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추앙해요”라는 대사로 일종의 밈(meme·유행어)을 만들어 낸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연출 김석윤·극본 박해영) 인기에 탄력이 붙고 있다. 극 중반부인 8회 시청률은 수도권 4.2%, 전국 3.9%(닐슨코리아·유료가구 기준)였다.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는 4월 4주차(4월25일~4월29일) 통합 콘텐츠 랭킹 1위로 ‘나의 해방일지’가 차지했다고 밝혔다. 키노라이츠는 ‘나의 해방일지’가 지난 4월 3주 차엔 화제작 ‘어게인 마이 라이프’, ‘파친코’, ‘우리들의 블루스’에 밀려 4위에 자리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 상승과 더불어 드라마에 대한 OTT 이용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키노라이츠 순위는 약 10만 건의 영화, 드라마, TV 예능 데이터와 내외부 국내 미디어 트렌드 데이터를 분석해 산출된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에서 거리가 먼 경기도의 산포 마을에서 사는 염씨 삼 남매를 중심으로 의문의 남자 구씨(손석구 배우)와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염씨 삼 남매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진 않지만 애인과의 이별이나 짝사랑, 전 애인이 청산하지 못한 빚 등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JTBC '나의 해방일지'.
▲JTBC '나의 해방일지'.

극 초반 당황스러웠던 “날 추앙해요” 대사
중반부로 가며 ‘추앙’ 왜 필요한지 설득

극 초반 염씨 삼 남매 중 막내인 염미정(김지원 배우)이 의문의 남자 구씨에게 던진, 시청자들을 다소 난해하게 만든 “날 추앙해요”라는 대사는 주목을 끌었다. 극 중반 ‘추앙’이 어떤 뜻인지 와닿게 되면서 시청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7화 염미정 대사에서 왜 주인공이 구씨에게 추앙을 바랐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염미정은 자신을 배신하고 빚을 대신 갚게 만든 전 남자친구에게는 한마디 못하는 캐릭터인데, 구씨에게는 버럭 짜증을 낸다. 구씨가 의아해하자 염미정은 이렇게 말한다.

“넌 날 좋아하니까. (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뭔 짓을 못해. 그러니까 넌 이런 등신 같은 나를 추앙해서, 자뻑에 빠질 정도로 자신감 만땅 충전돼서, 그 놈한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야무지게 할 말 다할 수 있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누가 알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 까발려져도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게 날 추앙하라고.”

애초 두 사람 관계는 일반적 연애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두 사람은 둘의 필요에 의해 ‘추앙’을 시작한다. 염미정은 전 남자친구 빚을 대신 떠안고 있고, 회사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지내고 있다. 그래서 염미정은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라고 말한다.(2화) 염미정에게 ‘추앙’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의문의 남자 구씨도 어떤 필요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추앙해보라며 “봄이 되면 당신도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염미정에게 솔깃한다. 구씨는 염미정에게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라며 “추앙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라고 묻는다. 이에 염미정은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라고 ‘추앙’을 정의해준다. (4화)

작가 특유의 대사, ‘멀리뛰기’ 장면 등 신선한 연출까지

‘나의 해방일지’는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 특유의 대사들이 인기다. 이에 더해 장면 연출도 신선하다. 극 초반 경기도에서 거주하는 삼 남매의 주변부적 모습을 강조했다면 4화 후로는 ‘추앙’에 대한 설명과 구씨가 누구인지 조금씩 드러내면서 극을 이끌어 나간다.

▲JTBC '나의 해방일지' 메이킹 영상.
▲JTBC '나의 해방일지' 메이킹 영상.

그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 구씨의 멀리뛰기 장면이다. 멀리뛰기는 구씨와 염미정 사이 ‘추앙’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구씨는 염미정 모자가 멀리 날아가자 빙 둘러가야 하는 논두렁을 멀리뛰기로 뛰어넘어 모자를 찾는다. 이 영상을 찍기 위해 구씨를 연기한 손석구 배우는 와이어를 타고 수차례 논두렁을 날아다녔다.

6화에서 구씨의 소주병을 비추는 장면도 신선한 연출로 회자되고 있다. 구씨는 매일 소주를 마시는데 이 소주병을 방 안에 가득 채워넣고는 치우지 않는다. 이에 염미정 오빠인 염창희(이민기 배우)와 그 친구가 발견하는 장면에서 소주병에서 마치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연출했다. 염미정과의 관계가 조금 깊어지자 구씨는 스스로 그 소주병을 치운다. 추앙이 만든 변화다.

어디에 갇힌지 알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응원메시지

드라마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극중 대사들에 ‘추앙’이나 ‘해방’처럼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말 많은 캐릭터로 설정돼 있는 염창희 대사 등은 특히 문어체가 많아 일상 대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또 경기도민을 ‘주변인’으로 설정한 것에 “경기도민을 지나치게 주변인처럼 그린 것 아니냐”는 반응, “거의 모든 인물이 연애에만 목말라하는 설정이 공감되지 않는다”는 반응 등도 있다.

▲JTBC '나의 해방일지' 포스터.
▲JTBC '나의 해방일지' 포스터.

아직 극 중반부이지만 ‘나의 해방일지’가 응원하고 싶은 이들은, 특별히 불행한 사건이 없더라도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 모르고,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알 수 없는 이들인 것으로 보인다. 평소 그런 감정을 느낀 적 있던 이들은 인물들의 대사에 공감을 느끼고, 일상적 감정을 잘 드러내는 이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다. 

주인공 염미정 역시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3화)라고 말하며 사내에서 ‘해방클럽’을 조직한다.

무엇 때문에 갑갑한지 모르는 이들은 종종 그 답답함을 뚫고 나갈 순간이 찾아와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곤 한다. 드라마는 현재까지 큰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구씨 정체를 숨기면서 미스터리한 스릴러 느낌도 풍긴다. 이는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주부터 펼쳐질 극 후반부에선 의문의 남자 구씨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들이 각자 ‘해방’을 향해 가는 모습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좋을 때는 그냥 좋아. 그런데 심장이 뛸 때는 잘하면 가질 수 있을 거 같을 때. 폭풍처럼 기대심리 이런 거. ‘내꺼’는 그냥 ‘내꺼’라고 생각해. 너 월급 들어오는데 심장 뛰는 거 봤어? 내껀데 왜 뛰어. 내꺼는 아닌데, 잘하면 가질 수 있겠다 싶을 때 심장이 뛰는 거야.”

7화 염창희 대사다. 심장이 뛸 정도로 좋다기 보다 자연스러운 편안함 속에서 알다가 모를 답답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마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 속 명대사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에서처럼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 역시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해방은 어쩌면 아주 싱거운 것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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