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기사보다 그 아래 달린 댓글을 보는 게 더 흥미롭다는 생각을 한 적 있는가. 똑같은 정치인을 다룬 기사여도 이 포털사이트에서는 지지 댓글이, 저 커뮤니티에서는 비판 댓글이 쇄도한다. 동일한 연예인 이야기여도 이 카페에선 옹호 입장이, 저 SNS에선 비난 입장이 우위를 점한다. 모두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니 동시다발적으로 양분되는 인터넷 여론이 꼭 이상한 일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자유분방한 댓글 생태계의 특성이 누군가에겐 어떤 ‘가능성’으로 읽힐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 여론이란 게 어차피 정해진 답이 없는 거라면, 티 안
※ 주의 : 영화 ‘로봇 드림’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저녁은 전자레인지에 데운 편의점 도시락, 잠들기 전까지 하는 일은 홀로 TV 보기, 별다른 재미도 없이 소란스럽기만 한 화면을 끄지 못하는 이유라면…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내 모습이 텅 빈 화면에 비친 어떤 날 그 청승맞음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어서겠지. 한때를 불태웠던 연인을 그리워하거나, 다시금 심장을 뛰게 하는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때늦은 욕심을 부리자는 게 아니다. 그저 하루 중 몇 시간쯤, 아니 일주일 중 며칠쯤 함께 수다 떨고 운동하고 맥주 마시며 즐거운 시
※주의: ‘파묘’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장재현 감독의 데뷔작 ‘검은 사제들’(2015)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시작된 오컬트 장르가 국내 작품에 제대로 접목된 사례가 거의 없었던 만큼 장르마니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강동원이라는 스타 배우에게 사제복을 입히고 구마 의식을 치르게 하면서 대중적인 볼거리를 확보했고, 훗날 ‘기생충’에 출연하게 되는 박소담이 신인 배우로 등장해 섬뜩할 만큼 극적인 빙의 연기를 선보이는 등 화제에 오르며 540만 관객을 돌파했다.‘검은사제들’로 업계에 확실한 인상을 각인한 장
‘건국전쟁’의 흥행은 그야말로 이변이다. 일반적인 홍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통상 극장 개봉작은 별도의 영화전문 홍보사를 고용한다. 이 홍보사가 각종 이야깃거리를 보기좋게 정리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기사 노출을 유도한다. ‘건국전쟁’은 이런 역할을 전담하는 별도의 홍보사 없이 김덕영 감독이 SNS로 직접 영화를 알렸고, 그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스크린 수를 늘린 경우다. 한동훈 장관 등 유력 정치인이 관람하면서 기세에 화력이 붙었다. 영화계를 넘어 언론과 정계까지 작품을
“우리나라가 발전해야 되겠다는 걸 느낌다. 우리 원수님께서는 정말 그렇지 않은데 우리 사람들이 머리 나쁜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됐는가…” 목숨 걸고 탈북한 노 씨 할머니가 죽을 고비를 십 수 번도 더 넘기며 백두산 중국 경계에서 빠져나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울먹이며 전하는 말이다. 그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베트남 어디에서든 콸콸 흘러나오는 조촐한 물줄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수도시설이 없어 사위가 길어다 주는 물에 의존하며 생활했던 북한에서의 삶이 얼마나 낙후된 것
1주에 3달러, 우리 돈 약 4000원. 가격만 보고 소위 ‘개잡주’ 취급했던 주식이 하루 만에 100배, 1년 사이 1600배까지 폭등하는 유례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2021년 미국, 게임CD 판매업장을 운영하던 게임스탑(Gamestop)이라는 회사의 주가가 말도 못 하게 뛰어오른 거다. 더 놀라운 사실, 이 폭등을 주도한 건 기관도 세력도 아닌 바로 개미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모든 걸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게임도 더는 CD를 사지 않고 내려받게 될 거라고 짐작하던 어느 시점. 한 헤지펀드의 창립자 ‘게이브 플롯
“나 다 안다.” 주인공 TJ(데이브 터너)가 친구 찰리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러고는 ‘뭘 안다’는 구체적인 말도 없이 그저 화난 목소리로 노려보며 “나 다 안다”고만 한다. 그 말을 들은 찰리(트레버 폭스)는 사실 이미 크게 뜨끔했다. 아닌 척 발뺌하려 팔짱을 단단히 끼고 방어적인 자세로 서 있어 보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어젯밤 TJ가 40년간 운영해 온 펍 ‘올드 오크’에 큰 물난리가 났다. 누군가 고의로 가게 배관에 상처를 냈고, 누전으로 전기 설비까지 망가져 손보는 데만 몇억이 들게 된 상황. 놀랍게도 그 사달을 낸
