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민단체가 제작한 ‘사이트 우회 접속’ 안내 게시글을 삭제하라고 시정요구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30일 정보인권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가 제작한 ‘사이트 우회접속’ 안내를 담은 ‘디지털 보안 가이드’ 게시글이 정보통신 심의규정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라고 판단해 삭제(시정요구)를 결정했다.

방통심의위는 진보넷의 게시글이 “(방통심의위가) 불법정보라고 판단해  차단된 사이트에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로 하여금 접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체적인 우회접속 방법 등을 제공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제재 사유를 밝혔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디지털 보안 가이드' 갈무리.
▲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디지털 보안 가이드' 갈무리.

진보넷은 지난 8일 방통심의위에 이의신청서를 내고 시정요구 결정에 반박했다. 진보넷은 “합리적 근거도 없이 ‘국가보안법’ 등을 이유로 사이트를 차단할 경우 이를 우회하여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며, 표현의 자유와 접근권을 수호하기 위해 검열을 회피할 수 있는 기술적인 수단을 공유하고 홍보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진보넷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우회 접속 방법”이라며 “범죄자들이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기술의 사용 자체를 막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일뿐더러 심의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진보넷은 해당 게시글에 방통심의위의 잘못된 심의에 대한 비판이 담긴 점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 멀쩡한 영국인 사이트 차단, 방통심의위 사과도 없어]

[관련기사 : 멀쩡한 사이트 ‘국보법 위반’ 차단한 심의위, 법원이 제동]

진보넷 사이트의 해당 페이지에는 방통심의위의 ‘노스코리아테크’ 사이트 차단 사례를 지적하며 차단된 사이트를 우회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2016년 방통심의위는 영국 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 가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국가정보원의 신고에 따라 접속차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노스코리아테크’는 영국인 기자가 운영하는 북한 ICT 전문 웹사이트로 북한 체제를 고무하거나 찬양하는 곳이 아니다. 결국 방통심의위는 법원에서 패소해 차단 조치가 취소됐다.

진보넷은 “노스코리아테크에 대한 귀 기관의 접속 차단 처분은 2심에서도 위법 판결이 내려졌고 이후 귀 기관은 상고를 포기했다”며 “귀 기관과 다른 정부부처의 검열로 인해 차단돼 접근할 수 없는 정보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해왔고, 이에 표현의 자유와 접근권을 수호하기 위해 본 단체는 검열을 회피할 수 있는 기술적인 수단을 공유하고 홍보해왔다. 그런데 귀 기관이 이 콘텐츠를 삭제하라는 시정요구를 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

그러면서 진보넷은 “귀 기관이 잘못된 결정을 굳이 강행하고자 삭제 명령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검열 기관으로서 귀 기관의 명성과 한국의 표현의 자유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방통심의위가 강제성을 갖는 방송심의와 달리 인터넷 게시글을 심의하는 통신심의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면서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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