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는 방송이 아니란다. 조선일보가 아예 사설 제목으로 KBS와 MBC를 “방송 아닌 정치 세력”으로 규정하고 나섰다(5월4일).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정치 행위”를 한다고 단죄한 근거가 흥미롭다. 윤석열의 미국 방문에 “심각한 편파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단다. 여러 단체를 늘어놓으며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를 앞세웠다. 사설은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마치 무슨 대표성이라도 있는 듯이 서술했지만 전혀 아니다. 지난 3월 창립할 때 공영방송 흔들기에 앞장선 박대출과 박성중을 비롯해 집권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 조선일보 5월4일 사설 ‘친야 117명에 친여 15명 부른 KBS·MBC… 방송 아닌 정치 세력’
▲ 조선일보 5월4일 사설 ‘친야 117명에 친여 15명 부른 KBS·MBC… 방송 아닌 정치 세력’

KBS와 MBC가 정치세력이라는 사설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무척 궁금했다. 언론이 아니라 정치세력이라는 말은 3대 신방복합체, 그 가운데 조선일보에 가장 어울리지 않은가. 방송을 정치세력이라 되술래잡은 다음날 신문을 보자. 1면 팔면봉에 “이재명, 어린이날 메시지에 ‘배신당하면 순수함 사라져’”라고 적은 뒤 곧장 “아저씨, 그런데 배신이 뭔가요?”라고 비아냥댔다. ‘팔면봉’은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연재물로 1면에 “중요한 뉴스 몇 개를 골라 아주 짧은 문장으로 촌평”하며 “촌철살인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칼럼이라고 자부한다. 독자들 반응도 예상대로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날에 그 많은 말 가운데 배신이라니… 정말 정서 결핍의 인간을 본다”라고 거침없이 쓴다. 하지만 이재명은 소년·소녀 시절에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나와 내 가족에게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내가 꿈꾸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저 또한 그랬다”며 “성실한 하루하루가 배신당하는 삶을 살다 보면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때 묻은 어른의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썼다.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함께 만들자는 호소다.

그 다음날은 고문 강천석이 “민주당에 ‘상식’과 ‘신뢰’가 동행하던 옛날이야기”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그는 지금의 민주당이 “기자로서 40년 넘게 가까이 또는 멀리서 지켜봐 온 옛 민주당 자식이나 손자가 아니다”라며 “옛 야당 지도자에겐 사적 또는 공적 인간관계에서 넘지 않는 어떤 선이 있었다. 그 바탕이 타고난 성품과 가정에서 닦은 소양”이라고 부르댔다. 민주당의 “입법과 정책 활동 초점은 항상 이재명 지키기”란다. 전형적인 조선일보 논리다. 얼핏 보면 마치 조선일보가 “옛날 민주당”에 긍정적인 보도라도 한 듯싶다. 하지만 아니다. 나 또한 기자 시절부터 40년째 지켜봤지만 민주당에 우호적인 조선일보 기사는 기억에 없다. 더구나 지금 민주당에 민생 입법과 정책이 없는 것도 전혀 아니다. 조선 신방복합체를 비롯한 언론이 모르쇠를 놓고 이재명 죽이기에만 골몰할 뿐이다. 총선을 겨냥해 민주당의 분열을 노리는 선동은 조선 신방복합체에 넘쳐난다.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조선일보는 두 공영방송에 대해 “정권이 바뀌면 간부진이 마치 여야 교대하듯이 바뀌곤 했다”며 “이번 경우 정권이 바뀌었는데 사장 등이 바뀌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다. 정권 따라 사장이 바뀌는 과거가 좋다는 뜻인가? 그러지 않아도 언론자유지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저널리즘 철학에 비춰보면 KBS와 MBC 뉴스는 과거와 견주어 성숙했다. 아직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조선을 비롯한 3대 신방복합체와 달리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그나마 두 공영방송이 최소한의 몫을 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고 있다. 그 공영방송을 ‘정치세력’이라 훌닦는 조선일보야말로 오래전부터 ‘정치세력’으로 자리하며 저널리즘을 망가트린 주범이다. ‘죽은 저널리즘’의 상징이 공영방송 죽이기에 눈 뻘겋다. 지금의 공영방송 수준마저 망가질 때 윤석열이 불러온 민생, 민주, 민족의 3대 위기는 마냥 커질 수 있다. 한국 언론을 죽이는 ‘정치세력’의 정체를 새삼 직시하고 경계할 때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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