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당 대표직을 내려놨다. 지난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이를 두고 보수 성향 언론 내에서도 미묘한 논조 차이가 드러났다. 이는 곧 국민의힘 안팎에서 나오는 의견들이기도 하다. 

▲ 14일 경향신문 만평. 김건희 의혹 등 대통령실의 문제가 현 여권의 위기 원인인데 여당 지도부나 친윤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현 상황을 풍자한 내용이다
▲ 14일 경향신문 만평. 김건희 의혹 등 대통령실의 문제가 현 여권의 위기 원인인데 여당 지도부나 친윤 의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현 상황을 풍자한 내용이다

14일 동아일보는 사설 <김기현 결국 사퇴, 이제 용산이 답할 차례>에서 “내부 총질 등을 이유로 전임 이준석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뒤 윤심(尹心)의 지원을 받아 당권을 거머쥔 김 대표의 사퇴로 용산 대통령실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며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을지, 공천 등 총선 준비를 어떻게 꾸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집권 1년7개월 만에 대표 2명이 중도 하차하게 된 상황의 근본 책임은 용산 대통령실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기현 대표보다는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윤석열 정부는 기로에 서 있다. ‘국정 힘 실어주기냐, 권력 견제냐’를 물을 때 민심은 대체로 35% 대 55% 정도의 응답을 내놓는다”며 “국민의힘 측이 참패한 2020년 총선 분위기가 지금 같았다”고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분위기라는 뜻이다. 

▲ 14일 동아일보 사설
▲ 14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당에는 희생과 혁신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꽃길’을 가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용산이 어떻게 바뀌는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이제 용산이 답할 차례”라고 했다. 

동아일보가 ‘윤석열 책임론’을 주장했다면 상대적으로 조선일보는 ‘김기현 책임론’에 방점을 찍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김기현 대표 사퇴는 시작일 뿐, 다 안 바뀌면 미래 없어>에서 “국민의힘이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은 것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지만, 지난 3월부터 당을 이끈 김 대표와 지도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고 했다. 윤 대통령 책임을 말하면서도 김 대표 비판에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여당의 기본 책무는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에 대한 민심의 동향이 어떤지를 파악하고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해 민심 반영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김 대표와 당 지도부는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가라앉고 있는데도 상황을 직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가 윤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바꿔 말하면 윤 대통령이 바뀌지 못하니 여당이라도 변하라는 요구다. 

강서구청장 보선 공천도 당 지도부 책임으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바로 사면시켜 다시 출마시키는 무리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며 “이 선거 참패로 출범한 혁신위가 이런 당 지도부·중진·친윤 핵심에게 물러나달라고 요구한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했다. 

▲ 14일 조선일보 1면
▲ 14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1면에서 김 대표 사퇴 소식을 전하며 “여당 위기 내 책임”이란 발언을 기사 제목으로 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을 방문한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마치 윤 대통령은 열심히 일하고 있고, 현재의 여당 위기는 김 대표 책임으로 보이는 지면 구성이다. 

정치면(3면)에서도 김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와 나란히 있는 사진을 실었다. 김 대표가 사퇴 전 이 전 대표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고, 타 매체에서는 지면에 김 대표 사진만 실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5월 김 대표와 이 전 대표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실었는데 이는 ‘반윤’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전 대표와 김 대표를 연결하는 효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조선일보의 기존 논조를 고려하면 국정 운영에 실패하고 있는 ‘윤석열 책임론’보다는 대통령과 여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반윤’ 정치인까지 만나는 ‘김기현 책임론’에 가까운 지면 배치다. 

▲ 14일 조선일보 정치면
▲ 14일 조선일보 정치면

한겨레는 김 대표 사퇴에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와 비슷하게 ‘윤석열 책임론’ 논조다. 한겨레는 사설 <김기현 사퇴, 국정기조·당정 변화 없이는 의미 없다>에서 “윤 대통령이 지명하다시피 한 김 대표가 물러났지만 여당의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속단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고, 수직적인 집권 여당과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는 한 단순 인물 교체로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다. 

▲ 12월11일 오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을 하였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 12월11일 오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을 하였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일부 신문은 김 대표 사퇴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與 김기현도 사퇴…민주당 구경만 할 때인가>에서 “여당은 주류세력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계기로 내년 총선까지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셈”이라며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친이재명계 최고위원들의 자기 혁신이나 희생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세계일보도 사설 <김기현은 사퇴했는데 이재명은 보고만 있을 건가>에서 “이 대표부터 기득권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여당과의 경쟁이 가능하다”며 “인천 계양을 출마 의사를 접고 불출마나 험지 출마 등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중진 등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14일 아시아투데이 사설
▲ 14일 아시아투데이 사설

한편 아시아투데이는 대놓고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를 바라는 사설을 내놨다. 아시아투데이는 이날 사설 제목을 <김기현 사퇴, 당 혁신과 총선승리로 이어지길>로 정했다. 김 대표 사퇴로 당 혁신 분위기가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정당 개혁 차원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특정 정당이 승리하길 바란다고 사설에서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아시아투데이는 “총선까지 시간이 촉박한데 누가 당을 이끌든지 의원들과 당원들이 개개인의 목소리를 줄이면서 당을 최대한 빨리 안정시키고, 단합하는 게 총선승리의 길일 것”이라며 사설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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