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했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 전 대표의 언행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며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이 전 대표 특유의 조롱 섞인 태도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이 전 대표가 인 위원장을 비롯해 입장이 다른 정치인을 ‘환자’에 비유하거나 인 위원장이 최근 이 전 대표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나기 힘들어 그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고 발언한 것이 더 차별에 가까워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부산에서 이언주 전 의원과 토크콘서트를 열었는데 인 위원장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여기서 인 위원장을 ‘Mr. Linton’(린튼 씨)라고 부르며 영어로 “당신의 방문을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환자냐, 의사 자격으로 온 거냐,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 가서 그와 이야기하라.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친윤계 인사인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채널A에서 “(미국이었으면) 인종차별 스캔들이 퍼지고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했고, 나종호 예일대 정신과 교수도 페이스북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말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이라며 “이준석이 인 위원장에게 Mr. Linton이라고 하며 영어로 응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의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맥락은 달랐지만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 전 대표의 말이 마치 ‘당신은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던 건 이 전 대표의 지극히 인종차별적 태도 때문”이라며 “이견이 있고 비판적일지언정 그것이 인종차별적 태도를 합리화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 MBC뉴스데스크 4일자 리포트 갈무리.
▲ MBC뉴스데스크 4일자 리포트 갈무리.

이 전 대표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가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했던 “우리와 같은 언어, 민주주의의 언어로 말씀해달라”는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친윤계 당 지도부와 뜻을 같이하는 인 위원장과 자신은 소통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또한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강서구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인 위원장이 대통령 의중대로 움직이면서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로 나타난 민심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도 인 위원장이 정치권에선 새로운 인물이고 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준다는 착시효과가 있어 마치 당이 혁신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의 영어 응대는 보기에 따라 ‘무례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반대로 이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당 대표에서 내쫓은 세력이 초대하지도 않은 공간에 찾아와 환영받지 못하는 그림을 연출했기에 인 위원장이 더 무례하다고 느낄 여지도 있다. 

상대를 타자화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어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지 않지만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은 대부분 소수자를 향해있다. 인종차별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세계사적 무게감에 견줘보면 이준석 전 대표 발언을 가지고 곧바로 인종차별이라고 확정짓는 것은 섣부르다.

이 전 대표 발언 중 위험한 부분은 따로 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정치인들을 자꾸 ‘환자’에 비유하는 버릇이다. 이 전 대표는 이날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윤 대통령으로 해석된다. 얼마 전 이 전 대표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가리키며 “난 아픈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는 아픈 사람에 대한 혐오발언으로 볼 수 있다. 차별·혐오발언은 소수자를 비하하는 뜻이나 관점을 담은 언행뿐 아니라 용어 자체는 무난해 보이더라도 증오나 편견을 선동하는 언행도 포함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안 의원에게 한 ‘환자 발언’은 환자를 부정적인 뜻으로 비유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장애 차별·혐오로 조금 더 부연하면, ‘병신’과 같이 장애를 표현하는 단어를 욕설로 쓰는 표현이나 장애인의 대비되는 말로 ‘정상인’을 쓰는 것처럼 장애를 열등한 상태로 두는 표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등 장애를 부정적인 맥락으로 비유하는 관용표현 등은 모두 장애를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차별표현으로 규정해 순화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부정적인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차별이다. 윤 대통령과 안 의원이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건 이해하지만 아픈 사람이라고 윤 대통령과 안 의원처럼 행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 질병권 운동, ‘잘 아플 권리’ 운동이 확산하면서 환자는 이 사회에서 또 다른 소수자로 자리잡고 있다. 아픈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정과 부정 사이 어디 쯤에 있다. 누구나 환자로 살고 있거나 살 가능성이 큰 가운데 아픔을 의심당하거나 부정당하지 않고 여러 질병으로 아픈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취지다. 잘못된 권력을 비판할 때 환자에 비유하는 건 환자에 대한 혐오·차별에 가깝다.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사진=국민의힘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사진=국민의힘

이 전 대표의 ‘인종차별’ 논란으로 주목받지 않았지만 인 위원장이 채널A와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어려워서 이 전 대표 아버지에게 연락했다고 발언한 대목도 차별 소지가 있다. 이 전 대표가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 내부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데 이는 가치중립적 의미에서 ‘청년정치인’이 아니라 소위 ‘어린 것이 뭘 아느냐’는 쪽에 가깝다.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해명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다수 전직 지도부들처럼 만약 50대 이상 남성이었다면 그를 만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의 부모에게 연락했을까. 이는 나이를 이유로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해석된다. 한국처럼 나이에 따른(나이가 많든 적든) 차별과 적대가 심한 분위기에서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열등한 위치에 놓는 태도는 정치권에서부터 지양해야 한다.

정치인의 언행은 하나하나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당사자가 나타나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하더라도 기자뿐 아니라 유권자들도 해당 정치인의 발언을 글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소수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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