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프레스센터 20층.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 이사장 이임식에선 눈물 흘리는 사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 눈물은 지난 6개월간 유례없는 논란에 휩싸였던 언론재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표완수 이사장은 임기의 절반 정도를 윤석열 정부에서 보냈고,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3년 임기를 마쳤다. 

지난 3월 조선일보 출신 정권현, 연합뉴스 출신 유병철, 중앙일보 출신 남정호씨가 언론재단 상임이사로 오고 재단에는 난데없이 ‘가짜뉴스신고센터’가 생겼고, 오보를 이유로 KBS 기자의 해외연수가 돌연 취소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매년 발간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선 ‘신뢰 1위 MBC, 불신 1위 조선일보’ 지표가 담긴 주요 언론사 신뢰도 결과가 빠졌다. 

문재인정부 시절 ‘열독률’을 조작해 정부 광고 단가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주장은 이사장과 직원들을 향한 형사 고발로 이어졌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8월 ‘리더십 붕괴’를 이유로 표 이사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거론했다. 이윽고 세 명의 상임이사들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이사장 해임을 주도했다. 그러나 표결 결과는 부결이었다. 

▲18일 만난 표완수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사진=정철운 기자.
▲18일 만난 표완수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사진=정철운 기자.

이임식 직후 만난 표 전 이사장은 ”새 정부 들어서고 1년 6개월은 일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며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언론사들을 포털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전문가 논의를 거쳐 디지털 뉴스 유통구조 개선안을 내놨는데, 박보균 장관 오고 중단됐다. 박 장관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더라.” 그가 꼽은 ‘제일 아쉬웠던’ 순간이다. 당시 작업은 <디지털 뉴스 유통구조 개선 방안>(오세욱, 정영주, 이현우) 연구서로 남았다. 

표 전 이사장은 지난 6개월간 언론재단을 둘러싼 각종 사건이 ‘용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지난 17일 언론재단 국정감사에서도 질타를 받은 <디지털 뉴스리포트> 언론사 신뢰도 결과 누락도 “(담당자인) 남정호 이사 본인의 독립적 의견이라기보다, 어디 눈치 보는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BS 기자 해외연수 취소 사건도 대통령실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며 “(입김) 역할을 하는 게 정권현 이사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박보균 장관이 정권현 이사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권현 이사는 언론재단 국감 당일 해외 출장 중이었다. 표 전 이사장은 “국정감사가 내일모레인데 (출장) 결재를 너무 뒤늦게 제출했다. 월요일(16일)에 반려했더니 저녁에 또 올리더라. 또 반려하면서, ‘그렇게 중요한 건이면 더 일찍 보고했어야 했다’고 했지만 (출장을) 가버렸다”고 전한 뒤 “국감을 피하려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임이사들의 ‘이사장 패싱’은 단계적이고, 노골적이었다. ”상임이사 셋이 오자마자 인사를 하겠다고 하더라. 우선 업무 파악하고 인사하라고 했다. 장관에게는 ‘셋이 인사하겠다는데 직원 파악도 안 된 상황에서 오자마자 바로 하면 말이 있다’고 전했고 ‘살펴보겠다’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문체부에서) 아무 조치가 없었다. … 한번은 월요일 실‧국장 회의가 있는데 상임이사들이 앞으로는 각 본부별로 회의를 하겠다고 승인해달라고 하더라.“

표 전 이사장은 ”재단의 단체 지원은 5인의 심사위원회(외부 3명 포함) 심사 이후 순위를 매기는데, 그걸 예비 심사로 하고 최종 심사는 상임이사가 맡는 식으로 심사 규정을 바꾸자고 하더라.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상임이사들이) 이사장은 2선으로 물러나라고 여러 번 강요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발도 되고 그랬으니 물러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리더십 어쩌고 하는 건 당신들밖에 없어. 그리고 당신들 지금 총만 안 들었지, 나를 최규하 만드는 짓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규하는 1979년 박정희 사망 이후 대통령이 되었으나 전두환 신군부의 압박 속에 임기를 1년도 마치지 못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결정적 순간은 지난 8월1일 박보균 장관과의 단독 면담이었다. “30~40분 걸렸는데 (면담)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보도자료가 나와 있더라. (보도자료를) 먼저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춰 (면담)한 거다. 1980년 남영동 연행 때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미리 (결론을) 만들어놓고, (결론을 위해)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몰아갔다.” 이날 문체부 보도자료 제목은 <박보균 장관 “언론재단의 리더십 와해 상황 우려, 특단의 대책 강구, 실천하겠다”>였다. 

정부‧여당은 ‘정부광고지표 조작’ 논란으로 경영진이 수사 대상이 되었으니 이사장 해임은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장관도 면담에서 ‘리더십 와해’를 언급했다고 했다. 표 전 이사장은 당시 박 장관을 향해 “리더십이 와해 된 게 아니고, 와해시키려는 소수의 이사들이 있다. 장관이 추천한 인사들”이라고 말했다면서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합뉴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합뉴스

표 전 이사장은 “우리가 열독률을 조작했으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조선일보를 깎아내리고 한겨레를 더 많이 주기 위해서 했다? 그럼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결과가 없었다. 오히려 조선은 더 올랐다. 깎으려는 시도 자체도 없었다”며 의혹 제기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박보균 전 장관에 대해선 “경질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론재단 예산을 줄인다거나, 가짜뉴스신고센터를 만든다거나 재단 관련 이슈를 만들었다. 용산 눈치를 많이 보면서 위기일 때마다 터뜨리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8월16일 언론재단 이사회 안건이었던 ‘이사장 해임안’ 부결은 “전혀 예상 못했다”고 털어놨다. “해임되면 퇴직금도 절반으로 줄고 불이익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고발돼 있고 수사 의뢰되어 있는데 퇴직금 조금 더 챙기려고 나간다? 자진사퇴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이사장이 실속만 챙기자고 도망가버리면 그건 내 인생관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의 임기를 채우는 건 그의 ‘임무’가 되어버렸고, 임무를 완수했다. 

표완수 이사장은 1974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해 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됐고, 민주화 이후엔 시사저널, 경향신문을 거쳐 2000년대 경인방송 사장과 YTN 사장을 역임했다. 2009년엔 시사IN 초대 사장을 맡았다. 이제 ‘자유인’이 된 그는 언론인으로서 지난 50년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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