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의사에 깊은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나만 하더라도 맹장수술, 위내시경시술을 받아 건강을 지켰고 가까이는 치통을 해소했다. 사단법인 싱크탱크를 만들어 운영할 때 함께 한 의사들 얼굴을 떠올리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채무감에 어깨가 무겁다. 그 의사들은 싱크탱크에 적극 참여해 ‘국민 주치의제도’ 방안을 마련했다.

21세기 들어와 한국 의술은 세계 첨단을 달리고 있다. 여기까지 이른 의사들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빛 못잖게 그림자도 짙다. 응급 수술을 받지 못하고 119 구급차 안에서 고통과 죽음의 공포 속에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숨졌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울뚝밸마저 치민다. 더구나 종합병원이 서울에 몰려 있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 수도권에서도 서울 특정지역과 다른 곳의 의료현실은 차이가 크다. 의사 수는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반면 인건비는 높다.

그럼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한의사협회가 ‘파업’으로 부르는 집단 진료거부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쿠데타나 민중 학살에 지식인으로서 의사들의 저항이 아니다. 의대 정원 늘리는데 반대하는 행태다.

▲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0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이필수 회장(왼쪽)이 이광래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협의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0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이필수 회장(왼쪽)이 이광래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협의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을 1000명 늘리는 방안을 내놓자 의협은 또 강경 투쟁 태세다. 10월20일 경기도의사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집회에서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가 망가져서 나온 문제라며 “필수의료 의사 입장에선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다행히 위급한 환자가 안 왔다. 그러면 정부에서 그날 의료기관에 돈을 얼마 줄까. 10원도 안 준다. 필수의료는 소방서하고 똑같다. 불이 안 나면 소방관 월급 안 주나… (그러니까) 의사를 많이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론은 “결사 저지”다. 그는 “제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가. 대통령이 미워서 이런 말 하는 건가. 오히려 좌파 정책 하십쇼 하십쇼 하는 간신배들이 대통령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부르댔다. 윤석열 지지자의 ‘애틋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런데 어떤가. 의사 부족한 나라에서 의대 정원 늘리기가 어째서 좌파란 말인가. 그는 다른 집회에서도 “문재인 케어는 국민에게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는 거의 김일성하고 같은 말”이라고도 했다. 그에게 전혀 좌파가 아님은 물론 더러 ‘반동적 자유주의자’로 비판받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쇼펜하우어는 당대의 혁명운동을 두려움과 경멸감으로 바라보았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시위하는 민중에게 발포하려는 군대에 다가가 오페라용 망원경을 건넬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동철학자’조차 의사는 “의식주와 자녀의 교육과 부모를 공양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얻는 대가”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의무가 발생하지만 현실을 목격하건대 오직 의료비와 현금을 지출할 능력이 되는 일부 계층을 상대하기 위한 사업 확충에만 몰두한다”고 개탄했다. 특히 의사가 “이웃의 삶을 치유함으로써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봉사의 금전적 대가를 추구한다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단언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길 뜻은 없다. 하지만 제국주의 물결이 온 세계에 넘쳐날 만큼 자본의 논리가 극심할 때도 반동적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철학자조차 의사의 직업윤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새겨볼 필요는 있다. 물론 쇼펜하우어를 반동적 철학자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진정한 보수랄까. 그는 맹목적으로 욕망만 추구하는 삶은 불행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더 많은 욕망을 좇는 과정의 고통만이 아니다. 욕망을 충족하면 곧 권태가 찾아오고 또 다른 욕망을 품기에 불행을 피할 수 없다고 꿰뚫어보았다.

나는 한국의 모든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해괴한 색깔론으로 반대하진 않으리라 확신한다. 다만 자기 이익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죄다 ‘좌파’로 몰아치는 정계와 언론계의 ‘파시스트 논리’가 단체를 맡고 있는 의사들 사이로 파고든 살풍경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의사들이 많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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