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 ‘킹메이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대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수단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수단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대의는 올바른가? 그렇다면 이기지 못한 대의는 과연 올바른가?”

영화 ‘불한당’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가 2시간 내내 묻는다. 지난 1월26일 개봉한 킹메이커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이며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던 엄창록을 모티브로한 정치 영화다. 

영화에서 故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운범’으로 배우 설경구가 연기하며, 엄창록은 ‘서창대’라는 이름으로 배우 이선균이 연기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이 영화는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나, 허구입니다”라고 알려주는데 1960~70년대 극적인 선거 과정을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픽션이다. 

▲영화 '킹메이커' 포스터. 
▲영화 '킹메이커' 포스터.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이기셔야 합니다.”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는 이북 출신으로 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엄창대 역시 함경북도 출신이며 강원도에서 한약재 상으로 살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로 입문하게 된다. 서창대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 서창대는 김운범(설경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현장으로 찾아가 자신의 전략적 수단으로 정치판에서 이기게 해주겠다고 한다. 김운범은 이미 여러번 낙선의 고배를 마신 상황이다. 

낙선하던 김운범에게 ‘선거판의 여우’ 서창대가 붙으면서 1961년 재보궐 선거와 1963년 총선 재선까지 이끌고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승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가 다루는 시기다. 영화에서 다루는 첫 번째 선거에서 서창대는 당시 박정희 세력이 돈을 풀어 선거하는 양상을 파악, 이를 역이용하는 전략을 펼친다. 예를 들어 상대편 캠프의 옷을 입고 전날 주민에게 준 와이셔츠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거나 예의없는 상황을 만드는 등 소소하지만, 사람들의 심리를 변화시키는 전략을 짠다. 

소소한 전략도 있었지만 대선 후보 선거에서는 신민당 내 주요 후보들의 마음을 조정해 판을 바꾸기도 한다. 이에 김운범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서창대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생긴다. 서창대는 그럼에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이야”라며 ‘이기는 선거’를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영화에서는 단 한장면만으로 이렇게 당당하고 무서울 것 없어보이는 서창대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등 세련되게 연출했다.  

기발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선거 전략을 내놓는 서창대를 통해 김운범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기회까지 얻는다. 그러나 김운범은 서창대를 공식적으로 가까이 놓는 것을 주저하고 서창대의 서운함은 쌓여만 간다. 김운범이 빛날수록, 서창대의 어두운 전략과 서창대 자체는 드러나선 안 되는 것들로 남는다. 이를 두고 변성현 감독은 ‘빛과 그림자’라는 비유를 통해 영화 내내 밝고 어두운 화면을 대조해 인물들을 비추는 연출을 보인다. 이러한 연출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영화 내내  ‘그림자’라는 단어가 몇번이나 등장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렵거나 난해한 연출은 아니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빛과 그림자라는 비유를 통해 김운범과 서창대를 보여주는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 '킹메이커'의 한 장면. 빛과 그림자라는 비유를 통해 김운범과 서창대를 보여주는 연출을 보여준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겨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일세.”

김운범은 전략보다는 대의를 좇는, 어쩌면 순진한 정치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창대 없이는 그 대의를 펼칠 무대를 찾기 힘들다. 때문에 결국 김운범도 서창대를 인정하게된다. 그러던 중 김운범의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정치를 위해서라면 쇼를 해야 한다’던 서창대의 발언 등 탓에 서창대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맨 처음 영화의 나레이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는 대사가 암시하듯 서창대는 자신을 의심하는 김운범에게 상처를 받고 그를 떠나게 된다. 이번만큼은 김운범도 서창대에게 매번 말하던 “자네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고 말대신 “자네는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해선 안 될 사람이네”라고 말한다. 서로는 이렇게 갈라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서창대가 박정희 캠프로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다룬다. 서창대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한국의 문제인 지역주의 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를 부추겨 김운범이 지는 판을 만든다. 

대선을 한 달 남기고 개봉한 정치 영화 ‘킹메이커’는 어떤 한 쪽 진영을 편드는 영화는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2020년부터 개봉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미뤄져 2022년 설연휴에 개봉했다. 영화엔 정치 현장의 뜨거움과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정치인의 슬로건, 드라마보다 기막힌 반전, 상대편의 심리를 움직이는 머리 게임 등 정치의 매력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대선을 앞두고 어떤 진영을 편들고 부추기는 영화가 아니라, 그동안 어쩌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정치에 대한 감정을 다시금 뜨겁게 달구고 우리가 과거에 치열하게 고민했던 질문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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