그는 한 여자와 결혼한 남자고, 아이 셋을 둔 아버지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보조 지휘자였던 20대의 그는 1943년 공연 당일, 심한 감기로 자리를 비운 주 지휘자 대신 훌륭한 지휘를 선보이며 성공적인 카네기홀 데뷔를 맛본다. 젊은 나이에 크게 이름을 떨친 그의 삶에는 분명 음악을 향한 낭만적인 열정 있었다. 동시에 그 열정을 넘어서는 지독한 욕망도 잔뜩 품었다. 아내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동성의 연인들과도 지속적인 쾌락을 쫓았다.내년 1월 열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우리 관객의 일본 애니메이션 사랑은 나 흥행으로 익히 알려졌지만, 일본 실사영화를 대하는 온도는 정반대로 냉랭할 지경이다. ‘100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는 20년도 더 전에 개봉한 1999년 개봉한 (1995)나 2003년 개봉한 (2002) 정도다. 지난해 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원작 소설과 10대 팬덤의 힘,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 등이 결합한 예외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분위기
12·12 사태.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9년, 40대 후반의 군인 전두환이 쿠데타로 국가 실권을 장악한 날이다. 무려 18년을 장기 집권한 절대권력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당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권력의 빈자리를 꿰찬 것이다. 명목상 최규하 전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 경계한 건 힘 없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의 야욕을 꿰뚫고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그에게 임명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었다.개봉 첫 주에 189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은
박 사장, 그는 중년의 목수다. 밀린 돈을 달라는 나이 든 현장 직원에게 눈을 부라리며 쌍욕 한번 날려주고, 동료의 눈치에도 굴하지 않고 적당히 싼 자재로 대략 마감해 버리는 그저 그런 인테리어 업자다. 이따금 공사를 의뢰한 사람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여자 선생님인 때에는 지분거리는 문자도 보내 본다. “에효. 이번 공사는 유난히 아쉽네요”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다. 나이도, 경력도, 인성도 애매한데 연애의 감각마저 별로 없는 인생이다.지난 8일 개봉한 은 선뜻 마음을 내어주기 어려워 보이는 주인공 이야기로 시작해, 자연
지난달 25일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난해한 작품이라는 혹평이 이어진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 통상 그렇듯 이번에도 이야기 개연성보다는 정서적인 감흥을 극대화하는 환상적인 모험에 방점을 뒀는데, 전하려는 말이 뜬구름 잡듯 추상적인 데다가 그 전개가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대목이 있어 관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30년대 일본,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유복하게 자라온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큰 화재로 어머니를 잃어 슬픈 날을 보내고 있다. 이모 ‘나츠코’는 아버지와 재혼해 동생을 임신
미국 FBI가 뉴욕 맨해튼의 유명 비디오 가게에 들이닥친다. 요주의 코너는 카운터 곁에 위치한 ’해적판‘ 칸!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은 자루에 쓸어 담듯 희귀 비디오테이프를 수거한다. 일개 비디오 가게에서 일어났다기엔 규모가 남다른 사건이다.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이건 한때 미국 영화광들의 애정을 독차지했던 80~90년대 미국 비디오 가게 ‘킴스 비디오’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는 바로 그곳의 역사를 회고한다. 당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희귀 영화를 대여해 주며 영화광들의 성
