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었다. 일하던 회사 공장에 불이 나서다. 회사 과실이 명백한 산업재해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건 당일 CCTV를 공개하지 않는 까닭에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몇 년을 허비했다.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흐르는 동안 처지가 똑같아 보이던 유가족들 사이에 ‘입장차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날 관리자인 남편과 함께 목숨을 잃은 젊은 직원들은 비정규직이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여읜 부모들이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면서, 아내 혜정(김선영)은 졸지에 ‘청년을 죽게 내버려 둔 무책임한 중간관리자의 아내’가 돼 버렸다. 혜정 또한 소중한 가족을 잃은 피해자 중 한 명이기에 회사에 맞서는 투쟁에 일단 함께하기는 하지만,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편의 결백을 믿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알아 외롭고, 괴롭다.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5월31일 개봉한 가성문 감독의 한국영화 ‘드림팰리스’는 동일한 피해자처럼 보이던 이들 사이에 미묘하지만 분명한 입장차이가 생겨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때로는 그 입장차이가 쌓이고 쌓여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회사보다도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이야기가 드러내는 모순이자 비극이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혜정은 회사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투쟁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 돈으로 근처 미분양 아파트 입주권을 사고, 이제 막 고3이 된 하나뿐인 아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복잡해지고 만다. 혜정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투쟁을 포기하고 합의금을 받기로 한 수인(이윤지)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입주한 아파트에 들어올 것을 권한다.

오랜 기간 미분양에 시달리던 시행사는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서 ‘파격 할인분양’ 카드를 들고 나선다. 혜정이 산 아파트를, 수인은 30%나 싼 값에 계약하게 된 것이다. 남편 목숨값과 다름없는 돈으로 눈물을 머금고 산 아파트가 헐값에 팔려나가자 혜정의 심경은 복잡해진다. 자신보다 앞서 입주한 사람들이 항의 플래카드를 걸고 싼값에 분양받은 사람들의 이사를 강경하게 막아대자, 혜정도 그 대열에 서기로 마음먹는다. 아파트 문주 바깥에서는 어떻게든 짐을 옮겨오려는 수인의 이사차가 버티고 있음을 알면서도.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컷.

산업재해 사고의 피해자들끼리 감정싸움을 벌이던 농성 현장에서 운을 뗀 ‘드림팰리스’는 어느 순간 미분양 아파트 분양 피해자들끼리 벌이는 몸싸움 현장으로 이야기를 옮겨가지만, 이야기가 전하는 본질은 같다.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회사나 시행사는 어디론가 쏙 빠진 채로, 피해를 본 사람들끼리만 모여 박 터지도록 싸우면서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다가 아물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내고 만다는 것이다.

서로 상종 못 할 것처럼 으르렁대게 하던 그 입장차이가 부질없었음을 알게 되는 건, 시간이 한참 더 흐른 뒤다. 기업은 결국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투쟁은 마무리된다. 혜정은 뒤늦게 공개된 CCTV를 통해 남편은 관리자로서 불을 끄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다른 유가족들과 인연을 끊어버린 탓에 함께 기뻐할 사람은 없다. 부동산 경기 변화에 따라 아파트 미분양 사태도 자연히 끝을 맺는다.

▲ 영화 ‘드림팰리스’ 포스터.
▲ 영화 ‘드림팰리스’ 포스터.

영화 말미, 아마도 자기보다 한참 뒤에 영문 모르는 채 이사를 들어왔을 이웃이 건넨 이사떡을 받아 든 혜정은 그 누구도 없는 식탁에 홀로 앉아 그 떡을 씹어 삼킨다. 지난 시간 내 주변과 나를 싸우게 했던 사건들이 이제 더는 아무런 잡음도 내지 못하게 된, 그 고요한 시간에서 혜정은 생각한다. 우리에겐 입장차이가 있었고, 수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뿐이었다고.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