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자신의 급여를 깎고 후배 비정규직 스태프 급여에 추가 편성하고, 이들의 급여 인상을 요구했다가 해고당했다는 복수 제작진 증언이 나왔다. 청주방송 전·현 스태프 6명은 ‘이재학 PD가 프로그램을 총괄 연출했고, 그를 해고한 책임자도 그를 PD로 불렀다’고 증언했다. 이 PD 부당해고 책임자의 위증 혐의 재판 증인신문에서다.

청주지방법원 형사5단독 정우혁 부장판사는 지난 7일 하아무개 청주방송 전 기획제작국장의 위증 혐의 3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재학 PD와 함께 일한 조연출·카메라감독·방송작가·PD 등 6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하 전 국장은 이재학 PD의 직속 상관으로, 그에게 해고 통보한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재학 PD의 유족과 동료, 대리인이 재판을 방청했다.

▲청주지방법원 전경. 사진=김예리 기자
▲청주지방법원 전경. 사진=김예리 기자

하 당시 국장은 이 PD가 해고 당한 뒤 2018년 9월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재판에 사측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로 지난해 7월 기소됐다. 하 전 국장은 이 PD가 자발적으로 퇴사했으며, 기획제작국 회의에 참석해 스태프 인건비 개선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에 반해 허위 증언한 혐의를 받는다.

하 전 국장은 또 이 PD가 PD로 일한 사실을 알고도 △이재학은 PD가 아닌 ‘VJ’다 △이재학이 아닌 자신이 <아름다운충북>과 <쇼!뮤직파워> 프로그램 PD였다 △이재학이 <아름다운충북>을 연출했는지를 모른다 △이재학을 ‘PD’라 부른 적 없다 등 허위 진술한 혐의도 받는다. 이재학 PD는 2020년 1월 이 소송의 패소 판결을 받았고, 2주 뒤 “왜 모두 거짓을 말하나”라는 유서를 쓰고 숨졌다. 이재학 PD는 2004년 청주방송에 입사해 2010년부터 9년 간 연출 PD를 맡았으나 한 차례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무늬만 프리랜서’였다.

이재학 PD가 2018년 4월 해고 당시 연출하던 <아름다운 충북> 조연출로 일한 A씨가 증언석에 섰다. 피고인 하아무개 국장의 변호인은 당시 제작비 청구서에 이재학 PD와 A씨 인건비로 각각 40만원이 적힌 것을 가리키며 “이재학은 총괄(PD)이고 한 사람은 조연출인데 급여는 왜(같나)?”며 “받아서 (이 PD에게) 상납했는가”라고 물었다. 이재학 PD의 PD 역할을 부정했던 하 전 국장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A씨는 “아니요. 오히려 급여 인상이 안 되니 자기 것이라도 깎아 작가랑 조연출 인건비를 올려준다, 자기 금액을 조연출이랑 똑같이 가져가겠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조연출이 얼마나 받을지 이런 거는 이재학 PD가 (책정)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PD가) 제일 윗사람이고 기대는 PD이기에 책임감 갖고 선뜻 먼저 나서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도 증언했다.

기획제작국 정규직 PD였던 B씨도 증인신문에서 “이씨가 본인 인건비를 후배 작가나 조연출에게 희생하며 주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PD는 기획제작국 회의에 참석해 하 당시 국장에게 동료 스태프 급여 인상을 요구한 뒤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엔딩크레딧 고 이재학 PD 4주기 추모영상 갈무리
▲엔딩크레딧 고 이재학 PD 4주기 추모영상 갈무리

“하 국장, 회의실에 앉아있었다…정확히 기억한다” 혐의 뒷받침

이재학 PD 해고 당시 회의에 배석한 직원 2명 모두 이 PD가 회의에 참석해 인건비 증액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이 PD 프로그램을 조연출하고 해고 당시 정직원이던 C씨는 “하 국장이 회의실에 앉아있었다”며 “제가 정확히 기억한다”고 했다. 정규직 PD D씨도 “(이 PD가) 증액을 상의하려고 제게 (회의) 분위기 좋을 때 알려달라고 했다. 제가 한 번 확인해서 ‘회의 들어와도 되겠다’고 연락했다”고 했다.

재판에 출석한 스태프들은 모두 이 PD가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프로그램 <박달가요제>, <제천 국제한방바이오>, <아름다운 충북>, <쇼! 뮤직파워>를 총괄 연출했다고 증언했다. 하 전 국장이 이 PD의 연출 현장에 방문하거나 그의 보고를 결재했다고 했다. 하 전 국장이 이 PD의 연출 사실을 알고도 증언대에서 부인했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진술이다. <쇼! 뮤직파워> <아름다운 충북> <박달가요제> <한방바이오>는 모두 하 기획제작국장 부임 당시 기획제작국 프로그램이다.

