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심의를 다룬 조선일보 기사 제목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심의를 다룬 조선일보 기사 제목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는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 대한 접속을 차단해 달라는 국가정보원의 요청을 매번 거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조선일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앞서 조선일보는 3일 <[단독] 국정원의 北 사이트 차단 요청, 방심위가 번번이 심의 거부> 기사를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북한 체제 및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게시물 심의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일성 찬양 웹사이트 차단 거부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며 정연주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국민의힘이 이전 정부에서 선임된 기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심의거부 보도’가 활용됐다.

방통심의위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 6명과 야당 추천 위원 3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정연주 위원장과 야권(구 여권) 추천 위원이 다수인 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때도 줄지 않은 국가보안법 심의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방통심의위가 북한 및 김일성 일가 찬양 관련 심의를 ‘매번’ 또는 ‘번번이’ 거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방통심의위의 국가보안법 위반 심의 내역을 확인한 결과 정연주 위원장 체제인 2022년에만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2071건에 시정요구(삭제 또는 차단 결정)를 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시정요구 현황. 2012~2017년은 국민의힘 집권기 방통심의위, 2018년부턴 민주당 집권기 방통심의위다. 자료=방송통신심의위원회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시정요구 현황. 2012~2017년은 국민의힘 집권기 방통심의위, 2018년부턴 민주당 집권기 방통심의위다. 자료=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도별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시정요구 추이를 보면 △2013년 699건 △2014년 1137건 △2015년 1836건 △2016년 2570건 △2017년 1662건 △2018년 1939건 △2019년 1955건 △2020년 2119건 △2021년 1795건 △2022년 2071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부터 연 1700건 이상 시정요구를 했다. 박근혜 정부 평균치와 비교해도 줄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와 관련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통상 국정원에서 요청한 내역은 거의 다 시정요구 결정을 해왔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사에선 전반적인 심의 현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의 거부’ 언급 사례 살펴보니

방통심의위 입장을 종합하면 조선일보가 문제로 지적한 심의 거부 사례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방통심의위와 국정원의 입장이 엇갈린 경우도 있고, ‘각하’ ‘해당없음’ 등 결정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

조선일보는 방통심의위의 심의 거부 사례로 △친북성향 생물학자의 SNS게시글 △친북성향 인스타그램 계정 △이적표현물 영화 업로드한 조선영화 사이트 △김일성 일가 우상화 내용을 담은 김책공대, 조선관광 사이트를 언급했다. 또한 민주노총이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노동단체가 보낸 반미투쟁선동 내용이 담긴 연대사를 ‘해당없음’ 결정한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모두 ‘심의거부 사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친북성향 생물학자의 SNS 게시글은 방통심의위의 담당 부서에서 최근 국정원의 심의 요청 내역을 확인했지만 파악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국정원에 공문을 보내 관련 심의 요청을 언제 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계정의 경우 차단한 적 있음에도 언론에는 심의 거부 사례로 언급됐다. ‘조선관광’사이트는 심의 당시 접속이 되지 않아 각하 처리했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는 주소를 차단하는 방식인데, 접속이 되지 않을 경우 내용을 파악할 수 없어 각하 결정을 한다. ‘김책공대’ 사이트는 국가보안법으로 판단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심의 결과 ‘해당 없음’ 결정했다. 국가보안법 판례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을 전제하는데 이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각하’나 ‘해당 없음’은 심의 결과 내려진 조치이기에 ‘심의 거부’ 사례로 볼 수 없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북한노동단체 연대사는 여야 추천 위원 2:3으로 ‘해당 없음’ 결정이 나왔다. 야권(구 여권) 위원들이 다수였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없음’을 결정한 맥락이 있다. 방통심의위는 심의 과정에서 두 로펌에 법률자문을 구했는데 ‘시정요구’와 ‘해당없음’으로 의견이 갈려 ‘시정요구’를 할 경우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 연대사가 통일부 승인을 받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야권 추천으로 방통심의위원을 지냈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요청한다고 모두 제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독립적으로 심의하는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심의거부’ 아닌 ‘과잉·졸속 심의’ 지적도

오히려 국정원이 심의 요청을 하면 방통심의위가 대부분 수용해온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부터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어서만은 아니다. ‘불법’ 판단은 사법부가 엄밀한 절차를 거쳐 판단해야 하는데, 방통심의위는 사법부가 아닌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임의로 불법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2015년 “국가보안법 7조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검열의 삼각동맹(수사기관, 방통위, 방통심의위) 속에서 이른바 ‘불법게시물’을 자의적으로 지정하고 삭제를 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차단 화면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차단 화면

통신심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일례로 4월24일 방통심의위 통신심의 회의록을 보면 3000여건의 게시물을 심의했는데 회의는 26분 만에 끝났다.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 24건도 일괄 시정요구 조치를 받았다. 5명의 위원 가운데 윤성옥 위원만 국가보안법 심의 안건에 입장을 냈고 다른 위원들은 발언하지 않았다. 복수의 전 방통심의위원들에 따르면 통신심의의 경우 안건이 많아 위원들이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졸속·과잉 심의로 재판에서 패소한 사례도 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방통심의위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북한IT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에 차단을 결정했다. 노스코리아테크는 오픈넷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고 2심 법원은 사이트가 북한을 찬양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재 취소 판결을 해 확정됐다. 프리덤하우스는 2017년 한국을 인터넷 부분자유국으로 분류하며 노스코리아테크 사례를 언급했다.

오히려 현재도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이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차단 조치되는 면이 있다. 윤성옥 위원은 4월24일 회의에서 안건에 오른 한 게시물이 국내 언론도 다룬 북한언론 인용 내용이고, 2년 전에 올라온 조회수가 8회에 그친 게시물이라 제재의 실효성이 없다며 ‘해당없음’ 의견을 냈으나 다수의 찬성으로 시정요구가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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