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전시가 국회사무처에 의해 철거되며 검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시를 주관한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12일 사무처의 철거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윤석열 대통령이 상의를 탈의한 모습으로 김건희 여사와 칼을 휘두르는 그림, 언론사 건물이 폭파되는 그림, 전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기자들을 희화화한 캐리커처 등이 포함돼 있어 전시 내용 자체가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언론사 다수는 이런 논란에 ‘대통령 나체 그림 국회 전시’라는 키워드로 비판하고 있다. 다만 작품 평가와 별개로 국회의 일방적 철거는 검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1월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전시될 풍자 작품들이 기습 철거된 것과 관련해 "국회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1월9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전시될 풍자 작품들이 기습 철거된 것과 관련해 "국회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원 12명 “언론, ‘누드화’ 키워드로 자유침해 눈길 안 줘”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화예술특별위원장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주최로 ‘굿바이전 인 서울’ 표현의 자유 침해 기자회견이 열렸다.

굿바이전을 국회에서 주최한 국회의원 12명(강민정, 김승원, 김영배, 김용민, 민형배, 양이원영, 유정주, 윤미향, 이수진, 장경태, 최강욱, 황운하)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9일 새벽 2시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 회관에서 개막 예정이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전시 작품을 강제 철거했다”며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회는 헌법에 근거해 법을 만드는 곳이자 민의를 받드는 곳인데 그런 국회에서 초대형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이 자행된 것”이라 비판했다.

이어 “국회사무처는 작가와 주최단체, 주관자에게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다시는 국회가 헌법에 명시된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선 이번 전시에 상의 탈의를 한 대통령 모습을 담은 작품을 두고 ‘대통령 누드화’라며 검열을 정당화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은 “일부 언론은 ‘누드화’라는 자극적 문구만 보이도록 부각하며 대통령 누드화 논란으로 몰아가고 있고 표현의 자유 침해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며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권익과 심경을 살피는 언론은 많지 않고 그저 누드화, 나체라는 키워드만 옮겨댈 뿐”이라 비판했다. 해당 전시는 국회 밖에서 재개했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굿바이전 인 서울' 표현의 자유 침해 관련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굿바이전 인 서울' 표현의 자유 침해 관련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vs 인신공격과 혐오표현 의견 맞서…반복되는 논란

실제 언론사 다수는 전시에 비판적 논조다. 조선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정치를 풍자해도 그것이 전시할 만한 작품이 되려면 최소한의 예술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전시하려던 80여 점은 대부분 증오와 적개심의 배설 수준”이라며 “표현의 자유도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침해할 수는 없다. 기자 개인의 얼굴과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는 본인이 원치 않는 한 인권 침해다. 이 전시를 주관한 의원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10일 사설. 
▲조선일보 10일 사설. 
▲서울신문 11일 오피니언면. 
▲서울신문 11일 오피니언면. 

임창용 서울신문 논설위원도 11일 “윤 대통령이 옷을 풀어 헤치고 알몸으로 선 모습, 술병 옆에 누운 윤 대통령 위에 김 여사가 올라앉은 그림 등이 과연 표현의 자유로 용인돼야 할까”, “외려 예술을 빙자한 혐오와 저급한 인신모욕에 더 가까운 듯 싶다”고 썼다.

이같은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표창원 당시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국회 전시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나체 상태로 묘사한 ‘더러운 잠’ 그림이 걸려 논란이 됐고 표 전 의원은 당에서 당원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박근혜 대통령 나체 풍자 그림 전시된 의원회관 ‘시끌시끌’]

당시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해 풍자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원이 주최하는 행사에 전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고, 징계 결정 이후 표창원 의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성 혐오 문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여성계의 지적이 있었고,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표창원, 6개월 당직정지 결정에 “자숙하겠다”]

▲2017년 1월 현재 국회의원회관 1층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
▲2017년 1월 현재 국회의원회관 1층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

이런 논란은 민중예술이나 민중음악과 관련해 최근 달라진 대중 감수성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이어진다. 2021년 민중가수 백자가 발표한 ‘나이스 쥴리’와 같은 곡 역시 김건희 여사가 과거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미확인 주장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가 가수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남성권력 비판에 여성모욕” 비판 직면한 곡 ‘나이스 쥴리’]

다만 예술에 대한 평가는 관람 후 평가할 영역이며 국회사무처의 일방적 철거는 검열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두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는 12일 통화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란은 작품에 대한 평가와 연결돼 있다. 그런 평가는 전시가 열리고 대중에 평가를 받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대중 평가를 받을 기회도 없이 정부나 국회사무처가 일방적으로 전시를 철거하는 것이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이 활동가는 “민중예술이나 민중가요 등에서 일부 비판 받은 작품들이 있었다. 작품이 공개됐을 때 또 다른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했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며 “작품의 표현 방식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 비판을 받고 자성할 일인데, 철거와 같은 방식은 작품 평가와 별개로 검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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