청주방송 작가로 이 PD와 <박달가요제> 등 프로그램 작업을 했던 E씨는 하 전 국장이 이 PD의 연출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진술했다. E씨는 “우선 회사가 작아 서로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지 다 알 수밖에 없다. 또 제가 굿모닝충북세종(프로그램) 중간 박달가요제 10분 홍보영상 코너를 할 때 담당 팀장이 하아무개씨였고, 취재하려면 이재학 PD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 있어 모를 수가 없다”고 했다.

B씨는 “박달가요제는 다 이재학 PD만 (연출)했다”고 했다. D씨도 “(이 PD가 연출하던) 박달가요제 현장에 하 국장이 왔으니 그 날은 (연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 PD는 2011~2017년 매년 열린 <박달가요제> 연출을 도맡았다.

“하 전 국장도  ‘PD’라고 했다” “연출 사실 모를 리 없어”

현장 스태프들은 하 국장이 이재학 PD를 ‘PD’라 불렀다고도 증언했다. 카메라감독 C씨는 이 PD가 <한방바이오> 개막식 방송을 연출할 당시 하 국장이 이 PD가 탄 중계차량에 탑승해 “이 PD! 왜 사람 없는 그림이 자꾸 나가냐”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C씨는 하 전 국장이 다른 자리에서도 그를 ‘이 PD’ 또는 ‘재학이’라고 불렀다며 “(하 전 국장이 이 PD의 보고에) 결재를 하고, 돈이 어떻게 나가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A씨도 “(하 전 국장이) 공식 석상이나 시군 관계자들이 와서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소개하면서 이재학 PD라고 했다”고 했다. 작가 E씨도 “사무실 내에서 부를 때 (하 전 국장이) 항상 이재학 PD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하 전 국장의 변호인이 청주방송 결재란엔 정규직만 담당 PD로 적히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B씨는 “결재권란에 없는데 이재학 PD가 담당자로 공문을 올리고 처리할 정도로 진행했다”며 “보조금 사업과 현장 진행도 이재학 PD가 했다. 저희는 다 PD라 불렀고 PD님 지시를 따라 일했다”고 말했다. A씨도 “(<아름다운 충북> 촬영 당시) 하 전 국장에게 제가 직접 지시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작가 F씨도 검사의 “<아름다운 충북>과 <쇼! 뮤직파워> <박달가요제>에서 PD 직책으로 업무 실질적으로 수행한 사람이 이재학 말고 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없었다”고 했다. F 작가는 “하는 일을 봤을 때 이재학 PD가 총괄 PD다. 시도 관계자와 협약이 필요한 것도 이재학 PD와 저만 동행해 진행했고, 모든 업무를 둘이서 했다”고 했다.

“경위서에 PD 호칭, 하 전 국장이 빨간펜으로 지워”

증인신문에선 하 전 국장이 이재학 PD의 소송 과정에서 경위서 조작에 관여한 의혹도 재차 언급됐다. A씨는 “(소송에 진술서를 써준)그 사건으로 인해 하 전 국장이 경위서를 쓰라고 지시해 한 번 작성해 제출했다”며 “(하 전 국장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빨간펜으로 그은 부분을 직접 수정하라고 얘기하고,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고 했다. 2020년 청주방송-언론노조-유족-시민대책위 등 4자합의로 꾸린 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하 전 국장은 이 PD의 근무실태를 밝힌 진술서를 써 준 스태프에 경위서 작성을 지시했고, 해당 경위서에서 ‘PD’라 적은 부분을 빨간 펜으로 첨삭해 스태프들이 다시 내도록 했다.

▲청주지방법원. 사진=김예리 기자
▲청주지방법원. 사진=김예리 기자

동료들 “죽은 뒤 무슨 의미…뒤늦게라도 위증 밝혀지길”

F 작가는 재판을 마친 뒤 미디어오늘에 하 전 국장이 이재학 PD의 역할과 호칭을 부인하는 데에 심경을 밝혔다. F씨는 “어이가 없었다”며 “(이 PD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죄를 따지는 일이 의미가 있나라는 허탈함을 느낀다. 이제라도 뒤늦게라도 진실이 제자리를 잡고, 위증을 한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E 작가도 “이 PD가 PD로 일한 사실을 그렇게까지 모르쇠하고 싶은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PD라고 불렀고, 호칭을 부인한다고 해서 그가 PD가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재판을 방청한 이 PD의 동생 이대로씨는 “있는 사실을 밝히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힘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당시 형은 그가 눈앞에서 위증하는 것을 보면서 매번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라며 “법정에서조차 거짓말을 덮으려 애써 모른 척하는 하아무개씨를 보면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함을 다시 느꼈다”고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22일 청주지법 423호 법정에서 열린다.

한편 하아무개 국장은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로 2020년 10월 징계 해고됐으나 불복 소송전에 나선 끝에 지난해 12월19일 복직했다. 대전고등법원은 하 전 국장의 부당해고를 다투는 항소심에서 하 전 국장 손을 들어줬고, 청주방송은 상고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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