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속성 중 하나는 사람들 관심사를 증폭시키거나 견인하는 것이다. 보도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다. 하나의 사건을 공동체 문제로 각성시키는 과정에 언론 보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의 순기능이다. 16개월 입양아가 학대를 받다가 숨진 ‘정인이 사건’은 공론화엔 성공했지만 문제 해결 측면에서 언론의 순기능은 턱없이 부족했다.

첫째, 사건의 네이밍 문제다. 16개월 입양아 사건이 ‘정인이 사건’으로 명명된 이유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선택’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10월 사건 발생 후 언론은 피해자 얼굴과 이름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 SBS 제작진이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입양 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과 입양 후 어두운 얼굴 모습은 아동 학대를 의심케 하는 정황으로 볼 수 있고, 피해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대중 관심을 촉발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이름 공개는 사건 해결과 무관하게 신중해야 하는 문제이다. 정인이 사건 본질은 3번에 걸친 신고에도 학대를 막지 못한 사회시스템 문제,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여론에도 아동학대치사 혐의만으로 기소했던 미진한 수사 문제 등이 얽혀있다. 정인이 사건을 ‘양천경찰서 비위 사건’ 혹은 ‘장아무개 학대 사건’이라고 부르자는 요구가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인이 사건’은 정인이를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사건 본질을 흐리는 효과로 작용한다. 지금부터라도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둘째, SBS 보도 이전 언론이 과연 이 사건에 대한 대중 여론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지난해 10월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아동학대 신고에 왜 수차례 무혐의 처리를 했는지 등 상식적 물음이 이어지고 잔혹한 학대 정황에 분노가 터져 나왔다. SBS 보도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서 여론을 폭발시켰다. 영상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지난해 10월부터 SBS 보도 이전까지 중앙일간지의 보도 패턴을 보면 사건 발생, 무혐의 처리한 경찰 징계 소식, 검찰 기소 발표에 맞춰져 있다. 공권력의 사건 처리 과정을 담는 것에 그치면서 대중 분노를 감지하지 못했고 의제 설정에 실패한 것이다. SBS 보도 이전 한 자릿수에 그쳤던 일간지별 보도가 SBS 보도 후 세 자릿수에 육박한 것만 봐도 그렇다. 대중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사건 처리신고 내용, 무혐의 처리 절차 등을 제기하지 않다가 분노한 여론에 쫓겨 뒷북을 친 셈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같은 대결 구도 보도에 치중하다가 정작 대중 관심과 여론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인지도 자문해봐야 한다. 

셋째, 아동학대 사건의 잔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희생자’ 찾기에 골몰하는 보도도 문제다. ‘내복 아이’라고 명명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언론은 지난 8일 내복을 입은 아이가 편의점에서 발견돼 아동학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이 나이부터 부정확해 독자들은 혼란을 겪었다. 아이를 방치한 행위만 부각하다보니 당일 행적과 아이의 집안 사정은 살피지 않았고, 일부 사실이 진실을 가렸다. 언론이 희생자 찾기에만 매몰돼 아동학대 이슈를 선정적으로 다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관련기사_혼동스러웠던 ‘내복 아이’ 보도, 그날 무슨 일 있었나)

▲지난 9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지난 9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아동학대 사건을 막는 여러 해결책 중 복지기관이든 수사기관이든 ‘전담부서’를 만들자는 요구가 있다. 언론 역시 아동학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을 구성·배치할 필요성도 있다.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아동학대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잔혹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잠깐 사안을 다루고 떠나는 게 보통이다. 아동학대 문제는 결국 아동 복지와 연결된다. 의사와 법률가 출신 기자가 있듯 아동복지 전문가를 기자로 채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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