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맹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개혁은 뒷받침할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4개 대안을 제출하여 갈등만 초래했다”고 지적하자 경향신문·한겨레는 대통령이 또다시 이전 정부에 탓을 돌린다고 비판했고 서울신문은 윤 정부의 개혁안 접근 방식이 옳다고 강조했다.

▲ 지난 30일 2023년도 제4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 지난 30일 2023년도 제4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두고 ‘숫자가 없는 맹탕’이라거나 ‘선거를 앞둔 몸 사리기’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지난 27일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며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방향 외엔 구체적인 보장 목표는 물론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 야당은 물론 언론에도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 정부 책임 돌리기에 한겨레 “숫자 자체가 없어 혼란인데”

▲ 31일자 한겨레 4면 기사.
▲ 31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윤 대통령이 이전 정부에 책임 돌리기를 반복했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4면 기사 <윤 ‘맹탕 개혁안’ 비판에 또 문 정부 때리기>에서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계획안엔 수치 자체가 아예 빠져 혼란이 커지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어떤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알맹이 없는 내용들을 짜깁기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숫자 없는’ 개혁은 허구이고 책임 방기다>에서 “구체적 숫자와 방향이 없는 정부 연금개혁안을 국회로 넘기면서 내놓은 자기 합리화와 궤변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먼저 구체안을 내놔야 논의의 물꼬가 트이고 속도가 붙을 것이 아닌가. 그걸 안 했으니 무책임하다고 탓하는 건데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안이 ‘사지선다’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윤 정부는 그 여섯 배인 24가지 시나리오를 압축도 하지 않은 채 국회에 던지듯 공개했다. 그러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국회에 제시했다고 자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 31일자 서울신문 사설.
▲ 31일자 서울신문 사설.

윤 대통령의 반박이 옳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신문은 사설 <국민연금 개혁, 고통분담 의지에 성패 달렸다>에서 “윤 대통령 지적처럼 세대별·계층별 대립이 첨예한 연금개혁 논의를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체화하는 건 자칫 소모적 논란만 가중시키면서 개혁 동력 자체를 떨어뜨릴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각 세대와 계층이 서로 양보할 수 있는 한계선을 찾아내고 그 공백을 합리적 논거로 메워 나가는 매우 정교한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尹 “소상공인, 은행의 종노릇”, 서울신문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민생의 절박함을 강조하며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발언을 전하며 “현장 민심을 전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예대마진 등에 따른 과도한 지대 추구 논란이 제기된 은행권의 독과점 문제를 겨냥했다는 해석”이라고 했다.

▲ 31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 31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계속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평가다. 조선일보는 4면 <尹대통령 “대선 때처럼 절박… 민생 위해 뭐든 할 것”>기사에서 제목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참모들과 저녁을 하면서 한 말”이라며 “대통령 자신부터 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는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이런 기조 변화는 현 여권이 처한 상황 진단에서도 시작됐다. 여권에선 보궐선거 참패 후 캠페인 방식, 지역 조직 문제 등을 패인으로 꼽는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심층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과반이 여당 후보에 대한 사면과, 이에 연이은 공천을 주된 패인으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과는 윤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한다”고 했다.

▲ 31일자 서울신문 사설.
▲ 31일자 서울신문 사설.

서울신문은 국민연금 개혁안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 긍정 사설을 연달아 냈다. 서울신문은 사설 <약자의 눈물 닦아 주는 與, 그게 혁신의 종착점 돼야>에서 “지난주 36곳의 민생 현장을 찾아 청취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에 대한 대통령의 즉각적인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며 “대통령의 ‘민생 현장에 대한 직접 소통’ 주문이 참모진과 정부에만 해당되는 것일 리 없다. 누구보다 국민의 구체적 삶의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당내 문제에만 ‘올인’하는 여당이야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4면 기사에서 은행권의 목소리를 담았다. 동아일보는 “은행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비이자수익 활성화 방안을 모색 중이고 상생금융에 적극 협조했는데도 정부가 또다시 ‘은행 때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아일보에 “정부가 은행의 금리 산정 방식을 압박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시장 가격 체계를 왜곡시키는 면이 있다”며 “원활한 채무조정, 저금리 대환대출 활성화 등의 방식으로 정책금융을 보완하는 방안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미 전술핵, 한국 지원용 지정하자… 한국만 비무장 상태”

▲ 31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 31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조선일보가 미국 전술핵 100기를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RAND)연구소는 30일 “미국의 전술핵(B61) 100개를 현대화해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지정, 언제든 신속히 한반도에 배치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올해 4월 한미가 확장 억제(핵우산) 강화를 공언한 워싱턴 선언에 대해 ‘구체적 이행 조치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건의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한국 땅에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는 것이 안 된다면 그나마 미 핵우산의 구체적 억지력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을 둘러싼 중국·러시아·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장에 진력하고 있는 가운데 최전선에 있는 한국만 비무장 상태로 있다. (중략) 이 보고서가 지적했듯이 ‘점증하는 핵 위협에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지 못하면 미래 한국은 자체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 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에 있겠나”라고 했다.

▲ 31일자 조선일보 칼럼.
▲ 31일자 조선일보 칼럼.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는 평화를 강조하는 야당의 태도가 안일하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중동 이후 제3의 前線은> 칼럼에서 김대중 칼럼니스트는 “불행히도 세계는 지금 전선의 다변화의 길로 가고 있다. 북한은 그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또 ‘더러운 평화’를 꺼내들었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했다”며 “그런 사람이 이끄는 정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정권을 잡으면 이에 괴리감을 느낀 미국 역시 ‘너희가 더러운 평화가 좋다는데 우리가 왜 거기에 목을 매겠는가’라는 여론에 밀려 방위 조약의 전선을 이탈할 수도 있다. 북한의 리더십은 의당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고 했다.

노벨 경제학상의 메시지는? “여성 노동과 성차별 그리고 저출산”

▲ 31일자 한겨레 27면 칼럼.
▲ 31일자 한겨레 27면 칼럼.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뭘까.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 칼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한국의 교육·여성 문제>에서 “한국의 문제에 깊은 함의를 갖는 업적은 미국의 장기적인 인적자본 축적과 여성 경제활동 변화에 관한 연구”라고 했다.

이 교수는 “골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초 이후 미국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기혼여성의 노동에 대한 거부감 약화, 산업구조 및 기술 변화 등에 힘입어 점차 확대되었으며 1970년대의 소위 ‘조용한 혁명’을 거쳐 빠르게 증가하였다”며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일련의 공공정책은 이러한 혁명의 진행을 뒷받침했다. 골딘 교수는 미국 여성이 얻어낸 진보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는 일부 직종에는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골딘 교수가 명명한 ‘조용한 혁명’은 이미 한국에서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과 가정이 충돌할 때 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불리함을 없앨 수 있는 문화적, 사회경제적, 정책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유리천장을 없애고 여성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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