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제작)가 개봉 7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21년 한국영화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도 류 감독의 깔끔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인정받고 있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렸다. 영화는 1991년 소말리아 주재 강신성 대사가 소말리아 내전 속에서 탈출로가 막힌 채 북한 대사 관계자들과 함께 합동 탈출 작전을 펼친 실화에 기반한다.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1991년 1월24일 중앙일보 기사(“‘떼죽음 말자’ 손잡은 남과북, 강신성 대사가 밝힌 소말리아 탈출기”)에 따르면 강신성 대사는 “모가디슈는 지난 연말 이후 계속된 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으로 총탄이 비오듯 쏟아져 정부기관과 통신시설이 거의 파괴되고 주택가와 외국공관 등에는 총을 든 강도들이 몰려와 부녀자 겁탈·금품 강탈 등을 일삼아 말 그대로 무정부 상태”라고 말했다. 영화는 2시간 동안 이 장면들을 연출한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강 대사는 북한 김룡수 대사와 북한 공관원 등 가족 14명을 발견, “떼죽음을 당할 위기 속에서 남북이 어디 있느냐. 우리 한민족끼리 합심해서 탈출 작전을 펼쳐봅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윤석 배우가 연기하는 강신성 대사와 허준호 배우가 연기하는 김룡수 대사는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 다만 조인성 배우와 구교환 배우가 연기하는 참사관 역할은 영화 속 가상 인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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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24일 중앙일보 기사. 

영화에서도 남북 대사는 우리공관에서 생활하며 함께 작전을 짰다.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서 북한 측은 이집트 대사관에, 남한 측은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움을 청했다. 이탈리아에서 남한 측 공관원만 태울 수 있다고 하자 강 대사는 강하게 설득, 남북 공관원들은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 속 캐릭터인 구교환 배우가 연기하는 태준기 참사의 죽음 사건과 유사한 일도 당시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던 도중 집중 포격이 쏟아졌는데 북한 공관 통신기사는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 의지로 운전을 계속하며 대사관 후문까지 사람들을 운송했다. 그는 그곳에서 사망했다. 이틀 후 다른 대사관 관계자들은 국제적십자사 마크를 단 이탈리아 군용기를 타고 케냐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천신만고 끝에 전쟁터를 탈출한 양측 공관원과 가족들은 몸바사 공항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 ‘통일이 되면 다정한 이웃이 되어 함께 살자’는 작별 인사를 주고 받으며 잠시나마 뜨거웠던 동포애를 아쉬워했다”고 기록돼 있다.

영화와 실제 기사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당시 기사들은 남북 공관원들이 사이좋게 식사를 나누고 함께 탈출 작전을 짜고, 탈출 이후에도 뜨거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언론은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민족이라는 생각으로 서로 도와 위기를 넘겼으며 남북이 이제는 대결 상황을 벗어나 화합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라고 강 대사 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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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991년 1월24일 뉴스 '소말리아 남북합동 탈출작전'. 사진출처=MBC. 

그러나 영화는 북한 노동당과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서로 눈빛도 교환하지 않고, 모르는 척 헤어지는 설정이다. 영화 후반부 김윤석과 허준호가 뜨거운 눈빛 교환을 하길 바라는 관객들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게, 얼굴을 아주 조금만 돌릴 뿐이었다.

영화는 ‘뜨거운 동포애’를 보여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연대’를 설정했다. 영화는 함께 탈출을 준비하는 시간을 묘사하면서도 두 참사관 사이 벌어지는 극심한 갈등을 보여준다. 그 외 등장인물들 사이에도 서먹함이 흐른다. 이 냉소적 설정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뜨거운 동포애’는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영화는 눈물을 짜거나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깔끔한 블록버스터에 집중하게 한다.

영화 속 허준호의 “지금부터는 생존이 목표다”라는 명대사는 오늘날 우리 모습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공감을 만들기도 한다. 결말과 연결 짓는다면,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어쩌면 뜨거운 동포애나 연대는 공감할 수 없는 가치가 돼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뜨겁고 서로가 모든 의견을 동의하는 방식으로 연대가 이어지길 바라지만 현실의 연대는 필요에 의해서, 아주 서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에서 가장 따듯한 장면, 대한민국 대사의 부인이 깻잎김치를 먹을 때, 북한 대사 부인이 깻잎에 붙은 깻잎을 떼어주는 정도의 연대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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