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나는 지금 쓰고 싶지 않은 말을 썼다. 고심하며 ‘X’를 끼웠지만 칼럼의 품격은 이미 떨어졌다. 그럼에도 ‘모가지’를 쓰는 까닭은 대통령 윤석열과 참모들의 ‘콘크리트 불감증’에 다가갈 길이 도무지 없어서다.

딴은 그들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목놓아 부르댄 교수들이 있다. 장수 철학교수, 원로 정치학교수, 기자출신 언론학교수 등등 참 다양했다. 신문방송 복합체와 그 아류 매체들의 ‘고위직 언론인’들, 그들에 줄 선 기자들, 저마다 무슨무슨 직함을 붙인 훼절한 먹물들도 윤석열을 따라 문재인 정부를 파시즘, 전체주의로 몰아세우며 정권 교체를 외쳤다.

그들이 여론을 주도하며 정권이 교체됐고 1년 6개월이 다가온다. 어떤가. 민주주의는 진전되었는가. 민생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아니, 민생 이전에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설레발친 대통령의 경제성적표는 어떤가. 안보가 문재인 때는 불안했지만 지금은 편안한가.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자성의 글을 쓰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내 아니다. 대통령 윤석열의 실정엔 눈감고 야당 대표 이재명엔 끝없이 여론재판을 벌였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먹물다운 온갖 교언영색이 만발했다. 마침 신방복합체가 대표적인 윤똑똑이를 부각했다. 김한길이다.

▲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4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트북을 활용해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에서 열린 국민통합위 '청년 마당 출범식'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 마당은 만 19~34세 청년 100명으로 구성된 청년 포럼으로 이날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 연합뉴스
▲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4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트북을 활용해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에서 열린 국민통합위 '청년 마당 출범식'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 마당은 만 19~34세 청년 100명으로 구성된 청년 포럼으로 이날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 연합뉴스

민주당 대표를 지낸 그는 윤석열 캠프에 들어가 ‘새시대준비위원장’을 맡았고 국민통합위원장 ‘감투’를 썼다. 조선일보는 주말판(9월23일) ‘커버스토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좌우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김한길의 주장을 큼직하게 편집했다. 국민통합위가 “정권교체 후 시대정신이 국민 통합에 있다는 의지의 산물”이고 최근의 업무 보고도 극찬을 받았단다.

김한길은 언죽번죽 “대통령은 실사구시, 실용주의”를 말했다며 보수나 진보, 좌우를 떠나 국민만 생각한다고 부닐었다. 과연 그러한가. 그게 “이념이 중요하다”며 눈 홉뜬 윤석열 아래서 국민통합을 맡아온 김한길이 할 말인가? 굳이 따지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 9월23일 조선일보 주말섹션 갈무리
▲ 9월23일 조선일보 주말섹션 갈무리

윤석열의 ‘이념’은 실제로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정확히 수구다. 그럼에도 김한길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게 진정한 통합”이란다. 유체이탈의 종결자라도 되고픈 걸까. 대체 무엇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가치”인가.

보라. 후보시절 장차관에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겠다고 부르댄 윤석열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몬 모리배들을 여기저기 앉혔다. 그럼에도 자신을 지지한 먹물들이 비호해서일까. 마침내 국방장관으로 ‘홍범도 동상 철거’를 주도한 신원식을 지명했다.

그런데 장성 출신인 그가 문재인이 대통령이던 2019년에 군통수권자를 “악마”로 규정하며 “문재인 모가지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공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정은이한테 대한민국을 바치기 위한 교묘한 공작”을 벌였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9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2차 개각 발표 브리핑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9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2차 개각 발표 브리핑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그 사실을 윤석열이 몰랐으리라는 생각에 지명을 철회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대통령 모가지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공언한 자를 국방장관에 지명했음에도 마치 저만 자유민주주의자인 듯 ‘문재인 파시즘’을 떠들어댄 먹물들 은 모르쇠다. 여전히 신방복합체의 지면과 화면은 ‘야당대표 구속 기우제’로 넘쳐난다.

저들의 불감증 또는 출세욕에 각성제로 쓴다. 행여 ‘X’를 써서 효과가 반감될까 싶어 곧이 묻는다. 누군가 “윤석열 모가지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 공언해도 좋은가? 물론 그따위 천박한 말을 할 ‘촛불’은 없다. 저들이 파시스트로 몰아세운 문재인도 그를 문제 삼지 않았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문재인 모가지를 따자는 예비역 장성을 버젓이 국방장관에 앉히는 윤석열의 인성은 접어두자.

‘윤석열의 모가X’를 쓰는 내 칼럼의 품격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나라 ‘보수’의 품격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을 어쩔 수 없었다며 두둔하는 자가 나라 지키는 국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래도 철회하지 않겠다면 앞으로 ‘윤석열 모가지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쯤은 깃털처럼 가벼이 여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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