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사장, 그는 중년의 목수다. 밀린 돈을 달라는 나이 든 현장 직원에게 눈을 부라리며 쌍욕 한번 날려주고, 동료의 눈치에도 굴하지 않고 적당히 싼 자재로 대략 마감해 버리는 그저 그런 인테리어 업자다. 이따금 공사를 의뢰한 사람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여자 선생님인 때에는 지분거리는 문자도 보내 본다. “에효. 이번 공사는 유난히 아쉽네요”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다. 나이도, 경력도, 인성도 애매한데 연애의 감각마저 별로 없는 인생이다.

지난 8일 개봉한 <괴인>은 선뜻 마음을 내어주기 어려워 보이는 주인공 이야기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머무는 모든 등장인물로 시야를 확장하는 작품이다. 박 사장이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 부부, 박 사장 차를 고장 낸 범인까지 모든 출연자는 대체로 평범한 군상처럼 보이지만 뜯어보면 박 사장만큼이나 괴상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신예 이정홍 감독은 그 모습을 심도 있게 묘사하며 전에 본 적 없는 괴이한 리듬과 관점의 드라마를 선보인다.

▲ 영화 ‘괴인’ 포스터.
▲ 영화 ‘괴인’ 포스터.

박 사장(박기홍)은 어느 날 자동차 천장이 크게 찌그러져 있는 걸 발견한다.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차 위로 풀썩 뛰어내리는 하나의 실루엣이 포착된다. 때마침 돈은 많고 일은 없어 한가하기 그지없던 집주인 남자(안주민)가 나타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범인을 찾으러 자기와 함께 현장에 가 보자고.

그렇게 발견한 범인은 작은 체구의 여학생이다. 그는 머물 곳이 없어 한밤 중 피아노학원에 몰래 들어가 잠을 청하다가 인테리어 공사로 들이닥친 박 사장을 보고 놀라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수리비를 내주지 못하는 사정이 뻔해 보이자, 집주인 남자는 ‘우리가 사는 집으로 불러 밥이나 사게 하자’고 박 사장을 부추긴다. 그 집에는 자신의 아내(전길)가 함께 살고 있음에도 사전 양해는 구하지 않은 채로.

▲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 ‘괴인’ 스틸컷.

이쯤 되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괴인>이라는 영화가 조성하는 오묘한 긴장감에 슬며시 빠져들게 된다. 법으로 처벌할 만큼의 명백한 악행을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어딘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데다가 지켜보고 있으면 기분이 영 불쾌해지는 행동을 속속 저지르는 까닭이다. 다음 장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오묘한 분위기의 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묘하기 그지없는 <괴인>의 특색을 한층 강화하는 건 전문적으로 연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출연진들의 연기다. 박 사장은 실제 목수이자 감독의 30년지기 친구고, 집주인 남자는 본업이 이탈리아 피자를 만드는 셰프다. 심지어 집주인 여자는 아파트 벽에 붙은 배우 오디션 공고문을 보고 연락해 온 동네 주민이라고 한다. 능숙하게 연기 기술을 갈고닦은 전문 배우들 특유의 판에 박힌 느낌 없는 연기를 선보이는 덕에 그 화학작용은 전에 본 적 없는 날 것 같은 신선함을 품고 있다.

<괴인>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들의 연기 장면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조합·편집해 관객이 기어코 ‘어떤 생각’을 품게끔 유도하는 이정홍 감독의 감각일 것이다. 감독은 우리 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여럿 출연시키는 동시에, 그들 얼굴에 누구라도 선뜻 좋아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색깔을 입혀 관객 감정에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집주인의 아내가 어느 밤 잠든 남편을 두고 술 두 병을 든 채로 세입자 박 사장의 방문을 두드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때 감독의 의중은 한층 도드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곁에 머무는 사람의 속내를 정말 잘 알고 있느냐고.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괴인>같은 면모를 목격한 적은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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