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야 한다. 그 후엔 언어도 문화도 낯선 다른 나라에서 차별을 감내하고 정착한다. 운이 좋으면, 살아남는다.

부유한 한국에서 태어난 요즘 10대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일테지만, 오래 전부터 그런 상황에 놓인 전 세계의 청소년들은 줄곧 존재해왔다. 올해 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남우조연상을 탄 베트남계 배우 키 호이 콴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이면에 “보트 피플”의 아픔이 있다는 눈물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어린 시절 베트남전쟁을 피해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건너 타국 홍콩, 미국 등지로 피신해 정착해야만 했던 비통한 개인의 역사다.

1970년대에 그친 이야기가 아니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국가간 전쟁, 민족간 내전, 경제 붕괴로 인한 일자리 없음 등의 이유로 많은 청소년이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쫓기듯 향한다. 대표적인 게 ‘마그레브’로 통칭되는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의 아이들이다. 배를 타고 지중해만 건너면 유럽에 도착할 수 있으니 일단 생존을 위해 몸을 싣고 본다. 물론 유럽 국가의 까다로운 난민 인정 자격을 충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경우 미등록이민자로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노출되고, 때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건'의 당사자도 된다. 10일 개봉하는 다르덴 형제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가 바로 그런 아이들의 비극적인 삶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 영화 ‘토리와 로키타’ 포스터.
▲ 영화 ‘토리와 로키타’ 포스터.

‘토리와 로키타’는 두 청소년 주인공의 이름이다. 아프리카 출신 11살 소년 토리(파블로 실스)와 16살 소녀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배를 타고 벨기에로 넘어왔다. 배에서 처음 만난 두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를 나눈 사이보다 더 깊이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어린 토리가 상대적으로 쉽게 체류를 허가받은 것과 달리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정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로키타는 어쩔 수 없이 마약을 재배하는 불법 시설에 갇혀 일한한다. 예견된 불행이 순차로 일어나는 시점이다. 불법 일자리를 알선한 남자는 그를 성추행하고, 자신을 유럽행 배에 태워준 브로커들은 ‘대가를 내놓으라’고 독촉한다.

소외된 주변인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평생 연출하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거장 다르덴 형제는 이번 작품에서도 동정어린 시선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연출은 철저히 배제하고, 그저 냉정하게 두 아이의 생존 분투를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타락한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도 토리와 로키타는 힘을 합쳐 살아남으려 한다. 압권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된 로키타의 노동 현장이다. 창문 하나 없이 완전히 밀폐된 마약 재배 시설에 갇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리화나 잎에 물을 주고 환풍시설을 정비하는 로키타의 모습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답답해져오는 암담한 고통을 안긴다.

▲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지난달 27일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은 “수백 명의 외국인 미성년자가 유럽으로 넘어온 뒤에 알게 모르게 음성적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메가폰을 잡았다고 말이다. 벨기에에서 ‘가정부’가 돼 돈을 벌겠다던 로키타의 삶 역시 거리 위의 비명횡사로 지독히 허망하게 마무리된다. 누구하나 기억하지 않는 현실의 죽음을 영화로 옮겨온 것이다. 아마 올해 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키 호이 콴이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자신의 난민 경험을 고백했던 건, 힘들게 이뤄낸 자기 성공에 대한 벅찬 기쁨임과 동시에 '자신처럼 운이 좋지 못해서' 비참한 삶을 살거나 일찍이 세상을 뜬 '토리와 로키타'들을 향한 아픔의 공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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