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유퀴즈 온더 블럭’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인터뷰한 가운데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출연 요청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 당선인을 출연시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난해만 해도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성격상 정치인 출연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기에 ‘외압’ 혹은 ‘코드 맞추기’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CJENM에 있어 ‘외압’과 ‘코드 맞추기’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인 데다 오너의 비리 문제까지 겹치면서 CJENM은 권력의 압박에 순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국민의힘 집권 시절인 박근혜 정부 때 ‘외압’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던 만큼,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tvN '유퀴즈' 갈무리
▲ tvN '유퀴즈' 갈무리

 

창조경제 광고에 MAMA 박근혜 대통령 연설까지

박근혜 정부 당시 상암 CJENM(당시 CJE&M) 사옥에 상징적인 공간이 들어섰다. 사옥 1층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마련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기업들에 ‘창조경제’ 관련 사업 지원을 요청했고 CJENM이 화답한 것이다. 이른바 ‘창조경제’를 위한 시설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을 맡았지만 공사비와 운영비를 CJENM이 부담해야 했다. 이 시설은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함께 사라졌다. 

▲ 2014 MAMA 시상식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VCR 축사
▲ 2014 MAMA 시상식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VCR 축사
▲ tvN의 창조경제 응원 광고
▲ tvN의 창조경제 응원 광고

당시 CJENM은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광고를 대거 내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CJ 제일제당은 2013년 6월14일 10대 일간지에 “더 살맛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백설이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이후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방송광고를 수년 간 CGV와 CJ계열 방송 채널에 편성했다. ‘슈퍼스타K’등 프로그램 말미에 “CJ가 대한민국 창조경제와 함께 합니다”라는 자막을 넣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2014년, 2015년 CJENM이 주최하는 음악 페스티벌 MAMA(마마)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한 일도 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MAMA(마마)에 출연해 “MAMA는 문화를 통해 창조 산업을 발전시킨 글로벌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여의도텔레토비’ ‘끝장토론’ 뜬금 없는 종영과 결방

2013년 tvN은 최일구 전 MBC 앵커가 진행을 맡는 tvN ‘끝장토론’을 방영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급작스럽게 ‘무기한 방영 연기’를 결정했다. 당시 tvN은 “내부 사정으로 ‘끝장토론’의 방송 론칭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연기하게 될지 그 시점은 아직 모른다”며 “갑작스러운 방송 연기로 ‘최일구의 끝장토론’을 기다린 분들에게 실망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끝장토론’은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등으로 패널을 확정하고 녹화까지 마쳤던 상황이다. 당시 CJ ENM 관계자는 이데일리에 “외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 녹화까지 마쳤으나 불방된 '최일구의 끝장토론'
▲ 녹화까지 마쳤으나 불방된 '최일구의 끝장토론'

tvN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인 '여의도 텔레토비'는 2013년 5월 급작스럽게 결방을 이어가다 폐지됐다. 2012년 대선 당시 대선 주자들을 빗댄 ‘여의도 텔레토비’는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 ‘또’가 청와대의 분노를 산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2016년 JTBC는 전 tvN 관계자를 인터뷰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가 해당 코너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했고, 원고 사전 검토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JTBC에 따르면 당시 회사 법무팀은 원고를 미리 받아 빨간색으로 특정 대사를 삭제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JTBC 보도에 CJENM측은 욕설 등에 대해 자체심의한 것이고 청와대의 제작진 조사는 들은 바 없다며 이번에도 외압을 부인했다.

국정원 사찰, ‘좌파’낙인찍고 부회장 퇴출까지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tvN과 CJENM을 향한 전방위적 ‘외압’의 실체가 드러났다. 2016년 국정원개혁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작성한 ‘CJ의 좌편향 문화사업 확장 및 인물 영입 여론’이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 2016년 11월25일 JTBC 뉴스룸 갈무리
▲ 2016년 11월25일 JTBC 뉴스룸 갈무리

보고서는 △‘좌파’ 영화감독 장진에게 ‘SNL 코리아’의 연출·진행을 맡겼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 또’ 캐릭터가 욕설을 가장 많이 하고 안하무인인 인물로 묘사해 정부비판 시각을 조장했고 △MBC파업에 적극 가담했던 최일구·오상진 아나운서를 진행자로, KBS파업을 지지했던 나영석 PD를 예능감독으로 기용하는 등 좌파 세력을 영입하고 △탁현민·김어준·표창원·진중권과 임수경 의원, 성한용 한겨레 기자 등을 토론 패널로 집중 출연시켜 종북좌파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4년 9월 이미경 부회장이 돌연 사임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CJENM측은 외압을 부인했지만, 보고서를 통해 외압의 실체 역시 드러났다.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CJ 좌경화’의 원인을 이미경 부회장에게서 찾았다. 보고서는 이미경 부회장을 ‘친노의 대모’로 규정하며 회사의 좌성향 활동을 묵인·지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CJ측에 시정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과도한 사업확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3년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CJ 회장에게 연락해 VIP의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 퇴출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 전 수석은 2018년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했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관계 개선 위해 애국주의 영화 제작 나서기도

국정원 보고서는 CJENM의 영화 사업에도 적극 문제 제기한다. CJENM이 투자 및 배급한 영화를 분석한 결과 △‘살인의 추억’ ‘공공의 적’ ‘도가니’ 등이 경찰과 공무원을 부패·무능한 비리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했고 △‘공동경비구역 JSA’ ‘베를린’이 종북 세력을 친근한 이미지로 오도하고,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기고 △‘광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토록 하는 등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후보를 간접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 들어 CJENM이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심에 방점을 찍은 영화들을 연달아 개봉했다. 손경식 회장은 2018년 재판에 출석해 “이 부회장이 애국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려고 했다”며 “CJ 차원에서도 어색한 관계를 개선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정부 압박에 ‘애국주의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는 얘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