함께하는 대안적인 OTT ‘퍼플레이’ 같이 파생적인 미디어의 시도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실패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움직임이 분명 가능하며, 이를 단단한 기반으로 만들 수 있다는 하나의 자신감을 만들어 낸 셈이다.

▲닷페이스의 '할 말 많은 인터뷰' 가운데 승무원 편.
▲닷페이스의 '할 말 많은 인터뷰' 가운데 승무원 편.

닷페이스가 사라지는 2022년은 분명 여러모로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대통령 후보의 당선은 한국이 사회적 소수를 여전히 쉽게 배제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설사 여성가족부가 폐지되지 않을지라도 새 정부가 선도적으로 여성가족부의 기존 정책을 마구 다른 부서에 이관하고 있으며, 대통령 취임식에 여성 혐오를 내세우던 단체의 대표를 참석시키거나 인사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는 이를 인선하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정부의 젠더나 소수자 감수성이 빠르게 무뎌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디어가 놓인 환경은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아무리 기민하게 트렌드를 파악하더라도 이를 따라잡기 어렵고, 따라잡으면 미디어가 본래 지닌 특성을 더욱 미묘하게 만드는 역설에 빠지게 쉽게 만든다.

닷페이스를 비롯한 대안적 성향의 새로운 움직임이 더욱 자리를 잡기 어려운 시기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새로운 흐름을 구축하기 위해서 결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서리라. 그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 시도가 단발적인 것을 넘어 장기적인 흐름이 되도록 지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보면 그러한 움직임의 반복과 정착이 2016년 닷페이스를 비롯해 여러 대안적 매체가 남긴 소중한 유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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