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영화 ‘좋.댓.구’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제일 좋았던 영화배우가 누구예요?”

영화기자 생활을 한 뒤 자주 받는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고심하고, 대부분 말을 아끼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배우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끽 해봐야 한두 시간, 개인사를 흉허물없이 터놓은 자리도 아니고 작품이라는 명확한 소재를 두고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만남일 진데 ‘그 사람은 이렇더라’ 류의 평가 자체가 조심스러워서다.

그럴 땐 요령껏 객관적인 사실관계 몇 가지를 전하곤 한다. 예를 들면 봉준호 감독은 ‘옥자’ 개봉 당시 주어와 서술어를 마치 ‘문장 쓰듯’ 분명하게 지켜 말하는 준수한 언변을 보여줬다거나, 염정아 배우는 ‘장산범’ 홍보 당시 절친인 문정희 배우가 보내온 사과를 들고 와 기자들과 격의 없이 나누어 먹었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 정도만 말해도 듣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그들의 면모를 상상하고 가늠할 수 있어, 대체로 즐거워한다.

유튜브를 보다가 종종 화들짝 놀라는 건 그래서다. 유명 배우나 연예인을 직접 대면한 이들도 결코 쉽게 알기 어려운 내밀한 소문을 기정사실인 양 ‘충격!’, ‘실화!’ 류의 말머리를 달아가며 강조하거나, 마치 직접 옆에서 목격한 것처럼 누구와 누구의 불화를 자세히 묘사하며 심판자를 자처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타인의 평판에 심대한 지장을 주는 게시물이 유튜브 추천콘텐츠로 선정되기에 이르고, 금세 몇십만 조회수를 확보한다. 모두 영상을 올린 이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런 심란한 사회 분위기를 교묘하게 역이용한 주인공의 블랙코미디 영화가 12일 개봉하는 ‘좋.댓.구’다. ‘좋아요, 댓글, 구독 설정’을 외치는 수많은 유튜버의 고정 멘트를 영화 제목으로 차용했으니, ‘당신들이 나를 주목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주인공의 태도를 일찌감치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영화 '좋.댓.구' 포스터.
▲ 영화 '좋.댓.구' 포스터.

이야기는 한때 유명했던 아역배우 출신 유튜버(오태경)에게서 시작된다. 구독자의 궁금증을 무조건 해결해 준다는 ‘노예 유튜버’로 관심 끌기에 골몰하던 그는 광화문에서 몇 달째 침묵시위를 벌이는 남자의 사연을 알아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흡사 ‘그것이 알고싶다’ PD와 같은 열정의 추적 취재를 감행한다.

‘충격!”, ‘실화!’ 알고 보니 피켓남은 무고한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고통받고 있다는데… 주인공은 피켓남의 여동생과 해당 사건의 변호사를 섭외했다며 자기 인터넷 방송에 출연시키고, 경마중계 보듯 관전하던 구독자들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상황에 과몰입하기 시작한다. 뜨겁게 달궈진 인터넷 여론이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되자 시사방송 프로그램까지 전말 취재에 나선다.

유튜브 좀 봤다는 독자라면, 이쯤에서 반전을 예상해야 마땅하다. 이건 모두 ‘가짜’다. 관심 좀 받으려던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이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가 밀어주려는 신인배우를 교묘하게 띄워주기 위해 작정하고 설계한 자작극이다. 특정인의 이해관계에만 복무하는 거짓콘텐츠에 꼭두각시처럼 휘말려 다니며 비난과 옹호를 적극적으로 구사해 준 구독자 덕(?)에, 주인공은 뜨거운 관심과 소속사 배우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영화 '좋.댓.구' 스틸컷.
▲영화 '좋.댓.구' 스틸컷.
▲ 영화 '좋.댓.구' 스틸컷.
▲ 영화 '좋.댓.구' 스틸컷.

반문해야 한다. 그럼, 구독자에겐 뭐가 남았지? 블랙코미디 장르에 걸맞게 ‘좋.댓.구’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작품이지만, 이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마냥 속 편하게 깔깔 웃기만은 어렵다.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악랄한 이들뿐만 아니라,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심지어는 스포츠 즐기듯 열광하는 이들의 ‘환장 콜라보’까지 날카롭게 묘사한 까닭에, 개운치 않은 묵직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다.

영화 말미, 주인공이 퍼뜨린 가짜뉴스를 신랄하게 저격하고 비판하던 또 다른 시사 유튜버의 진짜 정체까지 드러나면 관객은 기어코 ‘헉’ 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내가 믿었던, 내가 즐겼던 그 유튜버의 이야기는 진짜였을까? 자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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