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PD를 부당해고한 책임자의 위증 혐의 재판에서 CJB청주방송 보도국 간부가 이재학 PD는 동료들에게 ‘PD’로 불렸으며 실제 연출을 맡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해당 책임자에 대해 밝힌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정우혁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이 PD의 직속 상관이었던 하아무개 청주방송 전 기획제작국장의 위증 혐의 2차 공판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김종기 청주방송 보도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 전 국장이 받는 혐의 가운데 하나는 이 PD의 호칭에 대한 부정이다. 검찰은 2018년 이 PD가 부당해고당한 뒤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하 당시 국장이 이 PD를 ‘PD’로 불렀음에도 이를 부인하고 ‘이재학씨’로 불렀다고 증언한 것이 기억에 반한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했다.

▲청주지방법원. 사진=미디어온오늘
▲청주지방법원. 사진=미디어오늘

고 이 PD는 2020년 2월4일 숨졌다. 청주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1심)에서 패소한 지 2주 뒤다. 2004년부터 14년째 청주방송에서 일한 이 PD는 2018년 기획제작국 회의에서 하 당시 국장에 처음 스태프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뒤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이 PD는 유서에 “억울해 미치겠다. 왜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적었다. 하 전 국장은 이 PD가 제기한 이 소송에서 증언한 내용 중 5가지에 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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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 국장은 이날 재판에서 “사내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재학 PD를 PD라고 칭했고, 그리고 실제로 방송에 (엔딩)스크롤이라고 해서 자막에 ‘연출 이재학’이라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하 전 국장 변호인이 “이재학 PD로 (호칭을) 했다는 것은 예우 차원이었나”라고 재차 묻자 김 국장은 “프로그램 작가나 프리랜서 PD, 그리고 같이 일하는 젊은층에서는 다 PD라고 불렀다. 실제 프로그램을 연출하니까”라고 말했다. 하 전 국장이 이 PD를 ‘PD’로 부르는 것을 보았느냐는 질문엔 “기억 안 난다”고 했다.

▲이재학 PD가 연출한 ‘아름다운 충북’ 엔딩스크롤.
▲이재학 PD가 연출한 ‘아름다운 충북’ 엔딩스크롤.

김 국장은 이 PD가 ‘아름다운 충북’과 ‘쇼! 뮤직파워’의 연출을 맡은 사실도 증언했다. 이 PD의 호칭과 역할은 앞서 청주지법의 이재학 PD 근로자지위소송 항소심 판결과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PD 사망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언론보도 등으로 거듭 확인됐다. 그러나 이를 부인했던 하 전 국장에 위증 혐의가 적용되며 다시 증언대에 올랐다.

김 국장은 ‘아름다운 충북’과 ‘쇼! 뮤직파워’를 두고 “스크롤에 ‘이재학 PD 연출’이라고 자막이 나가는 프로그램은 (그 연출자가) 대부분의 일을 한 것”이라며 “대부분의 일을 안 하는데 스크롤에 PD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고 이재학 PD가 수년 간 연출했던 ‘아름다운 충북’ 구성안 일부. 연출이 이재학으로 표기돼 있다.
▲고 이재학 PD가 수년 간 연출했던 ‘아름다운 충북’ 구성안 일부. 연출이 이재학으로 표기돼 있다.

하 전 국장 측은 ‘아름다운 충북’ 제작비 청구서에 적힌 ‘연출자’가 엔딩스크롤과 다르다는 주장도 내놨지만 김 국장이 반박했다. 하 전 국장 측 변호인은 “제작비 청구서에 이재학 조연출 40만원, 그 밑에 김00 조연출 40만원 이렇게 돼 있다. 출연료가 40만원으로 같다는 건 이상한가, 어떤가?”라고 물었다.

김 국장은 “(만약 이 PD가 조연출이라면)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러면 스크롤에서 ‘PD 연출 이재학’을 ‘조연출’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속한 보도국에도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담당 PD가 조연출란에 이름을 적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김 국장은 “저희(보도국)는 제작팀장이 ‘담당 PD’라고 결재를 올린다. 그런데 실제 제작하는 사람들은 (공문에서) AD로 적히는, 그 밑에 있는 기자들이나 PD들인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진상조사 관여 안해” 사실과 다른 주장도

이날 재판에서 하 전 국장 측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 전 국장 변호인은 정 판사에게 “진상조사위원회에는 피고인(하 전 국장)이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는 하 전 국장 면담조사를 포함해 진행됐다.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진상조사위원이 하 전 국장을 만나 조사한 사실을 수차례 밝혔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하아무개 전 기획제작국장 면담조사에 바탕한 내용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 89쪽.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하아무개 전 기획제작국장 면담조사에 바탕한 내용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 89쪽.

하 전 국장 측은 고 이재학 PD가 숨진 뒤 승소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 재판이 ‘청주방송의 협조로 진행됐다’고도 주장했는데 사실과 달랐다. 항소심은 청주방송 측이 합의를 파기하면서 이뤄졌다. 청주방송은 2021년 7월 언론노조·유족·시민사회대책위 대표와 이 PD의 명예회복을 둘러싼 각종 이행 사항을 4자 합의했다. 4자는 이 PD 유족이 수계했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강제조정으로 마무리하기로 하고 문구도 사전조정해 합의했다. 그러나 청주방송이 그해 9월부터 돌연 합의 이행을 거부하면서 이 PD 유족은 이듬해 2월 항소심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청주지법 2-2민사부는 2021년 5월 이 PD가 근로기준법상 청주방송의 노동자이며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판결했다. 또 청주방송이 이 PD가 해고된 뒤 숨지기 전까지의 임금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모든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고 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하 전 국장 측 변호인이 김 국장의 답변 중간에 끊거나 유도신문으로 의견을 묻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 판사가 수차례 제지하기도 했다.

한편 김 국장은 이날 재판에서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 국장은 검찰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질의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나온 결론에 이의제기해 저와 황아무개 위원(사측 위원 2인)은 사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청주방송, 언론노조, 이재학 PD 유족, 시민사회대책위(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등 4자 협의체 대표는 2020년 7월23일 오전 청주방송에서 조인식을 열고 이 사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이행안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주방송, 언론노조, 이재학 PD 유족, 시민사회대책위(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등 4자 협의체 대표는 2020년 7월23일 오전 청주방송에서 조인식을 열고 이 사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이행안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당초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이 PD의 유족·시민사회대책위·언론노조 등 4자가 위원 구성부터 향후 이행점검까지 합의한 결과로 진행됐다. 진상조사 보고서 확정에 앞서 사측 위원들이 돌연 반발하며 퇴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조위는 2020년 6월1일 진상조사 보고서 전체를 최종 확정했고, 4자는 조사 결과에 따른 이행안에 합의해 해마다 이행점검 보고 자리가 열리고 있다.

외부 조사위원으로 진조위에 참여한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공식 조사인 데다 청주방송 측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이행요구안에 합의까지 해 이행점검하는 현 시점에서 조사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3차 공판에서는 이 PD와 함께 일한 동료들을 포함한 증인 6명에 대한 신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공판은 2월7일 오후 2시 청주지법 423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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