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방송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9일 방송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1987년 방송법 제정 이후 ‘공영방송 정치독립법’이 탄생하기까지 36년이 걸렸으나, 법이 무력화되는 데는 불과 22일이 걸렸다. 2008년 이명박정부를 기점으로 반복되어온 방송장악 논란과 노사갈등 속 언론계 구성원 대다수가 염원했던 ‘방송 독립’의 꿈이 ‘거부권’에 가로막혔다.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하 방송3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같은 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탄핵 의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방송3법 거부권 행사와 이동관 위원장 사퇴는 윤석열정부의 ‘공백 없는 언론장악 의지 표명’이었다는 분석이다. 

방송3법의 골격이 된 법안은 지난해 11월18일 시민 5만 명이 직접 본인 인증을 통해 진행한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률개정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됐다. 해당 법안이 특정 정당이나 국회의원 발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파를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약 1년 만에 법안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 핵심은 거대양당의 ‘정치적 후견주의’에 의해 움직이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방송3법에 따르면 공영방송 이사는 21명으로 늘어나고 이사 추천권은 국회가 5명, 시청자위원회가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가 6명, 직능단체가 6명 갖는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은 100명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재적 이사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공영방송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개정 목적이라고 하지만, 내용은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특정 이해관계나 편향적 단체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됨으로써 공정성·공익성이 훼손되고, 견제와 감독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해 이사회의 기능이 형해화할 위험이 매우 높다”고 했다. ‘용산’의 뜻이었다.

▲공영방송3사.
▲공영방송3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동​은 1일 성명을 내고 “방송법 거부권 행사는 방송장악을 멈추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들은 “공영방송을 권력이 아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의 첫걸음이 방송3법 개정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내동댕이친 것”이라고 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같은 날 “방송 농단 법을 유지하고 싶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태는 2017년 대선 당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으나 5년 내내 지키지 않았던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 

거대양당의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려 했던 언론계와 언론 시민사회의 입법 노력은 마침표를 찍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해도 대통령은 여당이 퇴장하는 법안에 대해선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여야 합의가 가능한 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은 적 없고 앞으로도 협상안 자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 대선 국면이 오면 거대양당 후보들은 또다시 ‘공영방송 정치 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겠냐는 자조 섞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현실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소위 ‘이준석 신당’이 원내 의석을 상당수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수 야권이 영향력을 갖고, 여당이 100석 이하로 추락해야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200석 이상을 확보하게 되면서 방송법 개정안 통과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선 이번 방송3법과는 전혀 다른 모델이 합의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들의 임기가 내년 8월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방송법 재논의 후 입법까지 8월 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방송3법 거부권 행사를 가리켜 “윤석열 친위 방송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재입법 논의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 재입법 안은 다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나아가 “현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에서 독임제 형태로 망가졌다. 그들이 임명하는 공영방송 사장은 더 이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언론 운동진영은 ‘윤석열 언론장악 반대’를 넘어 방통위 체제 전면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국가검열제도로 악용되는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체제도 보도공정성 심의를 폐지하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공영방송 사장 선임방식에 집중했던 ‘방송 독립’의 꿈을 제대로 확장할 시점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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