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달라졌다. 대규모 인사에 이어 내부에서 연이어 논란이 되는 사건이 불거졌다. 언론재단은 언론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임에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 기조에 발맞춰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개소하고, ‘대통령 관련 오보’를 이유로 기자 해외연수를 취소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언론재단 구성원들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미디어오늘.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미디어오늘.

새 본부장 인선 보름 만에 대규모 인사개편

언론재단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 3월 신임 본부장 인선 이후다. 이전까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언론재단 임원을 맡고 있었다. 문체부는 정권현 전 조선일보 사회부 선임기자를 정부광고본부장, 남정호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를 미디어본부장, 유병철 전 연합뉴스TV 전무이사를 경영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언론재단은 새 이사진이 오고 보름 뒤 대규모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핵심은 실·국장 인선이었다. 현직 실·국장 중 3명이 일반 팀원으로 발령받았다.

이 인사를 두고 언론재단 내부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경영진은 노동조합에 “젊고 혁신적인 인재를 발탁하여 조직 내에 쇄신의 바람을 일으킬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언론재단 노동조합은 4월1일 발표된 인사 결과를 두고 “만우절 장난이길 바랐을 만큼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재단 직원 A씨는 “정권이 바뀌면 그런 인사는 늘 있어왔다. 실·국장 교체를 원하는 내부 요구도 있었다”면서도 “통상 재단 인사는 7월과 1월 실시되는데, 4월에 인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언론재단 직원 B씨는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인사는 원칙이 있고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었다”며 “(이번 인사로 인해) ‘일 열심히 하면 뭐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다만 언론재단 직원 C씨는 “같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보직을 맡은 측면이 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기회도 없었다. (보직자들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자리가 안 생기는 기존 운영 방식이 크게 잘못돼 있었다”며 이번 인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고 했다.

▲지난달 29일과 15일 발행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레터 언박싱.
▲지난달 29일과 15일 발행된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레터 언박싱.

언론재단 뉴스레터에 등장한 대통령 외교 성과… “할 말은 많지만”

본부장, 실·국장 인사 이후 언론재단 운영 기조가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언론재단 직원 D씨는 “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언론재단이 이전과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전 정권과 달라지는 움직임 정도는 다 인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언론재단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言박싱’이 대표적이다. 언론재단은 최근 발행한 뉴스레터 헤드라인에 대통령 외교 성과와 관련된 이야기가 두 차례 나왔다. 언론재단은 최근 대통령의 외교 성과에 대한 포럼·토론회를 2차례 개최하고, 이를 지난달 29일과 15일 발행한 뉴스레터에서 소개했다. 언론 진흥·정책과는 큰 상관이 없는 포럼·토론회였다.

미디어오늘이 2021년 5월6일부터 발행된 54건의 뉴스레터 ‘言박싱’을 살펴본 결과, 정부의 외교적 성과나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다수 뉴스레터는 언론재단의 동정과 연구결과, 저널리즘 관련 토론회 내용이 주를 이뤘다. A씨는 “기조가 변했으니 외교 관련 소식이 첫 소식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당연히 (본부장 인선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뉴스레터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언론재단 관계자는 “특별히 어떤 기준을 가지고 취사선택하는 개념은 아니다”라면서 “팀별로 들어온 주제들을 전부 취합한다. 순서는 2주 동안 있었던 행사가 1순위고, 그 다음 공모사업, 민간 신청사업 등 순서다. 행사가 맨 위로 올라가는 것은 동일한 기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언론재단 관계자가 설명한 기준이 항상 준용되는 건 아니다. 언론재단은 지난해 6월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이후 열린 한미 언론 합동 토론회를 세 번째 소식으로 전했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뉴스레터는 외부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임원회의에 보고한다”면서도 “기준에 변동이 있거나 특별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가짜뉴스 신고센터 개소’ 논란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시작이었다. 윤 대통령은 4·19 기념식에서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했고, 문체부는 다음날 가짜뉴스를 퇴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중심에는 언론재단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가짜뉴스 카드뉴스.
▲문화체육관광부 가짜뉴스 카드뉴스.

문체부는 언론재단 내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언론재단이 가짜뉴스에 피해 입은 국민들에게 구제 상담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선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수적인 상황. 하지만 언론재단과 문체부는 이러한 결정은 내리지 않은 채 5월9일 신고센터를 설립했다.

언론재단 노동조합에 따르면 ‘가짜뉴스 신고센터’는 4월1일 발표된 인사만큼이나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조직 내 별도 기구를 만드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구성원은 물론 노동조합과 사전 상의도 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조합은 언론보도를 통해 신고센터 설립 사실을 알게 됐다. ‘가짜뉴스’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자고 주장해 온 언론재단이 신고센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센터가 개소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외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언론재단은 5월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짜뉴스 신고센터 현판식’을 개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아직 유의미한 실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위탁운영을 맡길 법무법인 역시 선정되지 않았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최근 시사IN에 기고한 <가짜뉴스 현상을 언론만의 문제라고 여길 때> 칼럼에서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 피해 신고·상담센터를 언론 지원, 연구 및 미디어 교육을 주 업무로 하는 언론진흥재단에 개소한 것도 ‘가짜뉴스=언론의 문제’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가짜뉴스는 언론이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언론이 잘해야 하지만 언론만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 언론만이 가짜뉴스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범기영 KBS 기자 해외연수 취소 사건도 큰 논란을 불러왔다. 범 기자는 언론재단 지원으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 연수를 갈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범 기자가 윤 대통령 한·일 정상회담 당시 방송에서 “일장기를 향해서 윤 대통령이 경례하는 모습을 봤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KBS는 방송 당일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언론재단은 연수 취소를 강행했다. 이를 두고 언론재단 전직 직원들은 미디어오늘에 “있어서는 안 될 일”, “말이 안 되는 조치”라고 입을 모은 바 있다. B씨는 “내부에서도 ‘연수 취소는 과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다 묵살됐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했다.

▲ 사진=Gettyimages. 편집=안혜나 기자
▲ 사진=Gettyimages. 편집=안혜나 기자

지난 정권에서 만든 정부광고 대체 지표는 폐지 수순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들이 폐지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광고 대체 지표인 열독률 조사가 대표적이다. 언론재단은 4월18일 ‘2023 언론수용자 조사’ 입찰공고를 취소했는데, 이 사업에는 열독률 조사도 들어있었다. 한국ABC협회 부수 조작 의혹 사건 이후 만들어진 정부광고 대체 지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언론재단은 ‘2023 언론수용자 조사’ 입찰공고를 다시 올렸는데, 조사 표본이 5만8000명에서 5000명으로 줄었다. 또 기존 제안요청서에는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광고 지표를 만들겠다는 공지가 있었지만, 새로 올라온 제안요청서에는 정부광고 지표 관련 언급이 없었다. 언론재단 직원 E씨는 “전 정권에서 (기존 정부광고 지표에 대한) 대안을 만들었던 건데,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광고 대체 지표를 폐지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내부 의견도 있다. C씨는 이번 폐지 수순에 대해 “광고 쪽에서는 바로잡기가 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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