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무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가 기자단에서 제명됐던 기자가 피해 공무원에게 9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 강정연 판사는 지난 5월 전직 교육부 대변인실 사무관 A씨가 전직 머니투데이 B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5000만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강 판사는 “피고(B 기자)는 원고(공무원 A씨)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B 기자가 A씨에게 위자료 9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항소했다. 

기자 “어디 너 같은 게 X발. 너 내가 못 나오게 할 거야”

사건은 다음과 같다. 머니투데이 소속이었던 B 기자(현재는 퇴사)는 2019년 7월 오후 교육부 대변인실과 교육부 기자단의 만찬 자리에서 임기제 공무원이었던 A씨에게 욕설과 막말을 퍼부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B 기자는 A씨에게 “거기서 뭐하는 거냐. 왜 술을 안 먹냐”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A씨가 있는 자리로 술잔을 들고 가서는 A씨에게 일어나라고 한 뒤, 러브샷 제스처를 취했다. A씨가 이를 거절하자 B 기자는 “X발, 당신 그 정도밖에 안 돼? 야, 너 그따위로 하지마. 니까짓게 뭔데, 당에서 왔으면 잘해야지”라며 “기자를 우습게 알고. 너 똑바로 해 X발. 당신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내일부터 나오지마”, “너 내가 경고했어. 너 같은 거 여기 필요 없으니까 사무실 나오지마. 어디 너 같은 게 X발. 너 내가 못 나오게 할 거야. 내 눈에 띄지마. 두고 봐 X발”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공무원에 대한 기자 갑질과 욕설이 알려지자 교육부공무원노조는 B 기자에 대한 회사 징계와 기자단 출입제한 조치 등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교육부 기자단은 머니투데이를 출입 기자단에서 제명했으며, 머니투데이도 당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노조위원장에게 사과문을 보내고 B 기자에게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리는 등 사태 수습을 위해 후속 조치에 나섰다.

▲ 교육부 공무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가 기자단에서 제명됐던 기자가 피해 공무원에게 9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사진=PIXABAY
▲ 교육부 공무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가 기자단에서 제명됐던 기자가 피해 공무원에게 9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사진=PIXABAY

기자, 민형사 패소… 법원, 벌금 300만원 선고

앞서 B 기자는 A씨를 협박하고 모욕한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대전지법 형사7단독 김도연 판사는 지난해 7월 B 기자에게 벌금형 300만 원을 선고했다.

B 기자 측은 “피고인(B 기자)은 술잔을 들어 피해자(A씨)와 건배하려 한 사실이 있을 뿐 러브샷을 하려고 하거나 피해자를 협박하고 모욕하는 말을 한 사실이 없다”며 “설사 공소사실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말을 했대도 피고인은 피해자의 공무원 재계약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가해 의사도 없기 때문에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B 기자 측은 또 “피고인의 표현은 피해자를 보고 싶지 않다는 취지일 뿐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욕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김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며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 또한 피해자 진술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 기자 폭언은 교육부 공무원 및 기자단 관련자 15명이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김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 신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의도나 욕구가 없었대도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할 정도의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히 감정적 욕설이나 일시적 분노 표시에 불과해 가해 의사가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협박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B 기자가 임기제 공무원이었던 A씨의 재계약에 영향을 미칠 것처럼 해악을 고지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기자단에 소속된 언론사 기자로서 피해자의 직속 상사를 비롯한 교육부 내 여러 공무원들과 친분 관계가 있었고, 인사권을 가진 간부와의 면담, 기사 작성 등을 통해 많든 적든 간에 공무원들의 평판 등에 사실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설사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대도 평소 기자와 공무원의 관계, 피고인이 썼던 기사 내용과 영향력 등을 봤던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에게 그런 영향력이 있다고 믿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김 판사는 “피해자는 교육부 임기제 공무원으로서 그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는 바, 피고인 발언 내용에 비춰 보더라도 피고인도 그런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피해자는 사건 당시 1년 단위 재계약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인은 반복적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사무실에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구체적 해악의 내용을 들은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신분 등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 판사는 B 기자가 A씨에게 한 발언은 “피해자(A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모욕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 판사 판결문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사건 이후 재계약은 했지만 B 기자에 대한 공포심과 정신적 충격 등으로 정상 근무를 하지 못했고 결국 이직했다.

B 기자는 형사 1심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지난달 5일 항소를 취하해 재판은 벌금형으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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