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의 추경안 심의에 사활이 달린 TBS의 정태익 대표가 과거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비롯한 시사 프로그램이 공정하지 못했다면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TBS는 출연진 균형성 등을 심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드는 한편, 당분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TBS는 12일 서울 마포구 TBS 라디오공개홀에서 ‘2023 TBS 혁신안 발표: 공정성 강화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발표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TBS는 이날 혁신안에서 △대표이사 및 부서장 업무추진비 전액 삭감 △간부 직원 연봉 4% 반납 △전 직원 연장근로 제한(해당 예산 전년 대비 59% 감액) △신규채용 전면 중단 및 5년 내 정원 20% 감축 등 경영자구책을 내놨다.

TBS “정치적 편파 논란으로 공정성 훼손...출연제한심의위 신설”

방송 관련 혁신안의 주된 키워드는 ‘공정성’이다. 이날 정태익 대표가 가장 먼저 한 말도 “최근 저희는 정치적 편파 논란으로 인해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을 훼손하며 시민 여러분에게 큰 실망을 안겨드렸다. 시사 프로그램에 치우친 나머지 시민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지 못했다. 편성의 쏠림 현상 뿐 아니라 한 특정프로그램에 예산을 과하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 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경우 전체 FM 라디오 예산 4분의1을 차지하며 전체 채널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시민 여러분의 따끔한 비판을 귀담아 듣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 대표는 이어 “방송 공정성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지난 집행부(경영진)의 본부장, 실장을 모두 교체했다”며 “공정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2023년 6월12일 서울 마포구 TBS 라디오 공개홀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기 위해 모인 정태익 대표 등 임원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TBS 시민의 방송' 생중계
▲2023년 6월12일 서울 마포구 TBS 라디오 공개홀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기 위해 모인 정태익 대표 등 임원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TBS 시민의 방송' 생중계

TBS는 향후 방송통신위원회 등 감독기관으로부터 법정제재를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방송인·정치인 출연을 규제하고자 ‘방송출연제한 심의위원회’를 신설해 “사회자 선정의 균형성을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 직원 대상으로는 “제작 가이드라인 및 보도 준칙 교육을 의무화해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방송출연제한심의위가 구성되고 콘텐츠심의팀이 대표 직속으로 만들어지면서 방송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것 같다, 서울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송을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정 대표는 “출연제한 위원회는 타 방송사에도 있다. 제가 33년간 근무한 SBS에도 있다”며 “방송에 대한 통제나 제한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 시선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전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이어 “시장(오세훈 서울시장)이 제게 한 말씀이 있다. 내가 만약에 한 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원했으면 당신 같은 사람을 이 자리에 추천 했겠나, (최종) 3인 후보로 올라갔을 때 용인을 했겠는가라는 말이다. 편향된 방송을 앞장서서 하라는 건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라 말했다.

‘방송출연제한심의위는 서울시장이 바뀌면 폐지되거나 바뀔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공정성을 지키는 부분은 보수든 진보든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공정성에 대한 고민과 염려, 개선 의지들이 구성원들 사이에 뿌리 깊이 내리고 체화되면 어떤 압력에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고 했다.

▲2023년 6월12일 서울 마포구 TBS 라디오공개홀에서 정태익 TBS 대표가 2023년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TBS 시민의 방송' 생중계
▲2023년 6월12일 서울 마포구 TBS 라디오공개홀에서 정태익 TBS 대표가 2023년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TBS 시민의 방송' 생중계

시사라디오 사라지는 TBS...서울시의회 추경안 심의 결과는

TBS의 라디오·유튜브 분야 혁신안에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수차례 언급됐다. 고민석 라디오제작본부장의 경우 라디오 95.1FM 채널 개편 방향으로 “기존에 공정성 논란을 빚었던 시사 프로그램이 편성됐던 자리에 시민의 삶에 위로와 기쁨을 드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출근길에는 정보 오락성 ‘인포테인먼트’, 퇴근길엔 올드팝과 가요 기반 음악 프로그램 등을 편성한다는 계획이다. 

고 본부장은 ‘시사프로그램 원하는 청취자를 위한 프로그램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거다. 김어준이나 신장식 같은 DJ들이 TBS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어떻게 편성하느냐. 저희 PD들의 회사 가이드라인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재교육, 팀장과 저를 포함한 본부장의 데스킹 능력 등 다양한 조건이 성숙될 때까지는 시사프로그램을 편성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TBS는 채널별 혁신 자료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 폐지 후 채널 점유율이 2위에서 8위로 하락한 FM의 경우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채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시민 소통을 기반으로 재미와 정보가 공존하는 인포테인먼트 채널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TBS 전경. 사진=TBS
▲TBS 전경. 사진=TBS

이처럼 TBS가 이전 경영진 체제의 TBS를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반성문을 밝힌 것은, 서울시의회가 심의 중인 73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TBS는 지난해 여당(국민의힘)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의 TBS 지원 근거를 폐지한 뒤로 사실상 존립 위기를 겪어왔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TBS 추경 예산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추경안에 대해 “진인사대천명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며 “무책임하게 느껴지겠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혁신안이 마련되기까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가 실수한 건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라며 “저의 지나치게 온건한 부분, 의회가 됐든 시민들이 됐든 우려의 눈으로 TBS를 바라보고 있다면 제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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