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귀물이라는 장르가 유행하잖아요.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한 편의 회귀물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헌법재판소에 고발했던 것이 7년 전인데요. ‘아직도 변한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위원장인 김종휘 변호사가 10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서울시 서울도서관의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 사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서울시 서울도서관의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 사건이란 지난해 12월29일 서울시 서울도서관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이태원 참사’, ‘화물노조 파업’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한 전시작품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일이다. 

10일 기자회견에서 해당 전시를 준비한 김용재 자각몽 서점 대표와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시민단체 손잡고 등이 참석해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 서울도서관의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 사건을 규탄한다'라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 서울도서관의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 사건을 규탄한다'라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검열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면, 해당 전시에는 ‘이태원 참사’, ‘화물노조 파업’ 등이 언급돼있었고 서울도서관은 전시를 일방적으로 철거했다. 해당 전시는 2021년 11월 시민단체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해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동조합을 3대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 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공작을 펼친 행위, KT노동조합 선거에서 온건파가 당선되도록 개입해 공작을 펼친 사건을 다룬 모의법정 형식의 문화행사 ‘공개법정-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입니다’의 아카이빙 자료를 전시했다. 

철거 다음날 자각몽 서점 대표가 항의하자 서울도서관 측은 다시 전시물을 가져다 놓았지만, 그 다음날인 12월31일 다시 해당 작품을 다시 철거했다. 현재 전시는 복구되었으나, 전시물들 앞에 “본 전시는 서울시와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라는 안내 푯말이 세워졌다.

▲서울도서관의 서울아트책보고 전시에 참가한 '자각몽'의 전시 앞에 '서울시,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라는 팻말이 세워져있다. 사진출처= 시민단체 '손잡고' 페이스북. 
▲서울도서관의 서울아트책보고 전시에 참가한 '자각몽'의 전시 앞에 '서울시,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라는 팻말이 세워져있다. 사진출처= 시민단체 '손잡고' 페이스북. 

해당 전시를 기획한 김용재 자각몽 서점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서울 아트책보고에 들어간 것은 2021년 12월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한 후였고 입점한 후 너무나 기뻤다. 서울시가 예술책에 대해 진심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한다고 믿고 최선을 다해 서점을 운영해왔다”며 “서울 아트책보고와 작성한 계약서에 따르면 연1회 이상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기에 문화 전시를 하게 됐다. 지난해 유난히 갈등과 재난을 마주했던 것 같아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됐다”고 말했다.

김용재 대표는 “기후위기, 이태원 참사, 장애인 이동권 시위, 화물노조파업,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사회경제군사적 갈등과 재난을 마주했던 2022년을 뒤돌아보면서 전시를 준비했고 12월29일부터 1월14일 동안 전시될 예정이었다”며 “29일 오후 2시부터 전시를 시작했는데 3시쯤 전시 내용의 속 ‘노동’, ‘민주노총’ 단어가 언급된다는 이유로 전시를 취소, 변경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서점 대표 “모멸감과 수치심…이후 전시할 때 트라우마”

김 대표는 “저는 이러한 요구가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검열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일방적으로 전시가 철거됐고 지금은 본인들과 무관한 전시라고 공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전시는 서울아트책보고와 무관한 전시’라는 팻말을 보자 저는 엄청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이것은 예술 서점 자각몽에 대한 부당한 낙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다.

이어 “저와 서울 아트책보고는 계약 기간이 아직 2년 가까이 남아 있지만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향후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할 때 자기 검열의 가능성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고 타 예술 서점과의 관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며 “서울시가 지도감독하는 서울 아트책보고에 대한 신뢰도가 완전히 추락하여 앞으로 협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전시를 기획한 김용재 자각몽 서점 대표(왼쪽)와 '예술과 노동'  전시 기획자인 김진이씨(오른쪽)이 10일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검열사건과 관련한 진정서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출처=손잡고 페이스북. 
▲전시를 기획한 김용재 자각몽 서점 대표(왼쪽)와 '예술과 노동'  전시 기획자인 김진이씨(오른쪽)이 10일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검열사건과 관련한 진정서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출처=손잡고 페이스북. 

김 대표는 서울시 서울도서관의 사과와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예술은 아름다움과 유희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분야이기도 하다”며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단어와 표현을 문제 삼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려고 하는 이번 사건은 예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앞으로도 공공기관에서 펼쳐질 다른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명백하며, 정확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해당 전시 기획자인 김진이 전시기획자는 “노동을 다루고 ‘민주노총’ 등의 단어가 들어간 전시라는 이유로 전시취소 요구를 하고, 전시를 철거하고 재설치하는 등 명백한 검열행위를 당했다”며 “이후 전시 기획자인 저의 면담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기사로 사안이 알려진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도, 반성도 없다. 검열도 잘못이지만 문제가 드러난 이후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행정기관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저버리고 시민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예술과 노동'  전시 기획자인 김진이씨가 1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서울도서관에 대한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손잡고 페이스북. 
▲'예술과 노동'  전시 기획자인 김진이씨가 1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서울도서관에 대한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손잡고 페이스북.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위원장 김종휘 변호사는 “서울도서관 검열 사건은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처벌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 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라며 “또한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그리고 국가기관 등의 책무, 예술 지원 사업의 차별 금지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법률 위배 관련 사항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검열 사건의 주체는 서울시 공무원이고, 전시를 철거할 것을 지시한 것은 외견상 담당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 권한에 속하며 전시 철거에 개입해서 자각몽의 전시를 철거하도록 한 것은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권의 행사라고 볼 수 없다”며 “직권의 행사에서 구체적으로 위법 부당행위를 한 것으로 그 직권을 남용한 것이며 자각몽의 전시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함으로써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 덧붙였다.

서울도서관 측 “논란의 소지 있는 주제, 운영 취지와 맞지 않아”

한편 서울도서관 측은 운영사가 미리 전시 기획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장과 자각몽 대표와의 통화 녹취록에도 이러한 입장이 담겨있다.

지난해 12월30일 김용재 자각몽 대표는 작품 철거 이후 “전시물들을 실제로 보았냐”고 서울도서관 측에 물었고 이에 지식문화과장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왜 작품을 철거했냐는 물음에 지식문화과장은 “공공기관이다보니 사회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 있는 주제들은 저희 운영취지에 맞지 않다”며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 철거 등에 대한 판단은 누가 했느냐는 김 대표의 물음에 지식문화과장은 “제가 판단한 것”이라 밝혔다.

이어 해당 녹취록에서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장은 “공동협력사업으로 취지가 맞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 해당 주제는 힘들다는 의견을 드린 것”이라며 “수탁업체에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히 검토를 했어야하는데 기획서를 냈다는 이유로 검토를 안한 것은 저희의 실수이지만, 주제 자체가 무거운 주제이고 견해가 틀릴 수 있고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지향하는 바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