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혹한에 거리서 발견된 3살 여아… ‘도와주세요’”

SBS 8뉴스는 지난 9일 3살 아이가 전날 영하 18도 날씨에 서울 강북구 한 편의점에서 내복 차림으로 발견됐다고 ‘단독’을 달아 보도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 세간의 분노가 들끓는 분위기에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15일 기준 포털 뉴스페이지 검색 결과 77건이 보도됐다.

보도는 널을 뛰었다. 아동의 나이부터 제각각이었다. 3살이라는 첫 보도 이래 아이가 4살, 5살, 6살, 7살이라는 기사가 각각 나왔다. 엄마가 아이를 홀로 둔 이유를 놓고 ‘출근하며 집을 비웠다’는 보도와 ‘사실은 마트에 다녀왔다’는 전언이 부딪혔다. 굶다 못한 아이가 집을 나섰다고도 하고, 여부가 확인이 안 됐다고도 했다. 같은 사건에 엇갈리는 증언들이 나왔다. 이틀 뒤 강북구에서 다른 아동이 내복 차림으로 집을 나와 ‘어머니가 나가라고 했다’고 말한 뉴스가 섞이며 혼돈이 커졌다.

JTBC와 YTN 등은 11~12일 엄마가 한부모 가정 지원시설에서 나와 양육비 없이 생계를 이어갔고, 돌봄을 맡길 곳도 찾을 수 없었다는 구조적 원인에 주목했다. 아이 엄마의 증언과 어린이집, 목격자 등 당사자와 주변인의 증언을 추가 취재했다. 그러나 경찰이 서로 충돌하는 보도 내용에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가 어떤 사정 속에서 홀로 있다 집을 나섰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미디어오늘은 아동이 집을 나선 뒤 발견됐던 서울 강북구 현장을 지난 14일 저녁 찾았다. 해당 편의점과 아이의 집은 60m 거리. 좁은 골목과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 A씨를 만나 그날의 의문점과 아이와 단둘이 이어온 생활에 대해 물었다. A씨는 “무섭다. 또 다른 이야기를 얹어 언론에 다시 다뤄지고, 어떤 한 단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것이 두렵다”며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지난 9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지난 9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아이는 햇수로 계산해 6살이다. 통상 언론이 햇수를 빼 계산하는 나이로는 5살이다. 아이는 그날따라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졸랐다. 긴급돌봄서비스는 당일 신청이 불가능했다. A씨는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쓰는 공기계 휴대폰으로 음성과 영상통화 방법을 알려준 뒤 수시로 전화하라고 했다. A씨는 8일 출근 시각인 오전 9시께 뒤늦게 집을 출발했다.

A씨는 일과 중 20~30분 간격으로 아이와 음성 또는 영상 통화를 했다. 엄마는 구청에서 배치한 자활근로를 한다. 현재는 행정서비스를 받으러 온 방문객의 체온을 측정한다. 오후 5시 일을 마칠 때까지 아이와 34건 통화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통화 시도한 5시40분께부터 모녀가 재회하는 6시30분께까지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아이는 5시6분~5시38분 엄마에게 10차례 전화했지만 닿지 않았다. 마지막 통화 시도로부터 40분 뒤 아이는 행인에게 발견됐다.

A씨는 5시에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출발했다. A씨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꺼졌다”고 했다. 그의 아이폰은 그날 따라 일과 중 기기가 얼었는지, 충전 단자가 고장났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충전이 안 됐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자전거에 옷깃이 걸려 멈춰서 중간에 행인의 도움으로 빼냈다. 집에 도착한 A씨는 아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휴대폰이 꺼진 사실을 알았다. 그는 도로 밖으로 나오자마자 편의점 앞에 있는 경찰차를 발견했다.

A씨는 말하던 중간 중간 두 손을 가슴팍에 포개고 움츠렸다. 수 차례 말을 멈추고 “죄송하다”며 “며칠 동안 계속 심장이 붕 뜬 것 같고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돌아오는 동안에도 아이와 연락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집에 혼자 둔 것에)속죄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 9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지난 9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뉴스엔 단면만 보도됐다. SBS의 첫 보도를 비롯해 다수 기사는 아이가 하루 종일 굶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확인되지 않은 보도다. A씨가 ‘간식을 시켜줬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A씨는 “아이가 찾아먹는 간식을 늘 두는 곳에 비치해놔서, 그걸 먹으라고 했다. 아이와 통화해 아이가 간식을 먹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언론은 편의점 CCTV 장면을 비추며 아이 내복이 대소변으로 젖어있었다고도 했다. A씨는 아이가 대변을 본 뒤 A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집을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와 통화하면서 (대변이) 마렵다고, 어떻게 하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에 가도록 이야기했어요. 그리고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고 있었어요. 아이가 대변 처리를 하지 못하는데 엄마는 전화를 안 받으니까 당황해서 집 밖으로 나온 것 같아요.”

