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종각역에 모여 “교사 생존권 투쟁”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5천여명의 교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모여 교실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 A교사를 추모했다. 동시에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했다. 깊은 공감 가운데서도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선 긋기와 참여자 중에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분도 계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전국 교사 일동은 ‘우리는 전교조가 아니다. 평범한 일반 교사들이다. 전교조는 이 집회에 오지 말아달라’고 밝혔다는 점, 집회 전날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학생인권조례가 지나치게 학생인권을 강조하고 교권을 침해하고 추락시켜 균형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전교조를 거부하는 교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우려가 되는 점들이 존재했다. 이 장관의 ‘학생인권’과 대립한다고 주장하는 ‘교권’의 실체는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명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인지해야 명징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고, 이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도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사회는 많은 영역에서, 특히 인권과 관련한 용어에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어떤 노동이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특성에 따라 주로 노출되는 위험요인을 구조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는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가 그리고 이에따라 사용자가 책임지고 위험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위험한 일자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비용이 드는 일인 까닭에, 자꾸만 위험을 외주화하며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한다. 위험의 외주화의 결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용역)의 저임금 노동자가 목숨걸고 일하다 죽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시민이 이러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고 분노했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 이 노동현실의 문제는 교사의 현실과 다를까? 안타깝게도 똑같은 양상이다.

▲ 7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 7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긴 노동시간으로 1, 2위를 다투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교사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행정’이라 퉁쳐진 온갖 서류업무와 잡무를 하며 교육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사가 처한 대부분의 현실이다. 동시에 가장 회피하는 업무인 학교폭력민원 담당이나 저학년 담임 등은 기간제교사나 저연차 교사에게 부여된다.

‘전국 학교폭력 책임교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 담당자 중 25%가 기간제 교사, 33%가 10년차 미만 저연차 교사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기간제교사의 취약성을 악용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회피업무를 부여하며, 나이권력과 경험에 따른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저연차 교사에 회피업무가 부가된된다. 매일 학생을 만나는 현장 노동자로서의 교사가 주로 노출되는 위험요인은 과중한 업무와 자신이 홀로 알아서 대응해야하는 민원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교사의 사용자에 해당하는 국가는 위험요인을 ‘학생인권’ 탓으로 돌리며 충분한 인력투입과 예산배치를 해야할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다. 애초 국가가 교원감축의 근거로 사용한 통계가 평균값을 내는 통계의 함정에 빠져있고, 교사 당 학생수라는 이름으로 교장, 교감, 사서, 보건교사, 휴직교사 등을 카운트하며 잘못된 통계를 내고 있었다는 점도 2021 국회 토론회를 통해 논의된 바 있다.

학급 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사의 노동부담을 줄여 학생과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정권은 초중고 예산을 빼서 대부분 사립인 대학의 예산으로 지원하겠다는 논의를 한다. 공무원인 교사는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이 오롯이 민원을 감내해야하지만, 공무원과는 다르게 자신의 일상이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원을 대응해야 한다. 그야말로 무방비다. 교사 노동자가 이토록 위험요인이 전혀 제거되거나 완화되지 않은채 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지만, 국가라는 ‘사용자’는 학생인권 탓만 하는 상황이다.

흔히  “교사들의 교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이는 엄밀히 교(敎)권이 아닌 교사의 노동권이 침해가 되고 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교사의 노동권을 교권이라고 표기하거나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노동이라는 단어나 개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의 반영이다. 교사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연결된다.

노동권이란 자신의 노동현장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노동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다. 업무량이 많고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의 문제는 노동권의 문제다. 이를 ‘가르칠 권리’라고 말해버릴 때, ‘수업중 잠자는 학생도 깨울 수 없다’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헛소리가 나오며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면 그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뿐 그것이 교사의 과중한 업무량과 민원을 해결하지 못한다.