※ 영화 ‘거미집’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상투적인 사랑 얘기나 찍는 그저 그런 영화감독이라는 평판에 눈에 띄게 자존감을 잃어가던 김감독(송강호)은 이번만큼은 결단코 걸작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한다. 조건은 하나, 이미 끝마친 작품의 결말부를 다시 찍는 것! 마무리만 바꾸면 엄청난 작품이 완성될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제작자(장영남)의 단호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케줄 바쁜 배우들을 몰래 불러 모으기에 이른다. 그러나 콧대 높은 배우들은 갑자기 바뀐 난해한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투덜대고, 사전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바
※ 영화 ‘잠’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누가 예상했을까.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 영화가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3’, 김혜수·염정아 주연의 ‘밀수’에 이어 신인 유재선 감독이 연출한 데뷔작 ‘잠’으로 이어질 거라고. 개봉 11일째 82만 명을 넘어서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는 소실을 알린 영화는 100만 관객까지 돌파했다. 해묵은 위기설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계에 찾아온, 기분 좋은 이변이다.‘잠’의 흥행에는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요소가 있다. 먼저 50억 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상대적으로 착한 제작비다
‘빠앙!!!’ 마트에서 차를 빼려고 후진하는데 고막을 쨀 것 같은 거나한 경적 소리가 귀를 때린다. ‘뒤에 차가 있으니 조심하시오’ 정도의 경고성 ‘빵’이 아니라, ‘뒤도 안 살피고 운전하는 이 거지 같은 자식아!’ 힐난하는 ‘빠앙!!!’임에 분명하다. 적당히를 모르는 도발에 인상을 팍 쓰고 사이드미러를 살핀다. 얼씨구, 선팅 짙게 한 벤츠 SUV? 돈 좀 있다 이거지? 어떤 재수 없는 놈인지 안 봐도 비디오구먼! 남자는 분노의 풀악셀을 밟는다. 내 인생 지금 참 개 같거든, 너도 맛 좀 봐.보복성 난폭운전으로 시작해 악다구니와 저
※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기대를 품고 관람한 ‘오펜하이머’가 좀 아쉬웠던 입장이라면,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오펜하이머’는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작품과는 장르가 전혀 다르다. ‘메멘토’(2001),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 등 감독의 대표작은 시공간을 왜곡하고 뒤트는 콘셉트를 주재료 삼아 시각적 볼거리를 극대화한 장르성 짙은 영화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개발한 과학자의 성취와 고뇌에 집중하는 전기 영화다. 책으로 비교하
올여름에도, 이변 없이 4편의 한국영화 대작이 개봉했다. 영화계에서는 통상 8월 첫 주를 전후로 매출액이 최고점을 찍는다고 봐 왔다. 7월26일 개봉한 ‘밀수’, 8월2일 개봉한 ‘더 문’과 ‘비공식 작전’, 8월9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것도 그래서다. 1주일 간격으로 빽빽하게 모여서 파이를 다 같이 나눠 먹을지언정 200~300억 원 대의 큰 제작비를 들인 작품의 회수 가능성을 고려하면 어찌 됐든 ‘큰 시장’에 들어오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이런 판단이 점차 ‘낡은 공식’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고등학생이던 시절, 학기 초마다 주민등록등본을 의무 제출하곤 했었다. 학교가 학생의 인적 사항이나 전학•입학 정보 등을 파악한다는 이유였는데 대다수 교사들은 편의에 따라 “각 번호 1번 대 서류 걷어와!” 하기 일쑤였다. 학급번호 1번, 11번, 21번, 31번 친구들이 본의 아니게 한부모가정 같은 또래 친구들의 가정사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만이 유일하게 이 서류를 ‘직접’ 걷으러 다니셨다. 민감한 가정사를 지닌 학생들을 위한 남다른 배려는 다 큰 어른이 된 지금껏 기억에 남아있다.
※ 주의 : 영화 ‘좋.댓.구’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인터뷰하면서 제일 좋았던 영화배우가 누구예요?”영화기자 생활을 한 뒤 자주 받는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고심하고, 대부분 말을 아끼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배우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끽 해봐야 한두 시간, 개인사를 흉허물없이 터놓은 자리도 아니고 작품이라는 명확한 소재를 두고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만남일 진데 ‘그 사람은 이렇더라’ 류의 평가 자체가 조심스러워서다.그럴 땐 요령껏 객관적인 사실관계 몇 가지를 전하곤 한다. 예를 들면 봉준호 감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