아이가 있던 집안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했다”는 보도도 다수였다. A씨는 “쓰레기를 어질러 놓지 않고 버리려고 모아놓은 상태였다. 평소엔 그렇지 않다”며 “아이가 있으면 조금만 자리를 비워도 어질러진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 반려견이 화장실이 아닌 곳에 대변을 보면서 더 지저분해졌다”고 했다.

▲지난 11일 헤럴드경제 보도 갈무리
▲지난 11일 헤럴드경제 보도 갈무리. 이 기사 인터뷰에 응했던 주민은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이 제목에 보도됐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등은 A씨가 일하러 나간 게 아니라 마트에 다녀왔다는 주장도 전했다. A씨는 이를 두고 지난해 12월24일 아이가 한 차례 혼자 편의점에서 발견된 날과 혼동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뒤 빼먹은 음식 재료를 사러 잠시 마트에 다녀오려고 나왔는데, 아이는 엄마가 평소 가는 편의점에 간 줄 알고 왔다”는 것이다.

일부 방송 보도는 A씨가 “내일은 주말이니까”라는 말로 아이를 두고 출근한 이유를 대는 듯한 발언을 내보냈다. 이 토막 발언은 ‘주말 앞두면 항상 그래도 된다’는 뜻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A씨는 그렇게 말한 배경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날은 제가 종일근무를 하는 막바지가 될 수도 있는 날이었어요. 그 뒤엔 아이와 쭉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필 바로 그날 이런 일이…”

A씨에 따르면 그는 반일제 근무를 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구청과 지난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구청 쪽은 반일제 근무 신청 기회를 얻으려면 전일제 근무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자활근로를 그만두면 기초생활수급이 끊겼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18~64세 가운데 ‘근로능력 있음’ 판정 받은 이가 근무하지 않으면 생계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A씨에게는 생계급여가 기약 없이 끊긴다는 말이었다.

A씨는 전일제 일을 그만두고 바로 반일제 신청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3명의 담당자를 거치며 사정 설명을 되풀이한 뒤 마지막 담당자는 ‘8일까지 전화로 대답을 준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반일만 일하면 생계는 어떻게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의 ‘시간’이라고 여긴다. 곧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이 막바지 무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소리 내 울었다. 구청은 그날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는 “살면서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이혼한 아버지가 자란 환경에서는 그 같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의 삶을 위해 데리고 왔어요.”

20대인 A씨는 넉 달 전 모자보호시설에서 나와 혼자 생계를 책임져왔다. 한부모 가정 지원을 받아 임대주택에서 살게 됐다. 그마저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제때 입주하지 못했다. 이웃 주민은 “A씨네는 원래 오기로 한 날짜보다 3개월 뒤 들어왔다. 보증금 500만원이 없어 모으느라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혼한 남편은 양육비 이야기를 꺼내면 ‘잠수’를 탔다. 그래서 자활근로를 시작했다. 부업도 했다. 

▲지난 8일 A씨의 5살 아이가 발견된 서울 강북구 편의점 앞.
▲A씨와 그의 5살 아이가 사는 집 인근에 위치한 서울 강북구 편의점.

A씨와 같은 주택에 사는 이웃 주민 B씨는 “틀린 보도가 정말 많았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기사에 나오는 주민이 나예요. 그때 종편과, 지상파 기자도 있었어요. 전 ‘그 친구가 후회한다, 잘못했다고 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헤럴드경제는 제목에 썼어요. 실제 반성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인데.” 그는 “항의하려고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포기했다”며 “그때부터 기자들과 대화를 안 하려고 한다”고 했다. 헤럴드경제는 A씨가 기존 보도와 달리 직장에 가지 않고 마트에 갔다고 보도했는데 A씨가 마트를 갔던 12월 24일과 1월 8일 사건을 혼동해 인터뷰한 내용을 확인 없이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건물에 사는 또 다른 주민 C씨는 “아이가 엄마와 드나들 때 보면 학대는 아닌 것 같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소음이 잘 퍼지는 건물이라 만약 방치·학대를 했다면 울음소리 같은 게 났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자신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보여줬다. “엄마는 왜 착한 사람이야?” “‘착한사람이에요?’라고 해.” “응. 엄마는 왜 착한 사람이에요?” “날 돌봐주니까.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주고, 책 많이 읽어주고.” “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착한 거예요?” “돌봐주는 거.” 아이와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얼굴을 맞댄 사진, 체험전시장에 가거나 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A씨는 “아이가 어떤 심정이고 상태인지가 너무 궁금하다. 아이는 잘 있다고 들었다. 혹시라도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쳐 아이와 떨어지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현재 경찰은 아이와 A씨를 분리 조치한 상태로, A씨는 기한을 듣지 못했다. A씨는 한 차례 더 경찰 조사에 임할 예정이다. “부모의 역할과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또 밖에 나가서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 보는 시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요. 단면만 있지 않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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