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가 7월18일 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교육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선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A씨 사망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일파만파 퍼졌는데요.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할 언론은 되레 루머의 생산자로 뛰어들었습니다. 잘못된 원인 지목과 더불어 정치 문제로 논란을 확산시키고도 있는데요. 사건 본질은 뒷전인 채 비윤리적 보도를 반복하는 언론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이 확산시킨 ‘유가족 추정 댓글 논란’

사실 확인은 언론 보도의 가장 기본이지만, 언론엔 ‘추정’이라며 교사 A씨 유가족 댓글이 등장했습니다. 위키트리 <“수십 차례 썼다 지웠다…” 서초구 초등학교 극단 선택 교사 유가족 추정 댓글 확산>(7월20일 김희은 기자)은 “A씨의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이의 댓글이 올라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해당 댓글 내용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위키트리는 “댓글이 올라와 파장이 일고 있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유가족이 맞는지에 대한 확인은 없었는데요. 글쓴이도 불분명한 댓글을 재확산했을 뿐 보도가치는 없었습니다.

톱스타뉴스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극단적 선택에 유가족 댓글 등장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7월20일 한수지 기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가 학교 폭력 업무를 담당하면서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으며 “A씨의 유가족라고 주장하는 이가 등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역시 유가족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노력은 없었으며, 고인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언급했습니다.

해당 초등학교가 7월20일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고인이 된 A교사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출결과 학적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는 ‘나이스(NEIS,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유가족으로 추정된다는 댓글 역시 현재까지 정확한 출처가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사실일지라도 빠르게 보도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기사 가치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SNS상에 가짜뉴스’가 확산됐다며 뒤늦게 팩트체크에 나설 게 아니라 온라인상 루머 확산에 앞장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입수 경위 불분명한 일기장, 단독이라 보도한 뉴데일리

뉴데일리 <단독-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7월20일 박아름 기자)은 해당 교사의 일기장을 입수했다며 고인의 사적 기록을 보도했습니다. 고인의 업무 스트레스와 사적 관계를 비롯해 병원 기록까지 무분별하게 공개했는데요. 이후 세계일보 <‘극단 선택’ 서초 초등교사 친척 “일기장엔 갑질 내용도 있다”>(7월20일 이슈팀)와 위키트리 <서이초 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부터 수차례 극단적 선택 암시했다>(7월20일 한소원 기자) 역시 검증 없이 뉴데일리 기사를 받아쓰며, 고인의 사망 원인을 함부로 추정했습니다.

미디어오늘 <초등교사 사망에 ‘단독’ 달고 일기장·사적 면모 들춰도 되나>(7월23일 김예리 기자)는 고인의 외삼촌이 “같은 날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유족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일로 치부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 내용을 언급하며 “‘단독’ 문패를 달고 고인의 사적인 면을 강조한 보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는데요. “일기장을 ‘단독 입수’했다고 밝히면서도 일기 내용을 접한 경위와 보도에 유가족의 허락을 받았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인권센터는 <논평-구조적인 문제를 벗어나 고인의 사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는 언론보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7월22일)에서 “어떻게 고인의 일기장을 입수할 수 있었는지, 유가족의 허락을 받은 보도인지, 고인의 정신과 치료기록은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고 지적하며 “고인의 사생활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은 물론 ‘자살보도 윤리강령’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이어 “오로지 개인의 사적인 고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며 “교사의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도 없는 교육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고인에 대한 사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언론보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언론은 고인의 사적 기록을 보도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도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하며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데요. 비윤리적인 뉴데일리의 기사는 반성과 함께 삭제되어야 마땅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인?

초임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를 놓고 언론은 학생에게 그 책임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선생님을 약자 만든 학생인권조례… 교권침해 연 3035건>(7월22일 김연주 기자)은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한 핵심 계기로 교육계는 2010년 도입된 ‘학생 인권 조례’를 꼽는다”며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한 정책”이라고 전했습니다. “학생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인권 조례 도입 후 학교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며 “학생 인권만 강조하고, 학부모는 극성인데 교사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매일경제 <사설-교권 붕괴 가져온 학생인권조례와 금쪽이>(7월24일) 역시 “교권이 추락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한 학생인권조례”로 지목하며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당시부터 정치적 의도에 대한 비판”이 많았고 “미래 유권자들인 학생들 인권을 우선시하면서 교사를 잠재적 인권침해 범죄자로 몰아세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일경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결과가 지금 드러난 교권 추락이고, 교실 붕괴”라며 “조직화되지 않은 교사들이 대거 참석한 의미에 대해 조례를 주도한 세력이 곱씹어 보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인권과 교권은 제로섬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경향신문은 <사설-학생인권조례와 교권 붕괴는 별개다>(7월24일)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은 맞서는 개념이 아니며 “학생들의 권리를 억누르고 과거처럼 엄격한 훈육 수단을 도입해야 교권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는 공존 가능한데도 ‘제로섬’인 양 간주하는 것은 교사·학생 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교권 추락의 책임을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 탓으로 돌리는 언행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백년대계를 정쟁화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교육계에서도 교권과 학생인권을 상반된 개념으로 놓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한겨레 <교사에게 민원·책임 떠넘긴 교육당국, 이제 와서 학생인권 탓만>(7월21일 박고은·손현수·강재구 기자)은 학생인권과 교권이란 두 개념은 상충되는 게 아니고 “교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리로 상호보완적 관계”이며 “학교나 교사가 적절한 방어권을 가질 수 있게 해 교육적 관점에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성명을 전했습니다. “학교 현장은 교육당국의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모든 민원과 책임을 교사 개인이 떠맡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고, 과도한 문제행동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를 학교에 배치해야 한다”고 짚은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로 교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 통계상으로 맞지 않다는 보도도 나왔는데요. 오마이뉴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침해?… 통계는 ‘관계 없음’>(7월22일 윤근혁 기자)은 2016년과 2019년 사이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던 경기·광주·서울·전북의 교권침해 현황을 살펴보니, 경기는 늘어났지만 나머지 세 개 지역은 교권침해가 줄어들었다고 짚었습니다. “같은 기간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던 대구(129→156), 인천(66→148), 울산(78→79) 등 3개 시는 오히려 교권침해가 늘어났다”며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교권침해 사건이 늘어났다’는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언론은 ‘자살보도 윤리강령’ 되새겨야

이제 2년 차에 접어든 새내기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앞에 언론은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육당국과 정부의 책임 있는 조사를 촉구하고,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심도 있게 취재해 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확인도 없이 온라인상 글을 그대로 퍼 나르며 루머의 생산자가 되었고, 고인과 유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를 문제라 지목하며 교권과 인권을 대립해 보도하고, ‘진보·좌파’를 언급하며 정치적인 견해를 앞세우는 잘못된 보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잘못된 진단을 내리며 갈등을 부각하고, 무분별한 보도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 바람직한 언론 보도가 아닙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망 사건을 보도하는 데 특별한 신중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를 재차 촉구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7월20~21일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저녁종합뉴스 /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학생인권조례’로 검색한 보도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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