교권을 교사의 권위라고 해석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권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부적절해질 수 있는 표현이다. 교권은 교육자유권, 즉 자신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교육을 자유롭게 설계하고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국의 교사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을까?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만 남은 현장에 그런 권리를 누리고 있는 교사가 존재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좋은 교사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다. 입시, 시험, 평가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에게 교권(교육자유권)이란 게 아예 박탈 돼 있는 사회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는 노동권과 교권 이외에도 또 있다. 모든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시민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교사는 정당에 가입해 정당활동을 할 수 없다. 정당활동은 커녕 SNS에서 정치와 관련된 글에 ‘좋아요’를 누를 수도 없다.

▲ 교사. 사진=gettyimagesbank
▲ 교사. 사진=gettyimagesbank

노동조합 활동 역시 어렵다. 하려면 할 수 있으나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교사는 정당활동과 노조활동을 할 수 없게 함으로써 교사의 노동환경을 제도적/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유는 교사는 정치적이여서는 안되고 중립적이여야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정치적인 조치가 없을 정도로 정치적인 조치다.

교사가 처한 현실은 복합적이다. 과중한 행정업무, 보호장치 없이 매일 마주하는 학생과 관련된 민원을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하는 현실, 교사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교감교장은 상위기관에 보고하기만 하면 되고 해당 교사가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 교사의 역할은 늘어나지만 학령인구수가 줄어든다며 교원을 감축하는 국가, 줄어든 교사의 몫을 감내해야하는 남겨진 교사들의 부담감, 공교육의 역할은 오로지 대학을 보내는 것밖에 없는데 학생들과 양육자들은 학교 교사가 아니라 사교육 강사들을 신뢰하는 현실. 교사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A교사가 사망한 사건 이후,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 괴물이 된 양육자들)’의 개념까지 소개되며 프레이밍이 시도되고 있다. 교육현장의 어려움에 논의가 이어지면서도 잠재적 악성민원인 쯤으로 프레이밍되고 있는 학부모에 대한 비난역시 크다. 사회적으로 성역할고정관념에 의해 부여되는 양육에 대한 책임은 여성양육자에 부여된 까닭에 ‘맘카페가 없어져야 한다’며 ‘맘충’으로 낙인된 여성양육자를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한다.

탓하기 손쉬운 대상이 등장할때, 더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문제는 숨는다. 국가는 A교사의 죽음을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렸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한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역시 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가해자로 소환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에 큰 차이가 없다는 통계가 공개된 바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려움에도,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는 빠르게 논의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함께 학부모 악성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을 직접받지 않게 하자는 의견이 있다. 당장해야 할 조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인지하고 명명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숨진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교사의 유가족과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이 7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교육청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교사노동조합
▲ 숨진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교사의 유가족과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이 7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교육청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교사노동조합

교사가 처한 어려움의 복합적인 상황은 공교육의 총체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대학을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교를 떠나려는 학생들, 과중한 업무로 수업준비를 충분히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민원에 시달리다 고소고발되고 학교를 떠나있어야 하는 교사들, 이를 지켜보며 '교사를 그만두는 게 현명한 것이다'라며 교직을 그만두는 교사들이 있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다니고 싶어하지 않는 학교가 됐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공고한 학력학벌중심주의 사회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사회는 공교육을 빠르게 망가뜨렸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시장이 커지며, 선행학습을 다 하고 온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학교는 학생이 갇혀있는 곳이 되었고, 교사는 학생에게 생활기록부만 잘 써주면 되는 존재가 되었다. 교사는 학교에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과중한 업무와 민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현재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교육의 정상화다. 이를 위한 전제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어떤 직업을 갖든 안전하게 일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재분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이 모두를 먹여살릴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한때 유의미했을지 모르나 더이상 실재하지 않는 신화라는 점이 이미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 신화에 계속 갇혀있어서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란 불가능해진다. 학교는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훈육과 통제를 넘어선 함께 잘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정체성을 가진 존재든 누구나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할때 이 사회는 비로소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세상이 가능할때, 교사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의 권리 역시 보장이 가능할 것이며 ‘말세다’라는 한탄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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