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의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았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결과가 나오고 혁신위원회의 험지출마 또는 불출마 희생 제안에도 거부하면서 대표직을 고수하던 김 대표는 하루 전날 원조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에 더이상 버티지 못했다. ‘친윤’의 지원에 과반득표를 과시하며 당 대표에 당선된지 9개월 여 만이다.

김기현 대표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9개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신(新)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진심을 다해 일했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소임을 내려놓게 되어 송구한 마음 뿐”이라며 “많은 분들께서 만류하셨지만,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총선승리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기에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 어떤 일의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고사성어)의 심정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 대표인 저의 몫이며,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오롯이 저의 몫”이라며 “더이상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성원 모두가 통합과 포용의 마음으로 자중자애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을 더 모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일 국회 본관 228호에서 마지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일 국회 본관 228호에서 마지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김 대표 사퇴 촉구에 앞장섰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기현 대표의 선당후사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며 “이제는 새로운 리더십을 조속히 구성해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당으로 혁신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준석 전 대표에 이어 선출된 당 대표가 임기를 못채우고 중도 하차했다는 점과 ‘용산 출장소’, ‘용산 2중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에 가장 협조하고도 떠밀리듯 물러나 토사구팽이 아니냐며 씁쓸해하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분석은 당내 일각에서도 나왔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사퇴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어차피 부족함이 많아 내려오는 게 맞지만...너무나 개운치 않다”며 “이준석 대표에 이어 김기현 대표까지... 심지어 3% 지지율을 대통령이 억지로 밀어서 만든 대표로, 온갖 수모를 겪으며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다해왔는데, 이젠 필요없으니 토사구팽이라, 정치는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비정함은 뭔가”라고 썼다.

이 전 의원은 일의 순서도 틀렸다는 점을 들어 “지도부와 윤핵관 등이 물러나는 건 이 사태의 근원인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한 다음”이라며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은 ‘대통령의 주권자를 무시한 국정운영’과 ‘처가 일가의 부패의혹’에 있”다고 해석했다. 이 전 의원은 “지도부도 그렇게 대통령을 무리하게 옹위하고 지금까지 견제하지 못한데 대해 분명한 사과와 함께 물러나야 한다”며 “이유와 명분이 분명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아무리 여당이지만 정당의 독립성은 어디로 가고 당 지도부를 매번 대통령이 갈아치우나”라며 “대통령이 대단한 것인가? 아니, 무서운 것인가? 이래서야 어찌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유튜브 방송. 사진=이언주TV 영상 갈무리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의 유튜브 방송. 사진=이언주TV 영상 갈무리

야당도 대통령 책임을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준석 쫓아내고, 김기현 쫓아내고...국민의힘 당 대표 킬러는 도대체 누구냐”고 썼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저녁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을 찾아 김 대표의 사퇴에 “영남에 텃밭을 둔 국민의힘 지도부나 중진의 자리는 사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바지 대표로 뽑힌 김기현 대표는 용산의 지시에 충실했을 뿐,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모든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아니냐”며 “자신을 당대표로 낙점해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만을 쫓다가 결국 팽 당하는 김기현 대표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 밝혔다.

권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을 용산 2중대도 아닌 5중대로 만든 것은 바로 김기현 대표와 윤핵관으로 불리는 분들이었다”며 “누구 한사람 용산을 향해 바른 소리 하지 못한 국민의힘이 자초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와 김기현 대표의 사퇴 뒤에 윤석열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다며 김기현 대표의 사퇴는 용산 직할체제로 가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 보인다고 의심했다. 그는 이어 향후 구성될 국민의힘 지도부를 두고 “윤석열 측근 검사들이 주축이 된 검찰당일 것”이라며 “오늘 김기현 대표의 사퇴는 국민의힘의 종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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