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곳곳에서 기념 프로모션으로 분주하다. 승무원들에게 비키니를 입게 해 성차별로 논란을 빚었던 항공사는 비행기 티켓을 할인 판매하고, 성범죄에 악용되어온 판매금지 불법의약품을 인터넷에서 유통했던 회사의 백화점에서 “여성작가 특별전”을 연다. 유해화학물질로 극심한 복통, 생리불순, 부정출혈, 가려움증, 발진 등 갖가지 피해를 불러일으켰던 생리대 회사에서는 특가판매를 홍보하고, SPA 브랜드는 여성의 날 기념백을 출시했다. 이처럼 2023년 한국에는 여성의 날을 “여성이 –혹은 여성을 위해– 돈 쓰게 만드는 날”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세계여성의 날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되었다”– 조차 확인하지 않는 게으름과 얄팍한 상술이 결합한 결과다.

하지만,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차별을 악화시키고 있는 기업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반 뉴욕의 여성 의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3달러 정도의 박봉에 시달렸다. 이들은 낮은 임금, 긴 노동시간, 위험한 작업장, 성적괴롭힘과 사생활 침해 등에 더이상 참을 수 없었고, 부당한 조건을 바꾸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굶주리고 있다. 파업을 해서 굶어도 마찬가지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였다. 주요 요구는 주 52시간 노동과, 20% 임금인상이었다. 사장들은 불량배와 경찰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법원은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이 신과 자연의 섭리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벌금형과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파업으로 한 달 동안 체포된 노동자들만 723명에 달했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3개월여 동안 대열을 지켜냈고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1900년대 초 여성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서구권 여성들의 여성선거권 쟁취 투쟁, 러시아 여성들의 세계대전에 반대하며 생존권을 주장했던 대중투쟁이 바로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이다.

▲ 1914년 3월8일, 독일에서 게시된 국제 여성의 날 포스터. 사진=위키백과
▲ 1914년 3월8일, 독일에서 게시된 국제 여성의 날 포스터. 사진=위키백과

이러한 여성들의 투쟁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행사는 3월8일에 있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여성파업과 3·8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대회>이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2022년 임금협상을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지난 1년 동안 교섭, 시위, 파업, 농성 등 온갖 과정을 거쳤지만 덕성여대 총장은 학교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퇴직 인원 미충원’을 조건으로 내걸고, 강짜를 부리고 있다. 이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에게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는 여성파업에 돌입한다. 덕성여대의 파업투쟁은 한국 사회의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서 성차별과 비정규직 차별을 겪고 상황에서 단지 하나의 사업장의 일이 아니다. 이 투쟁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계기로 여성 노동자가 받는 저임금을 구조적인 차별과 착취의 문제로 보고 이를 공론화하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육체노동을 비하하며, 노동조합 혐오 발언을 일삼는 현 정부 아래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성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온몸으로 대학과 부조리한 세상의 차별과 모욕에 맞서는 싸움이다. 여성들이 받는 구조적인 저임금 문제를 제기하며 최저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대회도 함께 열린다. 대학생들은 불평등한 강의실을 거부하고 싸우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에게 배우는 성평등 강의실에 모인다.

지난 3월4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종각에서 열린 여성노동자대회에서 덕성여대 청소노동조합 윤경숙 분회장은 “덕성분회 조합원들의 2022년 1년은 일하면서, 싸우면서 마치 전쟁을 하는 것 같은 일상으로 투쟁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평균나이 64.5세인 저희 엄마들에게 직장일에 집안일과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조합 활동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제 삶에는 단 한번도 공짜가 없었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를 도와야하는 딸이었고,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장녀였고, 시부모님을 돌봐야 했던 며느리였고, 지금도 은퇴한 남편을 대신해 가정에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오랜 시간 집안에서 전업주부로 있다보니 막상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저희 또래 여성들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투쟁이 얼마나 더 피 말리는 처절한 싸움이 될지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지만… 저희 덕성분회 동지들, 하나로 똘똘 뭉쳐 투지 넘치게 싸워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집과 대학에서 쉬지 않고 계속 돌봄노동을 해왔지만, 가사노동은 무시당했고, 청소노동은 차별받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당당한 외침이다.

▲ 이광수 덕성여대분회 부분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희 (플랫폼C 활동가) 제공
▲ 이광수 덕성여대분회 부분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희 (플랫폼C 활동가) 제공
▲ 이광수 덕성여대분회 부분회장(왼쪽에서 2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희 (플랫폼C 활동가) 제공
▲ 이광수 덕성여대분회 부분회장(왼쪽에서 2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희 (플랫폼C 활동가) 제공

당일 여성노동자대회에서는 집회 마지막 행사로 유리천장을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고위공작자 93%가 남성이며, 국회의원 81%, 기초단체장 96%, 광역단체장은 100% 남성이다. 기업의 고위 간부인 이사의 여성 비율도 고작 4%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불평등한 유리천장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이 경력의 사다리를 올라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자처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덕성여대 자교 출신 최초 총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김건희 총장은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임에도, 여성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왜곡해 왔다. 이는 여성 개인이 “유리천장”을 부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다수 여성들의 삶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2018년 낸시 프레이저 등의 세계 여성운동가들은 여성파업을 건설하면서 작성한 <99% 페미니즘 선언>에서 “우리는 유리 천장을 부수고, 그래서 대다수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게끔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 전망 좋은 사무실을 차지한 여성 CEO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CEO와 전망 좋은 사무실이란 것을 없애 버리길 원한다.” 일갈하였다. ‘차별’을 규탄하고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다수의 여성이 자유와 자율권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경제적 제약을 없애고, 사회의 위계를 무효화하기 위한 여성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소수 여성 CEO에 맞선 다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그 어떤 행사보다도 세계 여성의 날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여성의 날을 기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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